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나 마이케스 뉴로일렉트릭스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뇌파 분석·전기자극 장치 '스타스팀'을 시연하고 있다. 바르셀로나=빈난새 기자
애나 마이케스 뉴로일렉트릭스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뇌파 분석·전기자극 장치 '스타스팀'을 시연하고 있다. 바르셀로나=빈난새 기자
수영 모자처럼 생긴 부드러운 네오프렌(잠수복 소재로 쓰이는 합성고무) 재질의 장치를 머리에 뒤집어쓰자 컴퓨터 화면에 빨간색과 녹색, 푸른색 등으로 그려진 뇌파 지형도가 나타났다. 장치에 부착된 여러 개의 측정기가 착용자의 뇌파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3차원(3D) 두뇌 모델을 생성해낸 것이다. 개인화한 ‘디지털 뇌’인 셈이다.

이 장치엔 두피에 미세 전기자극을 흘려보낼 수 있는 전극도 최대 39개 달려 있다. 이를 통해 뇌전증, ADHD(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 치매 같은 뇌 질환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 뇌전증 발작을 일으키는 부위에 약한 전류를 전달해 증상을 완화하거나,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를 자극해 조기 치매 환자의 기억력을 개선하는 식이다. 이 기술을 개발한 애나 마이케스 뉴로일렉트릭스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사진)는 “(수술이 필요 없는) 비침습적인 방식으로 두뇌 전파 분석·자극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웨어러블 기술은 세계 최초”라며 “뇌 질환 치료의 새 지평을 열 수 있다”고 자신했다.

뉴로일렉트릭스는 2011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설립됐다. 현재는 글로벌 바이오산업 중심지인 미국 보스턴에 거점을 두고 있다. 디지털 트윈 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뇌를 디지털상에 고스란히 재현해내는 유럽연합(EU)혁신위원회 ‘뉴로 트윈’ 프로젝트의 대표 참여 스타트업으로도 주목받은 곳이다. 기업 가치는 약 1억달러로 평가받는다.

이 회사가 개발한 웨어러블 장치 ‘스타스팀’은 세계 45개국에서 연구 목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10여 개 병원과 대학, 연구기관 등에서 활용 중이다. 임상시험 결과 스타스팀을 10일간 매일 20~30분 착용하고 전기자극 치료를 받은 뇌전증 환자는 발작이 47%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마이케스 CEO는 “이르면 2026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고 뇌전증 치료제로 정식 판매할 것”이라며 “환자 뇌에 칩을 심어 자극을 주는 일론 머스크의 ‘뉴럴 링크’에 비해 비침습적이고 안전하다”고 말했다. 이어 “뇌전증뿐 아니라 알츠하이머, 우울증, 파킨슨병 등 이제까지 약물 치료가 도움을 주지 못한 다양한 뇌신경 질환에도 활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약 대신 전기 자극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뇌 질환을 치료하는 ‘전자약’은 국내에서도 주목도가 높다. 한국 와이브레인은 기능이 저하된 전두엽을 자극해 우울증을 치료하는 ‘마인드스팀’을 상용화했다. SK바이오팜은 뇌전증 치료를 위해 ‘감지’에 초점을 맞춘 웨어러블 기기를 개발 중이다.

'유럽 스타트업 허브' 바르셀로나

뉴로일렉트릭스의 탄생지인 바르셀로나는 유럽의 대표 스타트업 허브 도시다. 바르셀로나가 있는 카탈루냐 지역에 거점을 둔 스타트업은 작년 기준 2022곳에 이른다. 남유럽 최대 규모다. 카탈루냐 주도인 바르셀로나는 독일 베를린에 이어 스타트업 대표들이 유럽에서 창업하기 가장 좋은 도시 2위로 뽑히기도 했다.

네이버가 누적 1억9000만 유로(약 2700억원)를 주고 최대 지분을 사들인 유럽 최대 중고거래 플랫폼 왈라팝과 뉴욕 증시 상장에 성공한 전기차 충전 기업 월박스도 바르셀로나가 본거지다.

바르셀로나의 스타트업 생태계 지원을 위한 민간단체인 테크 바르셀로나의 미켈 마르티 CEO는 “지리적으로도 세계 시장 접근성이 뛰어난데다 바르셀로나 도시 자체의 브랜드가 강하다 보니 글로벌 인재가 몰려든다”며 “저렴한 물가와 온화한 기후, 풍부한 문화 자산 등도 인재 유치에 유리한 조건”이라고 말했다. 마이케스 뉴로일렉트릭스 CEO는 “바르셀로나는 인재들의 창의성을 자극하는 도시”라고 했다.

바르셀로나=빈난새 기자/남정민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