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시렵지 않고 발이 시렵지 않은 어느 봄날이었다“
구자관 책임대표사원 / 삼구아이앤씨
직원수 4만 5천명을 돌파, 거의 대부분의 모든 직원이 정직원이며 명함을 가지고 있다. 이를 관리하는 전담부서도 있다. 회사의 리더는 출퇴근 할 때마다 마주치는 보안요원들에게도 90도로 인사를 한다. 팔순의 나이에도 아웃도어에 도전한다. 청소대행업에서 물류와 시설관리까지 사업영역을 확대시켜 ‘아웃(인력)소싱계의 삼성’이라 불리는 삼구아이앤씨의 구자관 책임대표사원(회장)의 이야기다.

신문배달에서 청소대행까지, 밑바닥부터 시작한 청년

구자관 회장의 인생이야기는 한 편의 서사시다. 양계장집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나 남부럽지 않게 부유한 유년시절을 보낸 그였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집안이 급격히 몰락한다. 어려운 형편에 다닌 초등학교 월사금을 내지 못해 졸업식장에서 졸업장도 받지 못하고 도망 나오듯이 학교를 나와야 했다. 14살부터 시작한 신문배달, 돈을 벌어야 했기에 온갖 궂은일을 마다않고 해야 했다.

야간고등학교 시절, 미아리 공장에서 일하면서 원단을 받아오기 위해 자전거로 새벽4시에 출발해 왕복 12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일주일에 두 세 번 다녀와야 하는 극도로 어려운 환경에도 그의 학업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구두닦이 보다 못한 청소로 사업시작하다

제대 직후인 1968년, 자릿세를 내지 못해 구두닦이도 할 수 없었던 그가 선택한 일은 식당 화장실 청소였다. 손님 받느라 화장실 관리를 하지 못하는 식당의 상황을 주의 깊게 지켜본 그는 식당주인을 붙잡고 “모든 궂은일을 할 테니 화장실 청소를 맡겨 달라”고 애원했다.

이제 나이 20대 초반의 청년이 냄새나고 지저분한 화장실에 들어갔다 오면 완전히 새 화장실처럼 깨끗하게 변하자 그를 찾는 단골 고객이 하나 둘씩 늘기 시작했다. 게다가 식당영업이 끝난 후 다음날 문을 열기 전까지 식당 청소까지 할 수 있는지 묻는 일도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성실함을 믿는 식당주인들도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청년에게 식당열쇠를 맡긴다는 것은 주저할 일이었다. 식당엔 돈이 될 만한 식재료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동감한 구 회장은 내가 당당해야 사업도 커질 수 있다는 생각에 법인을 설립하기로 결심한다. 그 결과, ‘삼구(三具)개발’이 설립된다.

사람, 신용, 신뢰.. 이 3가지만은 꼭

구 회장은 회사이름을 지을 당시의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삼구(三具)개발’ 은 대서방(지금의 대서소)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라 한다. 사업을 하기 위해선 ‘사람,신용,신뢰’ 라는 세 가지만 갖추면 된다는 생각을 전달했고,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바로 구 회장 본인이 이미 이름을 지어왔다며 회사명을 ‘삼구(三具)’ 로 지으라는 것이다. 세 가지를 갖추고 싶다 했고 당신 성(性)도 마침 ‘갖출 구’씨니 ‘세 가지를 갖춘다는 의미’로 갖출 구(具)를 넣어 ‘삼구(三具)’로 지으라는 것이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우연의 일치였다.

회사는 급격하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서울올림픽을 거치면서 경제가 부흥하고 신규건물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삼구를 찾는 고객들이 급속도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대방동에 5층짜리 사옥을 매입한 후 1년만에 회사는 위기에 처한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의 풍랑을 비켜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기를 구한 건 직원들이었다. 그들 스스로가 직접 청소와 경비복을 입고서라도 현장을 지켰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구 회장은 아내와 자식에게 준 지분 47% 모두를 직원들에게 골고루 나눠준다. 꼭 갖추어야 할 3가지 중에 ‘사람’을 지켜낸 셈이었다.

손이 시렵지 않고 발이 시렵지 않은 어느 봄날이었다

[명문장수기업] 사람,신용,신뢰.. 구자관 책임대표사원이 일군 인력소싱의 신화
삼구아이앤씨 본사 한쪽 벽면엔 “손이 시렵지 않고 발이 시렵지 않은 어는 봄날이었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구 회장이 처음 청소일을 하기 시작한 것이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기운이 가득한 어느 봄날이었음을 회상하고 기억하기 위함이다. 이는 그가 사업을 하는데 있어 시기에 맞는 적절한 아이템을 잘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한다. 이런 이유로 삼구는 지난해 연결매출이 2조 2백억 원을 넘기기도 했다.

해외직원까지 포함하면 직원수가 4만 5천여명에 이른다. 청소와 경비인력을 파견하는 곳만 해도 560여개가 넘고 계약을 통해 관리하는 현장 수만 해도 2천 5백 곳에 이르며, 32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아웃소싱계의 삼성‘이라 불리는 이유다. 최근 몇 년 동안엔 사업영역도 다양화 시켜 반도체 장비세척, 관련부품 운반사업도 시행중이다.

직원이 곧 가족입니다

구 회장은 “본인은 현장에 계신 구성원들 덕분에 월급을 받는 사람이지, 월급을 준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현장을 중심으로 투명하게 회사를 운영해왔고 ‘직원이 곧 가족’ 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전 직원에게 명함을 지급하고 ‘아주머니’ 가 아닌 ‘여사님’으로 호칭하는 것도 그가 직원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는지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단양에 짓고 있는 연수원이 올해 12월 15일쯤 완공되는데 우연히도 새로 입사할 공채직원들 기수가 39기인데 회사명인 ‘삼구’와 일치한다며 좋아하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중견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사옥이 없이 건물을 임대해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회사문화, 직원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 연수원부터 짓는다는 그의 말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도전에 나이가 있나요..끝없는 배움에 최선을
새로운 것에 끊임없이 도전 중인 구자관 회장
구 회장은 1944년 남양주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유년시절을 보내던 중 전쟁통에 가세가 기울었다. 하지만 학업만큼은 놓지 않고 이어간다. 직원수 4만5천명에 이르는 중견기업 삼구아이앤씨를 만들어내면서도 환갑의 나이지만 용인대 경찰행정학과를 입학해 배움에는 끝이 없음을 보여줬다. 이후 65살엔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에도 오르고 68살에 서강대 경제대학원에서 우수논문까지 쓰며 석사학위까지 받는다.

74세엔 세계3대 트래킹 코스인 뉴질랜드 밀퍼드 트레일(약88km)를 완주하고 팔순이 된 2023년 1월엔 5천 미터 상공에서 스카이다이빙도 성공한다. 끝없는 배움에 최선을 다하는 그는 오늘도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사람, 신용, 신뢰를 지키는 책임대표사원
[명문장수기업] 사람,신용,신뢰.. 구자관 책임대표사원이 일군 인력소싱의 신화
구 회장은 책임대표사원으로 호칭된다.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누구나 평등한 직장동료라는 생각이 그를 연신 90도로 인사하는 사람이 되게 했다. 그의 하루일과는 숨 쉴 틈 없다. 미팅과 회의, 모임 등의 일정으로 그의 스마트폰 일정표에는 빈칸이 거의 없을 정도로 빼곡하다. 바삐 이동해야 하지만 만나는 사람들에게 정성을 다해 인사하는 일만큼은 습관처럼 잊지 않는다. 그래서 직원들은 ‘대표’ 라는 호칭조차 빼고 그냥 ‘책임사원’으로 부른다고 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가장 자랑스러운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동안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한 보잘 것 없는 일로 취급됐던 청소와 경비업무를 하나의 산업으로 만든 일이다”라고 웃음 짓는 얼굴에 머잖아 글로벌 대표기업으로 성장할 ‘삼구아이앤씨’의 미래가 보였다.

한국경제TV 정성식 선임 ssjeong@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