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등 사회 변화 계기된 사건 조명
나체로 전경에 맞선 여공…신간 '한국 현대사를 뒤흔든 40가지 사건'
연행된 노조 지부장 석방을 요구하며 농성하던 여공들을 해산하기 위해 경찰이 투입됐다.

곤봉을 든 전투경찰이 밀려오자 여공들은 옷을 벗었다.

아무리 무자비한 경찰이라도 몸에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최후의 수단을 택한 것이었다.

폭력에 맞선 여공들의 몸부림에 경찰은 처음에는 당황했으나 이내 마구잡이로 연행하고 강제 해산에 나섰다.

1976년 7월 25일 인천 동구에 있던 동일방직에서 벌어진 이른바 여공 나체 시위 사건이다.

노동자이며 여성이라는 중첩된 약자의 지위에 놓여있던 동일방직 여공들의 투쟁 의지는 그래도 꺾이지 않았다.

이들은 해를 바꿔 쟁의 행위를 이어갔다.

1978년 2월 21일 새 여성 노조위원장을 선출하는 날 사측은 대의원대회 행사장에 잠입해 여공들에게 인분을 퍼부었다.

똥물을 뒤집어쓰는 수모를 당하면서도 여공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들은 근처 사진관 사진사에게 요청해 인분을 뒤집어쓴 모습을 찍어 역사에 기록했다.

나체로 전경에 맞선 여공…신간 '한국 현대사를 뒤흔든 40가지 사건'
자본가와 남성 중심의 질서에 반기를 들며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투쟁을 벌이던 여공들은 해고, 재취업 제한(블랙리스트) 등 탄압에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이들은 2001년이 되어서야 국가를 상대로 해고무효 소송을 냈고 해고자 126명 중 74명에게 국가가 보상금으로 약 2천만원씩 지급하도록 하는 판결을 받아냈다.

1970년대에 해고를 무릅쓰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전진시킨 동일방직 여공들은 이제 60∼70대가 됐다.

역사 연구자 강부원의 신간 '한국 현대사를 뒤흔든 40가지 사건'은 동일방직 여공 투쟁처럼 현대사에 변곡점을 만들어낸 사건을 선별해 소개한다.

와우아파트 붕괴(1970년), 대연각 화재(1971년), 성수대교 붕괴(1994년), 삼풍 백화점 붕괴(1995년) 등 큰 충격을 부른 참사나 3·15 부정선거(1960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1986년) 등 사회 변화의 계기가 된 사건을 돌아본다.

나체로 전경에 맞선 여공…신간 '한국 현대사를 뒤흔든 40가지 사건'
이제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됐지만 이들 사건은 당시로서는 좀처럼 믿기 힘든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책에 따르면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한강 다리가 무너졌다니까요"라는 신고 전화를 받은 담당자는 "장난 전화를 하지 말라"고 답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한국 사회는 일 년 후 삼풍 백화점 붕괴라는 한층 큰 사건을 겪게 된다.

저자는 지나간 사건을 차분하게 돌아보며 현대사의 고단함을 감수한 많은 이들의 인내와 노력을 기억하고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자는 메시지를 던진다.

"너무 빨리 잊어버리거나 금방 기억하지 못하게 된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본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과거를 돌아본다는 건 결국 미래를 예견하고 준비하는 행위다.

"
믹스커피. 392쪽.
나체로 전경에 맞선 여공…신간 '한국 현대사를 뒤흔든 40가지 사건'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