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1·2심 판결을 뒤집고 사내 저성과 향상 프로그램(PIP)을 수료하고도 업무 성과가 개선되지 않은 직원에게 회사가 내린 통상해고는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2021년 2월 현대중공업의 저성과자 해고가 적법하다고 판결한 뒤 비슷한 취지의 판결을 또다시 내린 것이다.

최근 법원에서 PIP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판결이 잇따르자 제도 도입에 관심을 두는 기업이 늘고 있다. 다만 잘못 설계된 PIP는 노사 관계 악화 등 악재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악성 저성과자 해고는 정당"…기업 고용유연성 인정한 대법

현대차, 원심 뒤집고 승소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는 최근 현대자동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2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는 근로기준법상 해고의 정당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현대차는 2009년부터 간부사원 1만2000명 가운데 직전 3개 연도 누적 인사평가 결과가 하위 1~2% 미만이면 PIP 대상자로 선정하고 있다. 대상자는 교육을 수료하고 업무 복귀 후 1차 평가에서 개선이 없으면 2차 교육과 평가를 받는다. 여기서도 미달하면 면담을 거쳐 징계위원회에 회부한다.

전 현대차 간부사원 A씨는 PIP에 2010년부터 2017년까지 일곱 차례 지정됐다. 그는 2011년 5월, 2014년 1월, 2016년 4월 총 3회에 걸쳐 근무 성적·태도 불량을 이유로 회사로부터 징계를 받기도 했다. 2017년 PIP에선 대상자 44명 중 41위를 기록했다. 현대차는 “개선의 여지가 없다”며 취업규칙에 따라 2018년 3월 A씨를 해고했다. A씨는 중노위에 구제 신청을 냈다.

중노위와 1·2심은 모두 근로자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는 참가인에 대한 고용 유지 내지 해고 회피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앞선 판단을 모두 뒤집고 현대차 승소 취지로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은 “2017년 PIP 기간에도 자신에게 부여된 업무를 매우 미흡하게 처리했고, 다른 팀원들과 협업하거나 조직에 융화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못했다”며 “원고는 참가인에게 PIP 교육을 7회나 시행하는 등 개선의 기회를 충분히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씨는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인 경우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잇단 PIP 승소에 기업 주목

대법원은 판결문에 비슷한 판단이 나온 현대중공업 사례를 인용했다. 당시 현대중공업 상고심 판결을 맡은 재판부는 “성과를 이유로 한 해고를 제한적으로 인정할 수 있다”며 그 요건으로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 △상당 기간 최소한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과 △낮은 개선 가능성 등을 제시했다. 누가 봐도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라면 해고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다.

최근 하급심에서도 PIP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판결이 쌓이고 있다. 현대차는 작년 8월 연구원 B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징계 무효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12월에도 서울행정법원에서 현대차 근로자 C씨 등이 중노위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회사 승소 취지 판결이 나왔다. LG전자, SK하이닉스, 현대오토에버도 법원에서 PIP의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이 같은 재판 결과에 악성 저성과자 관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기업들의 PIP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패소 사례도 있기 때문에 설계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한 근로자가 “PIP 대상자에게 의사에 반한 사회봉사 등을 시킨 것은 부당하다”며 낸 소송에서 패소해 500만원을 배상했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저성과자 문제를 PIP 운영과 징계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인정됐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의의가 있다”면서도 “다만 신중히 PIP를 설계해야 하고, 운영 과정에서 개선의 기회를 충분히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민경진/곽용희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