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선서 집권당 후보 꺾고 대권 고지 '역전극'…'경제실정' 좌파 페론주의 심판론 작동
달러화 도입·중앙은행 폐쇄·中과 거래단절 공약…내달10일 취임, 정책 대전환 격랑 예고
중도보수 포함 기성 정치권 싸잡아 비판…일부 '과격 정책' 유보 가능성도
극우 아웃사이더 밀레이, 아르헨 대통령 당선 파란…"급진적 변화"(종합2보)
140%대의 연평균 인플레이션과 40%대 빈곤율로 신음하는 남미 아르헨티나에서 '괴짜' 극우파 정치인이 좌파 집권당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경제 실정론에 발목잡힌 좌파 집권당의 페론주의(후안 도밍고 페론 전 대통령을 계승한 정치 이념·여당 계열) 피로도가 누적된 상태에서 극우 계열의 비주류 이단아가 집권하게 됨에 대내외적으로 대대적 정책 변화의 격랑을 예고하고 있다.

하비에르 밀레이(53·자유전진당) 후보는 19일(현지시간) 대선 결선 투표에서 개표율 99.28% 기준 55.69% 득표율로, 44.30%의 표를 얻은 집권당의 세르히오 마사(51)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리고 낙승했다.

극우 계열 제3 후보였던 그는 지난달 본선 투표에선 29.99%의 득표율로 마사 후보(36.78%)에 밀렸지만, 1,2위 후보간 맞대결로 치러진 이날 결선에서 역전 드라마를 연출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마사 후보는 공식 개표 결과가 나오기 전 먼저 자신의 패배를 승복하며 "밀레이의 당선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애초 결선을 앞두고 진행된 각종 여론조사 추이상으로는 예측불허의 박빙 대결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됐지만, 실제론 투표 종료 이후 2시간여 뒤인 이날 오후 8시 10분 전후 일찌감치 승부가 판가름 났다.

대선 결선 투표율(잠정)은 76.3%대라고 아르헨티나 선거 당국은 밝혔다.

유권자는 3천500여만명(인구 4천600여만명)이었다.

극우 아웃사이더 밀레이, 아르헨 대통령 당선 파란…"급진적 변화"(종합2보)
밀레이 당선인은 기성정치권에 대한 민심 이반을 등에 업고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다.

2021년부터 하원 의원을 지내고는 있지만, 정치적 존재감은 거의 없던 '아웃사이더'에 가까웠다.

그러다 지난 8월 대권 향배를 가늠할 수 있는 예비선거(PASO·파소)에서 중도우파 연합 파트리시아 불리치(676) 전 치안 장관과 마사 후보를 누르고 깜짝 1위를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이후 줄곧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달려온 밀레이 당선인은 본선에서 2위에 그치며 잠시 주춤했으나, 결선 투표에서 역전극으로 결국 대권을 거머쥐었다.

밀레이 당선인은 이날 밤 당선 확정 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엘리베르타도르 호텔 선거캠프에 준비된 단상에 올라 "19세기에 자유경제로 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의 잃어버린 번영을 되찾겠다"며 "점진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며 급진적인 변화만이 있을 뿐"이라고 역설했다.

여러 차례 연설에서 자신을 '자유주의자'라고 규정한 그는 지난 수십 년간 아르헨티나 현대 정치사를 지배한 페론주의를 비롯해 중도우파의 '마크리스모'(마우리시오 마크리 전 대통령을 계승한 정치 운동)까지 좌우를 막론하고 기성정치인 모두 심판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밀레이 당선인은 결선을 앞두고 마크리 측 지원을 받긴 했으나, 기본적으론 기성 정치권에 대한 민심 이반을 지지 기반으로 삼고 있다.

우파인 마크리 전 대통령(2015∼2019년 재임) 시절 아르헨티나는 직전 좌파 정부 때보다 경제가 더 악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극우 아웃사이더 밀레이, 아르헨 대통령 당선 파란…"급진적 변화"(종합2보)
밀레이 당선인은 아르헨티나 페소화를 달러로 대체하는 달러화 도입, 중앙은행 폐쇄, 장기 매매 허용 등 다소 과격한 공약을 내세우며 "새 판을 짜자"는 전략으로 지지층을 결집했다.

그는 유세 기간 지지자에게 "제 목표는 현대 민주주의 역사가 낳은 가장 비참한 정권, 현 정부를 종식하는 것"이라며 "변화를 원하는 우리가 모두 함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가라앉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당선인은 또 현재 18개인 정부 부처를 최대 8개로 줄이는 안과, 장기 매매 합법화도 예고했다.

여러 정책과 언행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것과 닮았다는 이유로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과도 이미지가 흡사하다.

밀레이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중국·브라질과 거리를 두면서 친(親)미·친이스라엘 행보를 보여왔다.

그는 "미국과의 외교를 강화하고, 중국과는 거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다만 당선 확정 연설에선 "우리는 모든 국가와 협력할 것"이라며 정책 수정 여지를 남겼다.

극우 아웃사이더 밀레이, 아르헨 대통령 당선 파란…"급진적 변화"(종합2보)
극우 아웃사이더 밀레이, 아르헨 대통령 당선 파란…"급진적 변화"(종합2보)
러닝메이트인 빅토리아 비야루엘(48) 부통령 당선인 역시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주목받은 바 있다.

비야루엘 부통령 당선인은 이른바 '더러운 전쟁'(1976∼1983년)으로 불리는 군부 독재정권 시기 정부에 의해 자행된 고문과 실종 등 각종 범죄 행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그 시기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최근엔 방탄소년단(BTS)을 조롱하는 옛 소셜미디어 게시물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국내외 K팝 팬들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본선 1위로 결선 투표에 올랐던 마사 후보는 현 정부 경제 장관으로서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비판 속에 결국 고배를 마셨다.

좌파 포퓰리즘 지적이 제기된 페론주의에 대한 심판론 정서가 먹혔다는 것이다.

AFP 통신은 "자칭 '무정부 자본주의자'가 장기집권 포퓰리스트인 페론당 연합 치하에서 수십년간의 경제 침체에 진저리가 난 아르헨티나인들에게 열광적 반응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마사 후보는 그는 여당 프리미엄을 등에 업은 감세 정책과 보조금 지급 등으로 승기를 굳히려 했지만, 정권 교체를 바라는 민심을 거스르진 못했다.

2000년대로만 한정하면 20년 가까이 집권한 페론주의 정당이 정권을 내준 건 마크리와 밀레이에게 뿐이다.

밀레이 당선인은 내달 10일 임기 4년의 대통령에 취임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