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 자체가 현대미술, 우리 전시는 그 흐름을 반영한 것”

큐레이터라 하면 드라마에서 보는 고상하고 화려한 이미지를 생각하기 쉽다. 현실은 조금 다르다. 설치 기간에는 전시장을 뛰어다니고, 작품 제작을 위해 공장에서 테크니션들과 미팅을 한다. 운송 업체와 작품 리스트와 상태를 확인하고 보험 문제를 해결한다. 이 외에도 홍보와 교육 프로그램을 위해 관련 팀들과 수차례 만나 정보를 공유하고 조율한다.

중간 중간 작가들과 작품에 대해 논의하고 예상치 못한 변수에 대응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온종일 회의실을 전전하다 퇴근 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책상에 앉을 수 있다. 저녁도 거른 채 전시 글을 쓰고 온갖 사무 작업을 하다 보면 늦은 밤이 되어 있기 일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큐레이터들은 왜 예술을 놓지 못할까.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시간의 형태’ 전시가 시작된 지 두 달이 지났다. 날이 갈수록 관람객들의 반응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미국 주요 미술관에서 한국 현대미술 전시를 보는 일은 손에 꼽힐 정도로 적기 때문이다. 전시장은 매일 문전성시를 이뤄 오픈 6주 만에 4만명을 돌파했고 미술관 웹사이트 방문 지수는 평소보다 두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시간의 형태’ 전은 글로벌 현대미술사에 새로운 획을 긋고 있다.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두 큐레이터가 있다. 전시를 공동 기획한 엘리자베스 애그로 미국 근현대 공예 및 장식 미술 큐레이터와 우현수 소장품 담당 부관장을 만났다.
Photographer Albert Yee Copyright © Philadelphia Museum of Art
Photographer Albert Yee Copyright © Philadelphia Museum of Art
전체 전시기간의 절반이 지났지만 두 큐레이터들은 두 달 전보다 어쩐지 핼쑥해 보였다. 밖으로는 쏟아지는 인터뷰와 전시 관련 문의에 대응하고 안으로는 작품들과 전시장을 챙기느라 쉴 틈이 없다고 한다. 둘 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만 17년째 일하고 있다. 우현수 부관장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미술사로 학,석사를 취득하고 90년대 말 미국으로 건너와 뉴욕 부르클린 미술관 (Brooklyn Museum of Art)과 뉴욕 재팬 소사이어티(Japan Society)를 거쳐 2006년부터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근무했다. 2021년 지금의 부관장 자리에 올랐다. 미술관에서 임원급 인사에 한국인이 내정된 것은 최초다.

엘리자베스 애그로 큐레이터는 카네기 미술관(Carnegie Museum of Art)에서 십년간 근무하다 2006년에 필라델피아 미술관으로 옮겼다. 대학때부터 남들과는 다른 길을 모색했다. 이탈리아학과 미술사학을 통합해 정기 과정에는 없던 새로운 전공을 만들어 졸업했다. 큐레이터가 된 뒤에는 비주류 매체로 치부됐던 장식 미술을 선택해 공예에 대한 인식 전환에 힘써왔다. 안목과 경험이 중요한 큐레이터라는 직업 상 연륜과 내공이 쌓인 50대는 큐레이터 커리어의 정점이다. 두 큐레이터 모두 지금 그 정점을 지나고 있는 듯 보였다.

-‘시간의 형태’라는 전시명은 무슨 의미입니까?
엘리자베스) 조지 쿠블러(George Kubler)의 책 제목에서 따왔어요. 쿠블러는 사물은 그 의미와 용도에 있어 시간에 구속되지 않는다고 봤어요. 다양한 시간의 형태를 마구 넘나드는 거죠. 즉 사물은 현재의 시간과 시대를 반영하면서 과거를 품고 있고, 미래도 담고 있어요. 그렇게 서로 뒤섞이다 보면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구분이 사라져요. 그래서 어떠한 사건이나 사물을 한가지로만 정의할 수가 없어요. 예술 안에서 본 한국 사회의 모습이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전시 도록에 “부조화”라는 말이 단어가 자주 보입니다.
엘리자베스) 전시 제목이랑 같은 맥락이에요. 인간의 기억은 인위적인 결과물이에요. 각자의 기호에 맞게 기억을 재단하죠.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시점과 만나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과거의 경험과 부딪히면서 현재가 만들어져요. 우리가 있는 현재는 따라서 매우 임시적 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뒤섞여 있기 때문에 고정적이지 않아요. “현재를 살아라”라는 말이 있는데 그게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현재는 우리의 과거이기도 하고 미래이기도 하니까요. 전시는 한국 사회에 일어났던 혹은 일어나고 있는 여러 사건들을 다루는 작품들이 많아요. 남북 분단, 단체주의와 개인주의, 세계화, 페미니즘, 젠더 이슈 등 조화롭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임시적일 뿐입니다. 우리는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이런 시간의 뒤섞임을 임시적인 부조화 상태라고 명명한 겁니다.

-두분 사이에 역할 분담은 어떻게 이뤄졌나요?
우현수)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 70년대 80년대를 한국에서 보냈어요. 그 시대를 직접 경험한 것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저는 지구 반대편에서 자랐어요. 완전히 다른 세계잖아요. 한국 미술계에서 저는 이른바 아웃사이더죠. 하지만 좋은 작가를 발굴하고 작품을 선정하는 일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아요. 굳이 나누자면 아무래도 우현수 부관장이 한국에 있는 현대미술 작가들과 대화를 많이 했고 저는 공예 작가들에게 좀 더 관심을 기울였고 한국계 미국 작가들을 담당한 면이 있죠. 하지만 나중엔 일이 바빠지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어요. 이제 눈빛만 봐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요.

우현수) 두 분의 한국인 전시 어시스턴트 분들이 저희를 물심양면으로 도왔어요. 김태이씨와 권대희 씨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한국에서 미국까지 건너왔어요. 각각 2년 반, 1 년간 미술관에서 일하면서 전시 일을 도왔어요. 매우 감사한 부분입니다.

-관람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우현수) 직원들의 반응이 가장 정확해요. 다들 준비하면서도 굉장히 재밌어 했어요. 외부적으로는 젊은 관람객들이 많이 늘어난 것도 이번 전시의 큰 수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필라델피아 미술관을 보수적인 기관으로 바라보는 면이 있는데 이번 전시는 정 반대잖아요.

엘리자베스) 현대미술과 공예가 함께 섞여 있는 점을 특히 인상깊게 보는 것 같아요.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 자체가 현대미술의 큰 흐름인데 우리 전시는 그 흐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요.

우현수) 2014년도에 미술관에서 ‘조건 시대 백자’ 전시를 기획했는데 꽤 성공적이었어요. 그러자 당시 미술관장이 우리 둘에게 같이 전시를 기획해 보라고 권했죠. 공예와 미술을 구분 지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엘리자베스) 공예도 현대미술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우현수) 필라델피아 미술관은 현재 많은 변화를 겪고 있어요. 이전까지는 지역이나 매체, 시대로 작품을 구분했다면 이제는 얘기가 달라졌어요. 내부적으로 현대미술에 대한 정의부터 다시 논의하고 있어요. 거기에 따라 앞으로 우리 미술관의 역할이나 방향성이 달라질 것 같아요.

-한국 현대미술이 주목받는 이유는?
우현수) 하루 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에요. 그 뒤에는 광주비엔날레, 청주공예비엔날레, 경기도자비엔날레 등이 수 십년 동안 플랫폼을 개척하고 작가를 소개해 왔어요. 한국국제교류재단은 90년대 부터 큐레이터 양성사업을 주도하며 젊은 인재들을 해외 미술관으로 단기 유학 보냈어요. 이 노력들이 모여서 지금의 한국 현대미술을 이뤄 놓은 겁니다. 이제 서울은 미술 뿐만 아니라 문화의 중심지가 되어 전세계인들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전시를 통해 바라는 점은?
우현수) 앞으로 언제 다시 저희 미술관에서 한국 현대미술을 선보일 지는 아무도 몰라요. 미술관에 큐레이터만 마흔 명이 넘습니다. 돌아가면서 한번씩 전시를 해도 몇 년은 지나야 차례가 돌아와요. 다음 전시를 준비하기 보다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이 더욱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기회들을 찾는 일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이번 전시를 계기로 작가들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고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 현대미술이 소개가 되었어요. 그 기회들이 미래에 어떻게 연결될 지 매우 기대됩니다. 한국 현대미술의 영향력을 넓혀가는 일은 이런 대규모 전시 외에도 여러 길이 있으니까요.

인터뷰를 위해 오프라인으로 한차례, 온라인으로 한차례 이야기를 나눴다. 온라인 인터뷰 다음날 심포지엄에서 마주친 엘리자베스가 보충 설명을 하고 싶다며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예술에는 경계가 없다고 수차례 강조한 엘리자베스. 예술은 어쩌면 경계 없는 열정을 삶에 부여하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