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인 최초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 수상…"대단한 영광"
"본질에 접근하려 하는 것이 창작자…좋은 음악 만드는 게 내 열망"
'클래식계 노벨상' 품은 진은숙 "매번 새로운 작품 쓰려 노력"
"이전에도 큰 상을 받았지만, 이번처럼 온갖 사람들한테 축하받는 이런 반응은 처음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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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인 최초로 '클래식 음악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을 받은 진은숙(63)은 지난 25일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소감을 밝혔다.

독일 에른스트 폰 지멘스 재단의 이름으로 바이에른 예술원이 수여하는 이 상은 클래식 음악 작곡·지휘·기악·성악·음악학 분야를 통틀어 해마다 단 1명을 선정한다.

역대 수상자만 보더라도 클래식 음악계에서 이 상이 가진 권위를 알 수 있다.

1974년 영국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을 시작으로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랴얀, 레너드 번스타인,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 등이 이 상을 받았다.

진은숙은 "역대 수상자들을 보면 내가 여기 낄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대단한 영광"이라며 "무엇보다 독일이라는 클래식 음악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나라의 상을 받게 돼 기쁘고, 개인적으로도 제가 살고 있는 나라여서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한 뒤 1985년 독일학술교류처(DAAD) 장학금을 받고 독일로 유학 온 진은숙은 현대음악의 거장 작곡가 죄르지 리게티 밑에서 작곡을 배웠고, 현재까지 독일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진은숙은 작곡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 대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하며 살고 싶었다"며 "원래는 피아노를 하고 싶었지만, 가정형편이 안돼 공부를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중학교 때 선생님이 제가 음악을 너무 좋아하고, 음악에 미쳐서 살고 있는 걸 보시더니 작곡을 권하셨다"며 "서울대 작곡과를 나오신 분이었는데 제게 이론과 청음(연주를 듣고 악보에 받아 쓰는 것)을 가르쳐주셨다"고 떠올렸다.

'클래식계 노벨상' 품은 진은숙 "매번 새로운 작품 쓰려 노력"
음악을 사랑하는 소녀였던 진은숙은 독창적인 스타일을 가진 작곡가가 됐다.

그의 작품은 오케스트라 연주곡부터 솔로악기의 협주곡, 실내악곡, 성악곡, 오페라, 전자음악까지 다채롭다.

작품 가운데 소프라노 솔로와 앙상블을 위한 '말의 유희'는 현재까지 20개국이 넘는 국가에서 연주됐고,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2007년 6월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의 개막작으로 초연되며 큰 성공을 거뒀다.

바이올린 협주곡을 비롯한 주요 협주곡도 널리 연주되고 있다.

진은숙은 "사람이 계속 똑같은 걸 하면 새로운 걸 하기 힘들지만, 매번 작품을 할 때마다 다른 걸 하려고 노력한다"며 "곡을 써놓고 나면 다음 곡은 그것과 완전히 다르게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에는 우주, 인간, 자연법칙 등을 소재로 한 곡들이 많다는 것도 특징이다.

1999년 프랑스에서 초연된 앙상블과 전자음악을 위한 '씨'(Xi)는 땅속에 있던 씨앗이 새싹을 피우고 커다란 생명체로 성장했다가 다시 무(無)로 돌아가는 과정을, 2017년 베를린 필하모닉의 위촉곡인 '코로스 코르돈'은 우주의 역사, 생성과 소멸 과정을 담고 있다.

'클래식계 노벨상' 품은 진은숙 "매번 새로운 작품 쓰려 노력"
진은숙은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모든 분야의 창작자는 본질을 캐려고 한다"며 "그런 면에서 철학적인 생각을 하고, 어떤 때는 음악적인 영감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매번 작곡할 때마다 좋은 음악을 만들려고 한다"며 "좋은 음악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그것의 내면에 접근하려고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2028년까지 작곡할 위촉곡이 쌓여있다는 진은숙은 현재는 올해 함부르크주립오페라단이 초연할 오페라 작품에 집중하고 있다.

이 작품의 자세한 내용은 3월께 공개될 예정이다.

이미 독보적인 자리에 올라선 진은숙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그는 "열망이 있다면, 좋은 작품을 쓰는 거죠"라고 당연하듯 답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