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교생이 유럽리그로 직행한 첫 사례…"힘든 시간 견딜 각오했다"
'이탈리아행' 고교생 이우진 "국외파 배구 국가대표가 목표"
한국 고교생 중 최초로 유럽프로배구에 직행한 이우진(18·경북체고)이 "열심히 배워서 국외파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15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마치고 만난 이우진은 "힘든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정말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그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것도 알고 있다"며 "오랫동안 유럽리그에서 뛰며 성장해, 한국 국가대표로 국제 무대에 서고 싶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남자프로배구 1부리그 베로 발리 몬차는 지난 7일 "키 195㎝의 아웃사이드 히터 이우진과 인턴십 계약을 했다"고 밝혔다.

실제 입단에 합의한 건, 9월 말이다.

지난 8월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19세 이하 세계배구선수권대회에 한국 청소년 대표팀 아웃사이드 히터로 출전한 이우진에게 이탈리아 에이전트가 "이탈리아리그에서 뛰어보지 않겠나"라고 제의했다.

당시 한국은 30년 만에 3위에 올랐고, 이우진은 베스트7에 선정됐다.

이우진은 "사기 아닌가"라고 의아해했지만, 일본 남자배구의 아이콘 이시카와 유키의 이탈리아행을 도왔던 에이전트는 이우진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했다.

'이탈리아행' 고교생 이우진 "국외파 배구 국가대표가 목표"
이탈리아 에이전트가 이우진의 이탈리그행을 권유한다는 소식을 들은 김연경(흥국생명)이 유럽 사정에 밝은 자신의 에이전트 임근혁 IM 컨설팅 대표를 이우진의 부모에게 소개했고, 9월 말에 이탈리아 1부리그 몬차와 '입단 계약'을 했다.

이탈리아리그가 만 19세 미만 외국인 선수의 공식 경기 출전을 금지해 이우진은 우선 인턴십 계약을 했다.

몬차는 이번 시즌을 포함한 3년 계약을 제시했다.

일단 이우진의 부모와 임근혁 대표는 '내년 2월 말에 인턴십 계약을 종료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이우진이 원하면, 기존에 합의한 몬차와의 '3년 계약'이 완전하게 성사된다.

아들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이우진의 부모는 "장학금을 받으면서 배구 유학을 한다고 생각하자"고 말했지만, 이우진은 "꼭 이탈리아리그에서 뛰겠다.

열심히 배울 각오를 이미 했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2023-2024 이탈리아리그는 10월에 개막했고, 몬차는 개막전 포함 4연승을 거뒀다.

'19세 미만 외국인 선수 출전 금지' 규정 탓에 이우진은 내년 5월까지는 공식 경기에 뛸 수 없다.

하지만, 1부 리그 선수단과 동행하며 함께 훈련하고, 평가전 등을 통해 성장을 꾀한다.

당연히 통역을 포함한 모든 비용을 구단이 지불하고, 이우진은 월급도 받는다.

'이탈리아행' 고교생 이우진 "국외파 배구 국가대표가 목표"
한국 배구 선수가 고교 졸업과 동시에 유럽리그에 직행한 건, 이우진이 처음이다.

한국프로배구가 출범한 2005년 이후에는 남자부 문성민(현대캐피탈)이 2008년 경기대 졸업을 앞두고 독일리그에 진출했다.

김연경은 V리그에서 뛰다가 임대 형식으로 일본리그에서 뛴 뒤 튀르키예 리그를 누볐다.

과거에는 박기원 현 태국대표팀 총감독,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 김호철 현 IBK기업은행 감독이 한국 실업팀에서 뛰다가 유럽에 진출했다
이우진은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아 영광이다.

사실 올해 8월 19세 이하 세계배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하기 전까지는 국외 진출을 상상도 하지 않았다"며 "이탈리아 구단의 제의를 받고도 처음에는 '한국에서 뛰겠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배구를 배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마음을 바꿨다.

지금은 유럽리그에서 오래 뛰고 한국 성인 대표팀에 뽑히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밝혔다.

'이탈리아행' 고교생 이우진 "국외파 배구 국가대표가 목표"
한국프로배구 V리그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1∼2순위에 뽑히면 계약금 1억6천만원을 받는다.

또한, 상대적으로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우진은 과감한 도전을 택했다.

이우진의 어머니 이미옥 씨는 "아들의 뜻을 따랐다.

원래 우리 부부는 자녀의 의사를 존중하며 키웠다"며 "이탈리아리그 진출을 택한 것을 두고 '무모하다'는 말을 하는 분도 있었다.

하지만, 우진이는 늘 조용하게 자신이 내세운 목표를 하나씩 이뤄왔다.

아들의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한다"고 말했다.

일본 남자배구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 중심부에 진입했다.

일본 남자배구의 세계 랭킹은 4위로, 28위의 한국보다 24계단이나 높다.

일본프로배구를 거치지 않고, 유럽배구로 직행한 이시카와(현 파워 발리 밀라노), 다카하시 란(몬차)이 일본 배구대표팀의 측면 공격을 담당한다.

이우진은 "내 롤모델이 이시카와와 허수봉(현대캐피탈) 선배"라며 "다카하시와 같은 팀에서 훈련하게 돼 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탈리아리그에서 뛰는 이시카와의 모습을 옆에서 볼 수도 있다.

지금은 이시카와와 다카하시를 보며 열심히 배우고, 나중에는 한국 남자배구가 일본을 넘어서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바랐다.

19세 이하 세계배구선수권에 함께 출전한 이우진의 '청소년대표 동료'들은 단체 메신저방에서 "우진아, 축하해. 나중에 성인 대표팀에서 만나자"고 했다.

이우진과 친구들의 바람이 이루어지면, 한국 남자배구도 반등할 수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