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리더 혹은 엘리트 진입 기준은 있으나, 진입 후 기준이 없다.”

[비즈니스 인사이트] 2024년, 커리어·성장·FIRE족을 넘어설 준비해야
최근 향년 100세로 타계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생전 그의 책 <리더십>에서 던진 화두다. 리더들이 의무보다는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다는 말이다. 직장인에게 인기 있는 소셜미디어 링크트인 하면 커리어와 성장이라는 두 단어가 떠오른다. 이 단어들에는 꿈과 열정이 넘친다.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하면 뭔가 빠진 느낌이다. 커리어와 성장 그 너머는? 왜 커리어고, 성장인지 별말이 없다. 그 이상을 얘기하면 초점을 잃고 복잡해질까? 아니다. 다음 세 가지를 추가하면 커리어와 성장을 넘어 더 좋은 길이 보일 수도 있다.

(1) 커리어를 넘어 공헌으로

커리어는 우리 삶의 중심에 있다. 생산성을 올려주고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사회 발전에 이바지한다. 좋은 커리어는 모두를 위한 순기능을 한다. 가령, 인간은 스스로 기쁨을 샘솟게 할 수는 없다. 대신, 타인을 기쁘게 하거나 슬프게 할 수는 있다.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인데, 그 필요를 연결하는 것이 커리어다.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오직 남을 위해 산 인생만이 가치 있다”고 했다.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은 “커리어는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 두 사람 모두 진정으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루려면 타인을 위해 공헌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 성장을 넘어 성숙으로

성장은 기쁨이고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2020년 파이낸셜타임스(FT)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적을수록 풍요롭다(원제 Less is More)>에서 저자 제이슨 히켈은 “자본주의가 가져온 위기는 지속적 성장이라는 정언명령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라며 “유기체는 성장을 스스로 제한하고, 성숙하면 건강한 평형상태를 유지하나 오직 인간만 그렇지 않다”고 했다. 마치 전장에서 달리는 말 같다.

문제는 성장이 행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보다 행복은 관계나 연결과 관련이 깊다. 가령, 나와 직접 관계있는 사람이 행복하면 내가 행복할 확률이 15% 증가하고, 내 친구의 친구가 행복하면 10% 증가한다. <행복은 전염된다(원제 Connected)>에 나오는 말이다.

나의 성장이나 행복만으로는 안 된다. 타인의 행복과 불행이 내게 반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성장은 성숙을 동반한다. 개인 성장만 목적이 되면, 성장을 멈춘 순간 불행해진다.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행복은 결핍에서 충족으로 넘어가는 짧은 순간’이 되고 만다.

캐나다 기러기가 적은 에너지로 쉼 없이 멀리 날 수 있는 건 서로의 날개가 제공하는 바람의 힘 덕분이다. 내가 앞에 갈 때도, 동료가 앞설 때도 있다. 그러다가 어느새 함께 목적지에 도달한다.

(3) FIRE족을 넘어 모델로

40세 경제적 자립, 설레는 목표다. 정상적으로 이뤄내면 박수받아 마땅하다. 서점 벽면에 진열된 경제경영 10권 중 4~5권은 젊은 날, 단기간에 경제적 자유를 얻는 비결로 채워져 있다. 금광을 찾아 모두가 떠났던 서부 개척 시대를 보는 것 같다. 문제는 파이어(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족의 대열에 진입한 이후다.

역사상 가장 파이어족 그 자체였던 사람들은 로마 귀족이다. 그들에게 시민권은 파이어족이 되는 보증수표였다. 문제는 이들이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적인 상태에서는 게을러지고 잔인해진다’는 비평가 존 러스킨의 충고가 떠오른다. 자신이 성공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 하나는 ‘나를 본받으려는 사람이 있는가?’ 스스로 묻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나를 존경하는가?’가 더해져야 한다. 미국 거부 중에 많은 사람이 기부왕이 된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파이어족을 꿈꾸기 전에 먼저 삶의 끝을 생각해 보자. 이른바 인생 역기획이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교수의 저서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원제 How will measure your life?)>의 제목은 생각할 만한 질문이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을까? 내 자녀나 후손은 나를 자랑스러워하고 존경할까? 선택은 나의 몫이다. 중요한 것은 여기 그리고 지금(here & now)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떻게 살지를 결정하고 지금부터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내일은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이 내일로 이어지는 것은 확실하다. 그런 면에서 인생은 청사진보다는 두루마리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