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진 원장 "국민이 세금 잘 알면 정치권도 조세 밀실 합의 못 하죠"
“세금에 대해 국민이 제대로 알고 있어야 정치권이 밀실 합의를 통해 조세정책을 임의로 결정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김재진 조세재정연구원장(사진)은 20일 세종 본원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국민들의 세금 이해도가 높아져야 진정한 조세 법률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1992년 설립된 조세재정연구원은 조세 정책과 공공지출 등을 조사·연구하는 국내 유일한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다. 2021년 5월 취임한 김 원장은 30여 년간 조세 분야를 연구한 조세 전문가다.

연구원은 올해부터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함께하는 세심교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세심(稅心)은 조세에 대해 올바른 생각을 심는다는 뜻이다. 김 원장은 “우리 국민은 조세와 관련해 이해도가 높지 않을 뿐 아니라 정부가 ‘내 돈을 뺏어간다’는 식의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조세 제도 및 세수 구조가 복잡한 것을 넘어 국민이 조세에 관해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교육 기회가 부족한 데서 비롯된 결과라는 것이 김 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국민이 세금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기획재정부 세제실과 여야 정치권이 ‘그들만의 합의’를 통해 조세정책을 결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세 정책을 결정할 때 특정 이해집단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했다. 김 원장은 조세 교육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대표적인 사례로 스웨덴을 꼽았다. 올해 기준 한국의 조세 부담률이 23.2%인 데 비해 스웨덴은 40%를 넘는다. 김 원장은 “우리 국민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내는 스웨덴에선 오히려 세무당국의 신뢰도가 모든 분야를 통틀어 가장 높다”며 “스웨덴은 어렸을 때부터 생애 주기별 맞춤형 조세 교육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스웨덴은 주부와 은퇴자, 학생 및 이민자 등 다양한 분야의 국민을 대상으로 맞춤형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 김 원장의 설명이다.

김 원장은 “초등학교 때부터 조세 교육을 실시해야 세금에 대한 이미지 개선과 함께 시장경제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올 2월 연구원 내 전담 조직인 조세지식공유팀을 신설해 초등학생 대상 조세 교재 및 교육과정을 개발했다. 현직 초등학교 교사도 교재 개발에 참여했다. 국내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세 교재를 만든 것은 연구원이 유일하다.

연구원은 올해 세종 등 충청권역 37개 학급에 시범 교육을 했다. 초등학생 수준에 맞춰 쉽고 재미있게 조세의 필요성을 체득할 수 있도록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교육 결과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 및 교사들의 호응이 높았다는 것이 김 원장의 설명이다. 그 덕분에 내년에 교육 신청이 들어온 학급만 240곳이 넘는다고 했다. 학급 확대를 위해 내년 관련 예산을 올해 3억원에서 6억원으로 늘렸다. 연구원은 이날 세종 본원에서 정해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이혁규 청주교대 총장, 최교진 세종교육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조세교육사업 성과보고회를 열었다. 김 원장은 “내년엔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토론형 조세 교육 프로그램을 구축해나갈 예정”이라며 “교육부 및 교육청과 협의해 장기적으로 조세 관련 교과목도 편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