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없는 전쟁은 상상할 수 없다.” - 마사 버스비(Mattha Busby)-1)

BP나 로얄 더치 쉘 같은 글로벌 석유. 에너지 기업들은 자신들의 브랜드를 홍보하고 온갖 기후 악행을 감추기 위해 예술을 후원하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소량의 현금을 제공함으로써 자사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세탁하고, 더 나아가 자신들을 책임감 있는, 심지어 필요한 사회 구성원인 것처럼 보이고, “세상의 종말을 앞당기는 사업”과 진배없는 자신들의 실제 활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고 싶어한다.
"예술계에 막대한 세금을 퍼붓는데 국민들 발언권은 왜 미미한가"
2016년 환경문제를 다루는 예술가 단체 '아트 낫 오일(Art Not Oil. ANO)'2) 이 정보자유법(FOI)3) 를 통해 합법적으로 수집한 자료에는 BP가 막대한 영향력을 통해 대영박물관(BM), 런던과학박물관, 국립초상화미술관 등 영국의 문화기관들을 자사의 이익을 위해 악용해온 내용이 담겨있다.

ANO의 회원 크리스 게라드(Chris Garrard)에 의하면 이들 기업은 문화예술의 진정한 애호가도, 관대한 자선가도 아니다. 예컨대 쉘이 렘브란트 반 레인(Rembrandt van Rijn)의 전시를 후원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방법으로 축적된 부(富)를 천재 화가의 재능과 동등한 것으로 미화하기 위한 수단의 일환이다.4)

BP가 멕시코 문화 관련 행사, 호주 원주민이나 북극 원주민 관련 전시를 개최했던 것도 다르지 않다. 모두 자사의 이익을 염두에 둔 전략적 포석일 뿐이었다. ANO가 영국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앞에서 벌였던 뮤지컬-퍼포먼스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가사가 포함되어 있다. "석유 회사의 사장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예술-세탁용 미술관…"

적어도 영국에선 BP가 최악으로, 영국의 상징적인 예술 기관들과 장기 계약 관계에 있다. 이것만으로 충분히 나쁜 일이지만, 정장 나쁜 것은 양자 간에 맺은 계약의 성격이다. 포장을 슬쩍 만 벗겨도 진실이 이내 모습을 드러낸다. 기업의 자금 후원은 미술관의 공공성, 즉 전시기획이나 교육프로그램 제작 등에 어떤 영향도 미쳐서는 안 된다. 특히 '큐레이터의 청렴성' 개념은 박물관 윤리 강령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이는 국공립, 사립 할 것 없이 모든 미술관(박물관)의 기본에 해당하는 윤리 강령이다.

BP와 대영박물관의 사례: 양자 모두 이를 알고 있고, BP의 CEO 밥 더들리(Bob Dudley)는 자사의 예술기금은 ‘어떤 조건도 없다’고 단언한다. BP의 후원에 부응해 대영박물관은 일체 자유롭다는 것인데, 눈가리고 아옹하는 것이다.5)

ANO가 취득한 문서에는 대영박물관의 한 직원이 BP가 후원한 호주 원주민 관련 전시의 콘텐츠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BP의 임원에게 수시로 이메일을 보낸 증거가 담겨있다. 해당 전시의 큐레이터가 서호주 원주민인 스피니펙 (Spinifex) 족 여성 화가들의 작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에 대한 이의가 없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메일을 맺는다.

이는 '큐레이터의 성실성(curatorial integrity)'에 대한 심각한 훼손 행위다. 이 밖에도 해당 전시의 거의 모든 콘텐츠, 기획 전략 등의 업데이트, 전시 관련 교육프로그램 등에 대해 BP 측이 의견을 제시해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이 정도라면 과연 이 전시의 큐레이터가 누구인지, 대영박물관인지 BP의 경영진인지 진지하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6)

"BP가 미술관을 망치는 방법", 대니 치버스(Dan Chivers)가 쓴 글의 제목이다.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6년까지 BP 직원들은 그들이 후원하는 프로그램과 관련된 결정에 서명과 함께 승인했고, 이에 따라 재정 지원은 전략적이고 매우 선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미술관의 고위 관료들과 정기적으로 교류한 것으로 드러났다.7)

점입가경:

ANO가 미술관(박물관) 내에서 반(反) BP 시위를 벌인 것과 관련하여, BP는 문화부 직원들과 보안 문제를 논의하는 회의를 열었다. BP의 팀에 대영박물관, 테이트 모던, 국립초상화갤러리(NPG), 기타 과학 박물관의 보안 팀이 합류했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런던 경찰도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 시위대에 빌미를 제공할 여지가 있는 자료들, 그러니까 제대로 된 진실을 내포하는 자료들을 FOI 신고 대상에서 제외해,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8) 보안 회의에서 이 기관들의 합의를 거쳐 내린 결론이 시민의 합법적인 시위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BP의 명성을 지키기 위한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시위 진압을 위한 박물관과 BP의 이러한 조직적인 결탁은 대영박물관이 스스로 설정한 후원과 관련된 윤리 규정을 스스로 위반하는 것에 해당한다. 박물관협회 윤리 강령에 따르면 문화기관은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지지"해야 하며, 미술관(박물관)은 "대중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파트너 기관과 존중하고 투명한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9) 이를 감안할 때 대영박물관은 BP와의 불투명한 관계로 인해 이미 대중의 신뢰를 잃은 것이다.
"예술계에 막대한 세금을 퍼붓는데 국민들 발언권은 왜 미미한가"
오늘날 미술관은 공공성과 민주적 토론을 내세우지만 갈수록 허울뿐이다. 자금후원기업과 공공성 사이에 갈등이 야기될 때, 미술관이 시민의 편에 서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관람객이 문제를 제기하거나 항의하는 권리는 후원기업의 명예가 보호되는 경우로만 한정된다. “영국 국민들이 낸 수백만 파운드의 세금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으면서도 예술계에서 그들의 발언권은 극히 미미할 뿐이다.”10)

반면, 테이트와 BP의 관계가 종료되었던 시점인 2016년의 보고서에 의하면, BP가 17년간 테이트에 제공한 금액은 연평균 22만4000달러에 불과했다. 이는 테이트의 연간 전체 소득의 0.19%에 해당하는 것으로, 문화기관의 운영에 굳이 빅 오일의 후원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한 사례다.11)

실천:

“너 자신에게 진실하라. 비판적이지 않다면 아무것도 아니며, BP와의 어두운 관계를 청산하라.” 영국의 활동가 그룹 ‘BP인가 아닌가?(BP or not BP?)’가 내세운 슬로건이다.12)

미술관(박물관)과 문화 단체는 비윤리적인 출처와의 후원 관계를 끊음으로써, 미술관에 침투한 다른 기업들의, 아주 적은 돈으로 문화예술기관의 공공성을 사유화하려는 접근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급박한 기후 변화의 시대를 맞아 관심을 기울이는 것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미술관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 더 나아가 예술이 취해야 할 진취적인 태도와 조치를 지금 바로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도덕적 관점에서 특히 목전에 닥친 기후 위기의 영향을 이미 가장 많이 받고 있으며 더욱 그렇게 될 지구촌의 남쪽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저소득층 사람들에게 다시 자신의 문호를 개방하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 미술관’으로 나아가는 실제적인 신호가 될 것이다.

1) 4 Mattha Busby, “Campaigners Protest against BP Sponsorship of British Museum,” The Guardian (Guardian News and Media, February 16, 2019),
https://www.theguardian.com/culture/2019/feb/16/campaigners-protestagainst-bp-sponsorship-of-british-museum.

2) 아트 낫 오일Art Not Oil): 2004년부터 예술계에 대한 빅 오일의 후원을 반대하는 운동을 주도해 온 단체. 2013년, 예술계에서 석유 후원을 종식시키기 위한 자율적인 단체들의 연합으로 발전했다. 다음과 같은 단체들이 이에 포함된다: ‘BP인가, 아닌가?’, 리버레이트 테이트, 플랫폼 런던, 영국 타르 샌드 네트워크, 기후 참여를 위한 달마 행동 네트워크, 진보적 과학 연구소 등. 이 연합은 정보자유법을 통해 미술관(박물관)에 대해 문화 소비자와 기관 간에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할 정보를 찾아내고,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보고서를 적극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3) 정보자유법.

4) Toby Miller, Global arts scene awash with big oil and gas sponsorship, 11 April 2014, The Conversation. ANO의 모토는 ‘창의성, 기후 정의, 그리고 예술에 대한 석유 산업의 후원 종식을 위해서’이다.

5) "BP의 문화 후원: 부패한 영향력"(Art Not Oil Coalition, 2016), 3.

6) Dannny Chivers, “How BP Messes with Our Museums,” Fossil Free UK, May 3, 201 https://gofossilfree.org/uk/how-bp-messes-with-our-museums/.

7) Ibid, 16.

8) Ibid, 8.

9) Ibid, 13.

10) Raquelle Bañuelos, Oil Spill: How Fossil Fuel Funding Corrupts British Cultural
Institutions, p.94. University of Illinois at Chicago, 2021Chicago, Illinois. 2021.

11) Ibid, 88.

12) “Our Manifesto,” BP or not BP?, October 7, 2019,
https://bp-or-not-bp.org/our-manife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