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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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세트 테이프에서 CD로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 내 방에 제법 커다란 오디오를 놓아주셨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작은방에서 위엄을 자랑하던 오디오 옆에는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카세트테이프 세트와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이 담긴 CD가 놓여 있었다. CD보다는 카세트테이프 쪽이 더 익숙했지만, 언제나 먼저 손이 가는 것은 CD였다. 플라스틱 케이스 속 도넛처럼 생긴 동그란 물건을 꺼내 가운데 구멍에 손가락을 쏙 끼워 넣고 조심스레 CD롬 위에 얹는 행위는 어린 내게 퍽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방이 떠나가라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음반을 오디오에 올렸다. 가족 중 누구도 클래식 애호가는 아니었지만,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재생되는 그 음악을 반기지 않을 이 또한 아무도 없었다.

LP까지 재생 가능했던 올인원 컴포넌트와는 머지않아 이별을 해야 했다. 마침 카세트테이프가 아닌 CD로 대세가 기울고 있던 때였다. 동네 음반가게를 지나칠 때면 학생의 주머닛돈으로 구입할 수 있는 저렴한 테이프 코너에서 기웃거리기 일쑤였던 나도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휴대용 플레이어로 CD를 듣는 일이 훨씬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물론 MP3로 음악을 듣고, 더 이상 파일마저 소장하지 않는 시대로 넘어오기 전까지의 일이지만.
실황음반에 사인하는 피아니스트 김태형 ⓒ더하우스콘서트
실황음반에 사인하는 피아니스트 김태형 ⓒ더하우스콘서트
하우스콘서트 실황음원을 음반으로 제작하기 시작한 것이 2008년이니, MP3가 보편화된 시기이긴 해도 아직은 음악을 CD로 들을 때다. 하콘의 음반은 녹음부터 믹싱, 제작, 유통까지 ‘가내수공업 시스템’을 지향하며 만든 클래식 독립음반이었다. 대중음악계에서 인디뮤지션들에 의해 자체적으로 제작 및 유통되던 방식을 접목한 것으로, 국내 클래식 계에서는 처음 시도된 일이었다. 공연 실황을 녹음한 것 그대로를 담았기 때문에 스튜디오에서 수차례 녹음하며 완성해 낸 것과는 확연히 다른, 현장감이 살아있는 음반이라는 점도 하우스콘서트 실황음반이 가진 큰 특징이었다.
실황음반을 제작하는 과정 ⓒ더하우스콘서트
실황음반을 제작하는 과정 ⓒ더하우스콘서트
하우스콘서트 초창기 공연장이 아니라는 이유로 초대를 거절한 연주자가 많았던 것처럼 실황음반 역시 공연이 완벽하지 않다고 거절한 연주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내 흐름이 바뀌었다. 음반으로 제작할 공연을 선별하고, 연주자의 동의를 구한 것에 한 해 제작된 음반은 2008년에 10종으로 시작해 2013년에 100종으로, 2016년에 126종으로 늘어났다. 2016년 당시 450회 가량의 하우스콘서트를 진행했으니 전체 공연의 약 30%가 음반으로 나온 셈이다.

하우스콘서트 실황음반의 스테디셀러는 피아니스트 김선욱, 김태형, 조성진,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클라리네티스트 김한 등 당시 신인 음악가들의 것이었다. 이들이 점차 두터운 팬층을 확보해 나가면서 음반 주문량도 증가했다. 거꾸로 하우스콘서트 음반을 통해 새로운 연주자를 알게 되기도 했다. 공연을 직접 관람한 관객은 실황음반 출시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거나, 만들어 줄 수 있느냐고 직접 요청해오기도 했고, 특정 연주자의 음반을 모으며 자신의 컬렉션에 하우스콘서트 실황음반을 포함시키기도 했다. 이들의 CD장 어딘가에 DG 등의 메이저 레이블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을 하우스콘서트 음반을 생각하면 아직도 짜릿한 기분이 들곤 한다.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한 장씩 CD를 ‘굽고’(CD플레이어에서 재생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저장하는 과정을 말한다), 그 위에 직접 디자인해 출력한 라벨을 붙여서 발송하던 가내수공업은 2018년부터 그 빈도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음악을 듣는 방식이 바뀐 것이다. 그리고 2019년 12월을 기점으로 하우스콘서트 실황음반은 제작 및 판매 중단이 결정됐다.
ⓒ더하우스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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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마저 소장하지 않는 시대

5년 전쯤, 새로 출시되는 차량에 더이상 CD플레이어가 장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충격받았던 일은 비슷한 시기 하우스콘서트 실황음반 주문량이 급격하게 줄어든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음악을 듣는 방식이 ‘정말’ 변화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하우스콘서트를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접하는 요즘에서야, 그리고 CD플레이어를 가지고 있지 않아 CD도 소장하지 않는다는 세대를 만나고나서야, 비로소 그 변화를 체감한다. 음악을 듣는 방식은 확실히 변화했다는 것을.

하우스콘서트의 실황음반 중단은 때마침 키워가고 있던 유튜브 채널의 성장과 맞물려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를 이뤘다. 음반은 더 이상 나오고 있지 않지만 모든 공연을 라이브 스트리밍하며 차근히 아카이빙을 쌓아오고 있고, 그것이 하우스콘서트가 가진 특징으로 자리 잡았으니 뒤늦은 깨달음 치고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잘 읽어내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 동그란 도넛을 가내수공업으로 굽고 생산하던 때가 그리워진다. 파일마저 소장하지 않는 스트리밍 시대를 지나 우리는 어디까지 변화해갈까. 음악을 듣는 방식이 혹시 다시 예전으로 회귀하지는 않을지, 하콘이 CD를 다시 굽는 일은 정말 없을런지 궁금해진다.


*하우스콘서트 실황음반 제작 과정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