"유튜브도 못봐"…애플 야심작 '뜻밖의 흥행'에도 불안
애플의 야심작인 혼합현실(MR) 헤드셋 ‘비전 프로’가 흥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전 판매 첫 3일 동안 약 18만대가 팔리며 매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초반 흥행이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란 목소리도 작지 않다. 유튜브, 넷플릭스 등 기본적인 앱이 지원되지 않는 영향이 크다. 기기를 100%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킬러 앱’ 출시도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정보기술(IT)업계에선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할 매력적인 앱이 많이 출시돼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전프로용 앱 150개 불과

최근 미국 모바일 앱 시장 정보회사 ‘앱피겨스’의 조사에 따르면 비전프로용으로 출시된 앱은 150개에 불과하다. 아이폰용으로 등록된 앱 180만개와 비교하면 0.01%도 안되는 수치다. 애플은 비전프로가 정식 출시되는 2월부터 '100만개'에 달하는 앱이 지원된다고 마케팅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기존 아이폰과 아이패드용 앱을 재활용하는데 그칠 전망이다.

눈에 띄는 문제점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앱들이 비전 프로에 없다는 점이다. 유튜브,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스포티파이 등이다. 구글은 “비전프로용 유튜브 앱이 없고, 기존 아이패드용 앱도 비전프로에서 실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인 그렉 피터스는 “실제로 수익을 내지 못하는 곳에 투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며 “비전프로가 어떻게 되는지 상황을 더 지켜볼 것”이라고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당장 돈을 들여 비전프로용 앱을 따로 개발할 정도로 헤드셋이 많이 팔릴지 아직 확신이 없다는 의미다.
"유튜브도 못봐"…애플 야심작 '뜻밖의 흥행'에도 불안
앱이 없어도 이 서비스들을 이용할 수는 있다. 애플의 운영체제(OS)에서 사용하는 사파리 웹 브라우저로 들어가 주소창에 사이트 주소를 치고 PC에서처럼 접속하면 된다. 앱을 누르기만 하면 되는 경우보다 훨씬 불편한 과정이다. 화면과 인터페이스도 PC에서 보기 좋게 구성되다보니 비전프로에서 사용하기에 답답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앱 기근엔 ‘애플 견제하기’도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비전프로 버전을 내놓지 않은 주요 앱은 애플의 경쟁사가 운영하고 있다. 유튜브를 운영하는 구글은 안드로이드 OS로 애플의 iOS와 경쟁 중이고, 인스타그램·페이스북·왓츠앱을 운영하는 메타는 가상현실(VR) 헤드셋 시장에서 애플과 맞부딪히고 있다. 경쟁사들이 애플의 생태계에 편입되길 거부하는 것이다.

개발자 진입 장벽 높아…'킬러 앱' 나올까

인기 앱이 없는 건 별다른 문제가 아니라는 시선도 있다. 어차피 넷플릭스, 유튜브가 제공하는 2D 영상 컨텐츠는 무거운 비전 프로를 통해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기존의 콘텐츠는 스마트폰이나 모니터를 통해 즐기고, 비전프로를 통해서는 아예 새로운 종류의 경험을 원할 것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새로운 경험을 줄 ‘킬러 앱’ 출시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애플이 붙인 ‘공간 컴퓨터’라는 이름값에 맞게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경험을 줄 앱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사용자의 시선에 따라 화면이 바뀌고, 허공에 손가락을 휘저어 앱을 조작하고, 몸을 360도 둘러싸는 몰입형 화면이 구현되고, 현실 세계에 가상 데이터를 덧씌워 함께 보는 혼합현실이 펼쳐지는 앱이 나와야 한다.

문제는 개발자 입장에서 진입장벽이 높다는 점이다. 비전 프로의 시선 추적과 손가락 조작 방식을 반영하면서 360도 시뮬레이션 화면을 만들려면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용 2차원 앱을 개발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노력이 들어간다. 메타 등 다른 플랫폼용으로 설계한 앱을 활용하기도 어렵다. 메타의 퀘스트 등은 손에 쥐는 컨트롤러로 기기를 조작하는데, 비전프로는 사용자의 손가락으로 조작한다. 포브스는 지난 28일(현지시간) “만들어진 앱을 테스트하기 위해 비전프로 기기 자체를 구매하는 것도 커다란 비용이 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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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판매 매진? '소수 매니아'에 그칠 수도

개발자 입장에서는 비전프로 기기 자체가 얼마나 팔릴지 예측하는 것이 쉽지 않다. 불확실한 시장을 겨냥하고 개발에 뛰어들기가 석연찮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지난 22일 “그동안 애플TV와 애플워치 등 애플의 새 플랫폼에서 앱 판매 성과가 부진했다”며 “개발사들이 비전프로 생태계 진입을 망설이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비전프로가 소수의 매니아를 넘어 일반 대중에도 어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사전판매는 흥행했지만 반짝 인기에 그칠 수 있다는 의미다. 애플 전문가인 궈밍치 TF인터내셔널 시큐리티스 분석가는 “비전 프로 사전 판매 첫 3일 동안 16만~18만대가 팔리며 빠르게 매진됐다”면서도 “사전 주문이 시작된 후 48시간 동안엔 배송 기간이 늘어나는 등 변동이 없었다”고 분석했다.

초반에 애플의 핵심 팬들이 제품을 집중 주문했고, 그 후 수요가 빠르게 줄어든 탓으로 추정된다. 궈밍치는 “비전 프로와 달리 아이폰은 일반적으로 사전주문 24~48 시간 동안 배송시간이 꾸준히 증가하며, 초기 매진 이후에도 수요가 계속 증가한다”며 “비전 프로와 아이폰의 수요는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