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영화 음악의 대가 류이치 사카모토가 타계한 뒤로 그가 쓴 책이 출간되고 다큐멘터리가 개봉되는 등 많은 이들이 그를 기리고 있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Merry Christmas Mr. Lawrence)>와 같은 대표곡이 있지만, 나에게 그의 이름을 가장 각인시킨 음악은 영화 <바벨>의 OST로 사용된 <비보노 아오조라(美貌の 靑空)>다. ‘푸른 하늘의 아름다움’이라는 뜻의 7분이 넘는 이 오케스트라 곡은 들을 때마다 매번 잔잔했던 감정에 파문을 일으키며 심금을 울린다.
장난으로 쏜 총에 맞았는데 여기는 모로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 <바벨>은 구약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그 바벨에서 따온 제목이다. (“야훼께서 온 세상의 말을 거기에서 뒤섞어놓아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고 해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불렀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 영화는 언어가 다른 사람들의 불통에 관한 이야기이며, 멀리 떨어져 연관 없어 보이는 네 개의 사건이 하나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이냐리투 감독은 전작 <아모레스 페로스> <21그램> 때에도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작품을 선보였는데, <바벨>은 그러한 그의 솜씨가 정점을 찍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모로코의 황량한 땅에서 염소를 키우는 아이들, 유세프와 아흐메드 형제는 자칼의 위협을 견제하려고 아버지로부터 총을 받았다. 동생이 누군가를 해할 생각 없이 내기로 먼 곳을 향해 총을 발사한 잠시 후 버스 한 대가 멈춰 서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이들이 쏜 총알에 맞은 것은 버스에 타고 있던 미국인 여행객 수전이다. 수전은 말이 통하지 않는 모로코 인들의 사람을 살리려는 응급처치도 믿지 못한다. 치료를 받는 와중에도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불신이 깔려 있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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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수전과 리처드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보모 아멜리아는 수전의 사고로 인해 예정보다 더 아이를 맡게 되고,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멕시코 국경을 넘었다가 곤경에 처하게 된다. 또 한 쪽에서는 도쿄에서 살고 있는 농인 여고생 치에코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치에코의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와 잘 어우러지는 것 같지 않으면서도 소통의 장애를 겪는 농인 여고생 치에코를 통해 이 영화가 불통에 관한 영화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야기의 마지막에 이르면 도쿄의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들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밝혀지게 된다.

이슬람 국가인 모로코에서 미국 여행객이 당한 피격은 테러로 간주되며 국제적인 뉴스가 되고 외교 문제로 번진다. 어느 한 곳에서 일어난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뉴욕에 태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나비 효과’ 이론을 스토리텔링으로 훌륭하게 보여주는 체험으로 볼 수 있다. 이 영화에는 특별히 나쁜 사람이 등장하지 않음에도, 소통의 부재로 인해 오해가 만들어지며 인물들은 곤경에 처하고 슬픔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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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숙하지 않은 것, 다름에 대한 공포는 어쩌면 본능에 각인된 것일 수도 있다. 북미 포스터에 적힌 카피 문구 ‘이해받기를 원한다면... 귀 기울여라’는 더 직접적으로 영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국경을 초월한 팬데믹, 코로나19를 전 세계가 함께 겪은 지금 시대에 세계인들이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이 영화의 메시지는 더욱 많은 이들에게 와 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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