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소득 3만弗에서 주춤하는 이유
<눈 떠보니 선진국>이란 제목의 책이 나온 게 2021년 8월이다. 2년 반 전 일각에선 한국이 선진국이 됐다고 조심스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국뽕’ 콘텐츠들이 TV와 유튜브에 나오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극빈 국가에서 반세기 만에 선진국으로 도약했다는 자부심도 생겼다.

어느 정도 공감대도 형성됐다. 책이 나오기 1년 전인 2020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명목 GDP)은 3만1638달러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스페인(2만7179달러)은 물론 2차 세계대전 당시 강대국이었던 이탈리아(3만1604달러)를 넘어섰다. 그리스와 폴란드, 포르투갈 등에 가면 ‘물가가 싸다’는 느낌까지 들면서 선진국 진입을 실감했다.

‘오징어게임’ ‘BTS’ 등에 대해선 우리한테 영원한 선진국인 미국과 영국, 프랑스 백인들의 칭찬을 들으며 정말 그런 줄 알았다. 4만달러의 영국, 프랑스 등에는 금세 역전할 분위기였다.

다시 역전된 국민소득

하지만 2년 반 만에 이런 일들이 옛날처럼 느껴진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10월 계산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3147달러였다. 그사이 이탈리아는 3만7146달러로 순위를 뒤집었고, 영국은 4만8000달러로 더 멀어졌다. 미국은 6만8000달러에서 8만달러로 날아갔다. 2020년 미국에서 체감한 물가와 지금 체감하는 물가 차이만큼 한국은 뒤로 밀린 것이다.

국민소득이 전부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한국은 경제 덕분에 모든 면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나라다. 그 기반엔 제조업과 수출이 있다. 한국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2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보다 높다. 유럽의 제조 강국인 독일이 19%, 일본이 20%다. 무역액을 명목 GDP로 나눈 비율인 무역 의존도도 한국은 75%를 넘는다.

이 덕분에 이젠 쉽게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게 됐다. 하수도가 흐르는 골목길에 있는 집 대신 냉난방이 잘 되는 신도시의 아파트에 가정을 꾸리고, 누런 고무 장판 대신 원목으로 만든 바닥에서 쾌적하게 산다. 어디든 에어컨이 나오고, 아스팔트 도로엔 열선이 깔리며, 휴가 때 어느 나라를 갈지 고민하고 있다. 이게 모두 제조업과 수출로 쌓아 올린 경제성장 덕분이다.

제조 수출의 근간은 근면

문화 콘텐츠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도 제조업과 수출 덕분이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CJ와 롯데가 영화 사업에 진출했고, 기업의 협찬을 받은 방송사와 스튜디오 등이 자본을 확충하며 ‘K드라마’를 완성했다. 김구 선생이 100년 전 말한 ‘문화 강국’도 결국 경제성장의 덕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이 ‘눈 떠보니 다시 중진국’이 되는 건 이런 제조업과 수출산업이 후퇴하고 있다는 얘기다. ‘눈 떠보니 선진국’이란 말에 감염돼 몇 년 새 기업들 사이에선 주 4일 근로제가 당연시되고, 욜로족도 득세한다. 가정을 갖는 대신 소셜미디어에선 호캉스와 오마카세 등 과시성 사진들이 만연한다. 제조업과 수출산업의 동력인 근면이 사라지고 있다. 한국이 진정 선진국이 되는 비결은 이제 숫자가 줄어들 일만 남은 국민들이 근본부터 챙겨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자각해야 한다. 창의성도 근면에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