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정치혁신, 미래 위한 큰 그림 그려라
미국 정치, 한국 정치가 모두 소수 강경파에 휘둘리고 있다. 지난달 미국에서는 의정 사상 처음 하원의장 해임 사태가 벌어졌다. 친(親)트럼프계 공화당 강경 보수 ‘프리덤 코커스’ 소속 의원 8명이 같은 당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 해임을 주동했다. 매카시 하원의장이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을 막으려고 2024년 예산안을 통과시켰다는 이유였지만 소수 의원에 의해 의회정치가 마비된 것은 분명하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가 지적한 ‘비토크라시(vetocarcy·거부 민주주의)’가 미국 정치를 지배하게 됐다. 문제는 이 “비토크라시가 글로벌 미국 파워 쇠퇴를 초래할 것”이라는 후쿠야마의 지적에 있다.

지난주 더불어민주당은 ‘불법파업을 조장해 산업생태계가 붕괴될 것’을 우려하는 재계와 국민의힘의 반대에도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과 방송 3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민주당은 또 ‘이재명 대표 관련 수사를 지연시킬 것’으로 비판받는 검사 탄핵안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안 발의를 철회하고 추후 재발의하겠다고 했다. 외부 지원을 등에 업은 당내 소수 강경파 의원이 주도하고 있다.

핵심은 이런 비토크라시 정치가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훼손하듯 소수 강경파 주도 정치가 국가 쇠락으로 이어질까 두렵다는 것이다. 국가 쇠락을 막으려면 정치를 혁신해야 한다. 정치혁신을 위해 민주당은 혁신위원회를 가동해 종결한 바 있고, 국민의힘은 혁신안을 도출 중이다. 하지만 두 당 혁신위가 혁신안을 제시는 하지만 당의 모습을 그럴듯하게 바꾸는 ‘화장’이나 ‘작은 변신’에 치중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소수 강경파에 휘둘리는 국회와 극단적 대결정치를 ‘창조적으로 파괴’해 혁신하는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 혁신위는 ‘국회의원 공천 평가 시 공직윤리 부적격자를 배제하고, 당내 경선 단수공천 허용 범위를 최소화하고, 경선 시 국회의원 하위 평가 30% 해당자에 대해 감점 강화’를 제안했다. 당연히 했어야 할 방안이라 울림이 작았다. 불체포특권 포기 및 체포안 가결 당론 채택도 제안했지만 이 대표 체포동의안 찬성 의원 색출 논란으로 흐지부지됐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은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준석 전 대표를 사면했을 뿐 의원 정수 10% 감축, 불체포특권 포기, 의원 세비 삭감, 현역 의원 평가 후 하위 20% 공천 배제는 아직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지도부와 친윤석열 핵심들에 대한 총선 불출마와 수도권 험지 출마’도 요구하고 동참도 설득하고 있지만 당사자들의 무반응으로 지지부진하다. 3차 혁신안으로 ‘비례대표 당선권에 청년 50% 배치 의무화’를 의결했지만 김영삼 ‘40대 기수론’의 시각에서 본다면 정당한 요구인지 의문이다. 청년은 도전이지 시혜 대상이 아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혁신위가 권한의 한계가 있지만 ‘포장’에 치중하며 근본 정치혁신을 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문제다. 미래를 먹여 살리는 혁신안으로 정책 노선을 바꾸거나 소수 강경파가 주도하는 정치구조를 혁신하는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

영국 노동당은 토니 블레어를 당 대표로 내세워 국유화 정강을 폐지하고 ‘제3의 길’로 노선을 변경해 1997년부터 13년간 집권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경제민주화로 정책 노선을 변경해 18대 대선에서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절반이 넘는 51.55% 득표율로 당선됐다. 국민의힘은 이념정치를 넘고 민주당은 포퓰리즘에서 벗어나 정부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인 ‘저성장’ ‘저출산’에 대한 도전적 정책 제시로 유권자를 사로잡아야 한다. 정치권이 미래 먹고사는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기는커녕 기업 발목 잡기, 나눠주기 포퓰리즘, 당 대표 방탄과 용산 감싸기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국민들이 특권을 내려놓고 숫자도 축소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혁신위는 국민 눈높이에 맞춰 의원 정수 감축, 보좌진 감축, 세비 감축, 특권 감축을 과감히 제안해야 한다. 또 소수 강경파가 준동하지 못하도록 불체포특권 포기는 물론 국회 내 의원 발언에 대한 면책특권도 내려놔야 한다. 불체포·면책특권은 권위주의 왕정의 유산이다. 소수 강경파 주도의 대결정치를 없애는 정치혁신, 미래를 준비하는 정책혁신에 국민이 목말라하고 있다. 대결정치를 바꾸고 미래를 준비하는 큰 그림 정치혁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