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과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은 16일 국회에서 민당정협의회를 열어 상환기간과 담보비율 일원화 등을 핵심으로 한 공매도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왼쪽 세 번째)이 제도 개선안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국민의힘과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은 16일 국회에서 민당정협의회를 열어 상환기간과 담보비율 일원화 등을 핵심으로 한 공매도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왼쪽 세 번째)이 제도 개선안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금융감독당국과 국민의힘이 16일 민당정협의회를 통해 공개한 공매도 제도 개선 초안이 확정돼 시행되면 국내 공매도 시장은 한층 ‘평평한 운동장’으로 바뀐다. 개인투자자와 기관·외국인 간 거래 조건이 대부분 통일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초고위험 투자 방식인 공매도의 문턱이 크게 낮아지면서 개인투자자는 위험에 한층 더 많이 노출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무한 손실’ 가능한 공매도 쉬워져

개미들, 기관처럼 공매도 가능해졌지만…손실 위험 커질 수도
금융당국은 자본시장법과 금융투자업 규정 등을 개정해 개인이 주로 활용하는 공매도 현금 담보비율을 기존 120%에서 105%로 완화할 계획이다. 기관투자가와 같은 조건이다. 담보비율이 낮아지면 기존보다 적은 돈으로도 공매도 투자에 나설 수 있다.

당국 안팎에선 이 같은 결정이 개인의 위험 노출을 크게 높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방식이어서 주가가 오를수록 돈을 잃는다. 주식 가치가 상승할 때 상승폭은 이론적으론 한계가 없다. 일반적으로 주식을 매수하는 경우엔 손실폭이 아무리 커봐야 투자 원금 수준에 그치지만, 공매도는 이론상 투자 손실 규모가 무한한 이유다.

전문가들은 당국이 일부 여론에 따라 수치상 형평성을 맞추는 일이 자칫 ‘정글의 문’만 넓히는 조치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기관·외국인과 개인 간 신용, 자본력, 정보력 격차가 커서다. 전직 금융감독당국 관계자는 “해외 주요국이 기관과 개인 간 공매도 담보비율에 차등을 두지 않는 것은 한국만큼 개인투자자 비율이 높지 않기 때문”이라며 “금융 지식과 위험 감수력이 높은 전업투자자 위주로 개인 투자가 이뤄지는 외국 시장과 국내 시장을 동일하게 놓으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한국은 개인투자자 거래 대금 비중이 64%에 달한다. 미국과 일본 등의 두 배 수준이다.

금융감독당국도 이 같은 우려를 의식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뚜렷한 예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개인투자자의 공매도 담보비율 인하에 따라 반대매매 발생 시 바로 손실이 확정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안내를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신뢰 올릴 방법 맞나” 의구심

일각에선 공매도 개선 시도의 본질이 흐려진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당초 시장 건전성과 효율성 개선이 목표였지만,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논의가 급물살을 타자 일부 여론을 만족시키는 데 더 무게를 둔다는 지적이다.

금융위는 이날 “개인에게 기관보다 더 유리한 공매도 여건을 조성할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각기 다른 거래 주체가 모인 시장을 관리하는 정부 입장치고는 매우 이례적이란 평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개인투자자 등의 신뢰를 높이려 한다면 불신의 진짜 문제인 불공정 거래를 적극 단속해 처벌하고, 시장에 쌓여 있는 각종 오해를 차분히 푸는 것이 우선”이라며 “당국이 여론 눈치 보기에 급급해하면 장기적으로는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다”고 지적했다.

공매도 담보비율과 상환기간 조정을 제외한 개선안 내용은 그리 새롭지 않다는 평가다. 이미 수년간 집중적으로 논의해 추진 과정에 있는 사안들이 많아서다. 불법 공매도 적발 노력을 강화하고 처벌·제재 방안을 다양화하는 게 대표적이다. 금융감독원은 공매도 조사 전담 조직인 공매도특별조사단을 동원해 글로벌 투자은행(IB) 불법 공매도 거래 전수조사에 나서겠다고 했다. 공매도 전면 금지 이전인 지난달부터 추진한 내용이다. 금융감독당국이 주요 안으로 내세운 공매도 규정 위반자 제재 수단 다양화, 처벌 수준 강화 등과 관련해서도 수년 전부터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여럿 발의돼 국회에 계류돼 있다.

당정은 이번 안은 최종 결론이 아니라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날 “유관기관과 업계, 연구원들이 협의한 내용으로 제도 개선 출발점을 제시한 것”이라며 “공론화 과정을 거쳐 개선안을 확정하고 후속 조치를 하겠다”고 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