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길 작은 흉상에 150여명 몰려…"영화 흥행에 가장 많은 추모객"
여야 정치권 모처럼 한목소리로 추모…유족·친구 "정의는 살아있어"
'서울의 봄' 참군인 김오랑 중령 44주기…고향 김해서 추모제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그이의 가슴에 탄환이 박히는 소리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가슴이 터지는 통증이 왔다.

(중략) 발길을 돌리기 어려운 그대의 무덤 앞에 나는 한 마리 새가 되어 운다네." (그래도 봄은 오는데 / 고 김오랑 중령 미망인 백영옥 자서전에서)
12일 경남 김해시 인제로 51번길 삼성초등학교와 삼정중학교 사이 좁은 길에 세워진 참군인 고 김오랑 중령(1944∼1979) 흉상 앞에 모인 참석자들은 추모 시가 낭독되자 숙연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44년 전 오늘 전두환 반란군에 맞서다 35살의 젊은 나이에 전사한 김오랑 중령을 기리기 위한 추모 열기는 뜨거웠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전 국민적인 관심을 끌면서 이날 김 중령 추모제에는 150명이 넘는 추모객이 모였다.

'서울의 봄' 참군인 김오랑 중령 44주기…고향 김해서 추모제
고인 흉상이 세워져 추모제가 열린 지난 10년간 가장 많은 추모객이다.

언론들의 관심도 높아 전국에서 온 언론매체들의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김해인물연구회와 활천동 주민자치위원회 등이 주관해 마련한 이날 추모제는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묵념, 김중령 약력 소개 및 경과보고, 헌시 낭독, 추도사, 내빈 인사, 유가족 인사 순으로 진행됐다.

고인의 흉상 주변에는 그의 고교 친구들의 모임인 칠형회 등 지인들이 놓아둔 하얀 국화꽃을 비롯해 태극기도 꽂혀 있었다.

추모제에는 김해지역 국회의원을 비롯해 전현직 여야 의원들이 함께 모여 모처럼 한목소리로 고인을 추모했다.

지역구 국회의원인 더불어민주당 민홍철(김해갑) 의원은 "아직도 오늘 이 자리가 지역 주민자치위원회 등에서 여는 것 같아 조촐하면서도 슬픈 추모제인 것 같다"며 "새롭게 공식적인 추모식을 열고 육군 사관생도들이 본받을 만한 행사로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은 고인의 특전사 후배인 김오랑기념사업회 김준철 사무총장이 낸 한권의 책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서울의 봄' 참군인 김오랑 중령 44주기…고향 김해서 추모제
유 전 의원은 "기념물은 앞으로 육군사관학교에 세워져야 하며 반란군과 맞서 싸우다 참군인으로 전사한 만큼 고인에게는 무공훈장이 수여돼야 한다"며 "우리에게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추도했다.

유 전 의원은 19대 국회 때 국회 국방위원장을 하면서 박근혜 정부 국방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야 의원들을 설득해 무공훈장 추서 및 추모결의안을 발의해 통과시켰다.

당시 정부는 2014년 고인에게 무공훈장 대신 보국훈장 추서를 결정했다.

민주당 김정호(김해을) 국회의원과 국민의힘 김정권 전 의원도 44년 전 참군인으로 장렬하게 전사했던 고인의 넋을 기렸다.

이날 추모제에서는 김 중령의 추모비가 고향마을인 김해 활천동 주민자치위원회에 의해 건립될 수 있었던 일화도 소개됐다.

활천동 주민자치위원회 윤용운 사무총장은 고인의 약력을 소개하면서 "국방부 등에서 반대해 추모비 건립이 지체되자 활천동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일일주점을 통해 성금을 모아 2014년 6월 6일에 여기에 추모비를 세웠다"고 설명했다.

10년 전 고인의 추모비 건립을 주도했던 유인석 전 건립위원장은 이날 "세월이 갈수록 자꾸 잊혀 갔지만 오늘 우리는 이렇게 당당히 함께 모여 있다"며 "역시 정의는 살아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서울의 봄' 참군인 김오랑 중령 44주기…고향 김해서 추모제
이날 추모제에는 그를 기억하며 해마다 참석했던 친구, 후배들도 함께했다.

김 중령의 친구인 배병희(80) 씨는 "참군인 오랑이가 이렇게 좁고 추운 골목에 외롭게 놔두면 안 된다"며 "정말 씩씩하고 의리 있는 친구였다"며 회상했다.

유족으로 유일하게 참석했던 고인의 조카 김영진(67) 씨는 "참군인의 길을 걷다 반란군과 맞서다 장렬히 전사한 삼촌의 빛나는 모습을 영화 '서울의 봄'을 통해 더 많은 국민에게 알려지고 오늘 이 자리에서 이렇게 추모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김 씨는 "고인의 기념물이 하루속히 육군사관학교에 세워지고 무공훈장을 받는 날이 오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김 중령은 1944년 김해 활천동에서 태어났다.

김 중령은 1979년 12월 13일 오전 0시 20분 신군부의 제3공수여단 병력이 M16 소총을 난사하며 특전사령부를 급습해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려 하자 비서실장으로 그를 지키며 교전하다 가슴과 배 등에 6발의 총을 맞고 전사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고인의 흉상을 세우는데 팔을 걷고 나섰던 활천동 주민자치위원회 주민들이 노란색 조끼를 입고 참석자들을 맞이했다.

이들은 차가운 날씨 속에 열린 추모제를 마친 후 미리 준비한 따뜻한 어묵탕 등으로 참석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서울의 봄' 참군인 김오랑 중령 44주기…고향 김해서 추모제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