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파두 사태엔 기관 책임도 크다
반도체 팹리스 기업인 파두가 기술특례 방식을 통해 지난 8월 시가총액 1조5000억원의 유니콘 기업으로 화려하게 상장한 뒤 석 달 만인 지난달 제로(0)에 가까운 올 2분기 매출을 발표해 증시에 큰 충격을 줬다. ‘뻥튀기 상장’ 논란이 일며 주가가 폭락했고 투자자들은 회사와 주관사가 실적 쇼크를 알면서도 상장을 강행했다며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태세다.

파두 사태는 국내 기업공개(IPO) 과정 곳곳에 잠복한 제도 부실이 초래했다. 예비상장기업은 실적 공시 유예 규정을 잘만 활용하면 최대 6개월간 실적 쇼크를 숨길 수 있었다. 상장 단계마다 ‘문지기 역할’을 하는 주관사와 한국거래소, 금융감독원은 인력 부족 등으로 겉핥기식 부실 검증을 했다. 당국은 부랴부랴 제도 개선에 나섰다. IPO 직전 월매출 공개를 의무화했고, 주관사를 대상으론 상장 직후 급락 시 해당 공모주를 강제로 되사도록 하는 풋백옵션을 확대했다.

'부실 수요예측' 통해 공모가 결정

하지만 이번 사태 발생의 근본 배경에 대해선 아직 개선 논의가 없다. 가격 발견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는 현행 수요예측 제도가 그것이다. 국내에서 수요예측엔 공모주펀드 같은 기관만 참여한다. 전문가로서 예비상장사가 제시한 과거 및 미래 추정 실적, 사업성, 기술력 등 ‘펀더멘털 요인’을 면밀히 검증하고 적정 공모가를 산정하는 기능을 맡긴 것이다. 그 대가로 기관은 높은 비중의 공모주를 배정받는다.

하지만 국내에서 이 취지에 맞게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기관은 사실상 없다. 펀더멘털보단 ‘정성적 요인’을 더 많이 고려한다. 상장 직후 ‘따상’을 노리는 개미들이 몰려들어 공모가보다 높게 팔고 나올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그럴 것으로 예상되면 기관들은 공모가 밴드(범위) 최상단 이상 가격에 최대한 많은 물량을 풀베팅한다. 상장 첫날 이렇게 받은 공모주는 즉시 처분해 차익을 실현한다. 파두도 예외가 아니었다. 상당수 기관은 3~4년간 요건 미충족 등으로 IPO가 지연됐던 파두의 공모가가 고평가됐다고 의심했지만, 최상단 가격에 주문을 쏟아냈다. 파두 수요예측 경쟁률이 363 대 1에 달했던 이유다.

기관의 의무보유제도 강화해야

기관의 부실 수요예측은 사실 수십 년간 지속된 문제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코스닥 벤처, 하이일드 등 공모주 의무 배정 펀드가 급증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신규 상장주 급등을 노린 동학개미의 투기성 거래가 급증하는 것도 기관이 공모주로 단타 거래를 하도록 하는 요인이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계속 놔둘 순 없다. 수요예측 부실로 공모가의 고평가가 만연해 있고 파두 사태처럼 문제가 터지면 피해가 커지고 있다. 상장 직후 ‘역사적 고점’을 찍고 얼마 후 공모가 반토막 밑으로 떨어지는 공모주가 속출하는 배경도 된다. 이는 코스피·코스닥지수 상승의 발목을 잡는 주요 원인 중 하나란 분석도 있다.

높은 가격과 많은 물량을 써낸 순서대로 공모주를 나눠주는 방식부터 개선해야 한다. 일정 기간 의무보호예수 전면 도입을 포함해 기관이 보다 책임감 있게 공모가를 산정하고 그렇게 한 기관이 보다 많은 물량을 배정받는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제2의 파두 사태도 막고 국내 증시도 신규 상장주로 인한 지수 하락 부담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