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교육청·LH·대의초 손잡고 '작은학교 살리기'…전교생 1년반만에 16→31명
독서-영어, 골프·악기·텃밭 가꾸기 등 '특색교육'으로 학생 유치…"기적에 가깝다"
"사교육비 절감·학력 향상, 만족도 높아"…'학부모 일자리' 해결은 과제

[※ 편집자 주 = 2010년대 중반 지역소멸론이 제기된 당시 79개이던 '소멸 위험' 지역은 올해 118곳으로 늘었습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절반을 넘습니다.

이제 그 그림자는 대도시까지 드리우고 있습니다.

모두가 암울한 현실만을 얘기하는 이때 온 힘으로 저출산과 초고령화에 맞서는 지자체들이 있습니다.

지자체와 주민들이 힘을 모아 출산율을 끌어올리고 인구 유치에 발 벗고 나서는 그곳, '지방소멸에 맞서는' 그곳들이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그 현장을 생생하게 취재해 매주 월요일 1편씩 기획 기사를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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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소멸에 맞서다]㉖ 의령 산골 초등학교의 '기적'…"학생들이 몰려왔다"
전교생 수 '16명'.
인구가 2만5천620명(행정안전부 2023년 9월 주민등록인구 현황 기준)에 불과해 소멸 위기에 처한 초미니 지방자치단체 경남 의령군에 있는 대의초등학교의 2021년 3월 기준 전교생 숫자다.

이 학교는 소멸 위기 농촌에 있다는 점을 고려해도 웬만한 초등학교 1개 학급 당 학생 수(20명대)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학생 수가 적었다.

이런 대의초에 2021년 가을부터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2021년 3월 16명이던 학생이 지난해 10월 31명까지 늘었다.

1년 반 만에 15명이 입학해 전교생이 2배가량 증가했다.

6학년생이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올해 학생 수는 26명이다.

학교 병설 유치원생도 2021년 5명에서 이듬해 8명, 올해는 10명까지 늘었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까지 합치면 2021년 21명에서 올해 36명으로 증가했다.

대의초 한 교사는 "학생 수가 이렇게 증가한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말했다.

[지방소멸에 맞서다]㉖ 의령 산골 초등학교의 '기적'…"학생들이 몰려왔다"
비결은 뭘까.

경남도, 경남도교육청, 대의초가 '작은 학교 살리기 프로젝트 사업'에 전력투구해 학교와 마을을 살린 결과다.

이 프로젝트는 전국 최초로 시행한 교육 자치와 행정 자치의 통합 행정 사업이다.

도와 도교육청이 해당 지자체,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와 협력해 학생 수 60명 이하의 작은 학교를 지원함으로써 인구 유입 효과를 거두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도와 도교육청, 의령군이 각 5억원씩 15억원을 부담했고, LH가 20억원을 지원했다.

LH 등이 마련한 주택에는 총 14가구, 50여명이 산다.

의령에 없던 인구가 늘어난 것이다.

지원 대상 학교가 있는 마을에 공공임대주택을 건립하고 빈집 개조 등을 통해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가구를 유치한다.

인구 절벽으로 어려움을 겪는 지자체와 존폐 위기에 처한 학교가 힘을 합쳐 정주 여건을 개선하고 초등학생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해 외지인을 끌어당긴다.

이 프로젝트는 박종훈 경남교육감의 공약인 '지역과 함께하는 학교' 사업의 하나다.

대의초는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을 시행하며, 존폐 위기에 놓인 학교와 소멸 위기의 지방 도시를 재생할 좋은 본보기로 자리 잡았다.

[지방소멸에 맞서다]㉖ 의령 산골 초등학교의 '기적'…"학생들이 몰려왔다"
◇ 대도시에 뒤지지 않는 학습 과정…독서·영어 생활화
취재진이 찾은 대의초는 여느 시골 학교처럼 조용했다.

'ㄷ'(디귿)자 모양 단층 건물과 체육 시설 외에 정문 오른편에 대형 유리와 밝은 조명등이 눈에 띄는 공간이 있다.

이 학교의 특색 교육 중 하나인 '책 읽는 즐거움. 서(書)로 서로 북(Book)돋움'이 이뤄지는 글나눔터 도서관이다.

대의초는 교과과정 외에 독서가 학생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독서 친화적 환경을 만들고자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늘 글을 읽는 '수불석권(手不釋卷)'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가족·교사와 함께하는 책 읽기, 독서기록장 쓰기, 독서 동아리 운영, 매일 30분 이상 책 읽기 운동 등을 한다.

4∼5학년 학생이 삼삼오오 모여 독서를 주제로 대화하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이곳에는 동화책, 그림책, 베스트셀러 등 초등학생이 읽을만한 책 7천200여권이 마련돼 있다.

대의초의 또 다른 특색 교육이자 자랑거리는 영어다.

'세계와 함께 자라는 펀앤런 잉글리쉬(Fun&Learn English)'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은 전 학년이 영어에 익숙해지도록 만드는 특색 교육이다.

윤신현 교감은 "제자들이 생활의 일부처럼 영어를 열심히 배우고 익힌다"며 "우리 학생을 지구촌 세계시민으로 만드는 과정이다"고 소개했다.

영어 회화 전문 강사, 원어민 교사 등이 영어를 가르치고, 한국교육방송공사 영어전문채널(EBS-e) 초등영어 등을 활용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또 전교생이 제주도에 있는 교육부 국립국제교육원 영어교육센터의 차세대 글로벌 영어 캠프에 매년 참가해 영어와 친숙해진다.

취재진이 학교를 찾았을 때도 학생 10여명이 한국인 강사가 진행하는 5∼6학년 대상 영어 방과 후 수업을 듣고 있었다.

윤 교감은 "대의초 학생 영어 실력이 대도시 학생과 견주어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고 자랑했다.

이런 학습 프로그램을 짠 송상원 연구부장은 "특색 교육을 통해 사교육비 절감과 학력 향상 등의 효과가 있었다"며 "다른 지역에서 온 학생도 학교생활에 만족도가 높다"고 귀띔했다.

[지방소멸에 맞서다]㉖ 의령 산골 초등학교의 '기적'…"학생들이 몰려왔다"
◇ 학교 안팎 모든 곳이 교실…어디서나 배운다
대의초 학년별 학생 수는 1학년 3명, 2·3·5학년 각 4명, 4학년 5명, 6학년 6명이다.

원래 고향이 의령 대의면인 학생은 6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20명은 경기, 전남, 전북, 부산 등 다른 지역과 경남의 다른 시·군에서 전학을 왔다.

대도시와 중소도시에서 살다가 사교육과 거리가 먼 두메산골로 학부모와 학생이 모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주 여건 개선, 영어와 책 읽기 외에도 대의초 자랑거리는 '돌봄과 방과 후 학교'다.

돌봄과 방과 후 학교를 통해 전교생이 하나 이상 악기를 다루는 법을 배운다.

진주시 등 주변 지역에 있는 전문 강사가 학교로 와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등 다양한 악기를 가르친다.

정기적으로 음악회도 연다.

다양한 음이 하나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듯 음악을 통해 다른 지역에서 온 학생이 하나가 된다.

악기 외에도 배구, 골프, 배드민턴, 수영 등 다양한 체육활동과 배추 심기 등 텃밭 가꾸기도 돌봄과 방과 후 학교에서 시행한다.

체육시설에는 골프와 배구 연습에 몰두하는 학생이 많았다.

골프를 치던 5학년 학생은 "학교에서 골프를 배우는 게 신기하고 재밌다"고 전했다.

윤 교감은 "경쟁보다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교육을 하려 한다"며 "교사, 강사 등 학교 전체가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방소멸에 맞서다]㉖ 의령 산골 초등학교의 '기적'…"학생들이 몰려왔다"
◇ 참교육에 학부모가 반하다…'의령 맹모삼천지교'
사교육 바람이 심한 대한민국에서 유명학원 한곳 없는 인구 2만5천명대의 의령군에 '맹모삼천지교'가 진행되고 있다.

평생을 수도권에서 산 박정기(44) 씨는 아내와 초등생이던 두 아들과 함께 2년 전 삶의 터전을 의령으로 옮겼다.

전입에 앞서 다른 지자체도 둘러봤다가 돌봄과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이 우수한 의령행을 결심했다.

박씨는 "코로나19가 심했을 때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과 동네에만 머물렀는데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귀촌을 생각했다"며 "이 과정에서 대의초를 알게 됐고, 현장 방문 등을 통해 의령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대의초에서 다양하게 배우고 자연 속에서 살면서 한결 표정이 밝아지고 자신감이 넘친다고 전했다.

다양한 학습 커리큘럼에 매우 만족한다고도 했다.

[지방소멸에 맞서다]㉖ 의령 산골 초등학교의 '기적'…"학생들이 몰려왔다"
지난 9월 부임한 박해순 대의초 교장도 같은 반응이다.

박 교장은 "30여년 간 교편생활 중 대의초 학생의 표정이 유난히 밝고 자신감이 넘치는 것 같다"며 "복도에서 만나는 제자마다 매우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게 인상적이었다"고 밝혔다.

지방소멸에 맞서 행정과 교육당국이 힘을 합치고, 두메산골 초등학교 교사들의 열정으로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은 현재까지 성공적이다.

타지역에서 초미니 지자체 의령에 있는 대의초에 전학을 오는 일이 현실이 됐고, 인구 유입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교육 인프라가 잘 구축된 것에 비해 전학해 온 학생들의 가족 등이 일할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문제 등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한 학부모는 "짧지 않은 시간을 들여 최근 일자리를 얻었다"며 "더 많은 일자리가 보장된다면 더 많은 사람이 의령으로 올 것이다"고 장담해 중장기적인 과제를 남겼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