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 연인 우희 역…"화장·매니큐어 더 예쁘게 하고 싶은 욕심 생겨"
예능·뮤지컬도 출연…"제 뿌리는 '소리', 10년 만에 '춘향가 공부 끝내"
'패왕별희' 소리꾼 김준수 "연습 때도 치마 입고 사뿐사뿐 걷죠"
얼굴에 새하얀 분칠을 하고, 몸 선을 드러내는 새빨간 의상을 입은 우희는 경극 '패왕별희'에서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캐릭터다.

동명 영화에서 장궈룽(장국영)이 극 중 경극 배우로 여장했던 캐릭터로도 유명하다.

이 역을 창극 무대에서 소리꾼 김준수(32)가 맡는다.

다음 달 11일부터 18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하는 창극 '패왕별희'는 국립창극단의 가장 파격적인 레퍼토리다.

2019년 초연과 재연 이후 4년 만에 중극장에서 대극장으로 규모를 키워 올리는 공연이다.

김준수는 초연과 재연 때도 우희 역을 맡아 중국 경극의 전설적 배우 메이란팡을 보는 것 같다는 호평을 받았다.

지난 25일 국립극장에서 만난 김준수는 "작품을 할 때마다 캐릭터에 몰입하려고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더더더더' 노력했다"고 힘줘 말했다.

배역이 달라질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 창극 무대에 서는 소리꾼의 자질이지만, 남자인 그가 여자 캐릭터 우희를 연기하는 데는 '더'가 4번은 들어가야 할 만큼 노력이 필요했다.

캐릭터의 성별뿐만 아니라 손끝으로 세상을 표현한다는 경극의 몸짓을 익히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김준수는 "여성이 가진 섬세함과 유연함이 필요한 역이라 연습실에서도 계속 치마를 입고 있다"며 "손동작이나 몸동작을 여성적인 선을 살리면서 작게 해야 하고, 보폭을 아주 짧게 해서 걸어야 한다.

그렇다고 요란하면 안 되고, 우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성격이 급한 편이어서 평소 걸음걸이가 빠르다.

사뿐사뿐 걷는다고 걷는데도 남성적인 면이 툭툭 튀어나온다"고 머쓱해했다.

'패왕별희' 소리꾼 김준수 "연습 때도 치마 입고 사뿐사뿐 걷죠"
김준수가 여성 캐릭터를 맡은 건 '패왕별희'가 처음은 아니다.

2016년 초연한 '트로이의 여인들'에서 헬레네 역을 맡았다.

다만 헬레네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존재로 중성적인 느낌이 강한 캐릭터였다.

머리 스타일도 가발 없이 짧은 상태 그대로 무대에 올랐다.

반면 우희는 항우와 슬프고 애절한 사랑을 나누는 여성이다.

머리카락도 엉덩이를 덮을 정도로 길게 내려오고, 진한 화장은 물론 긴 손톱에 빨간 매니큐어도 칠한다.

의상에서도 호리호리한 몸 선을 한껏 드러낸다.

김준수는 "사실 초연 때는 빨간 매니큐어나 긴 머리, 치마 모든 게 다 어색했다.

사람들의 시선도 의식했던 것 같다"며 "그런데 지금은 예뻐 보이고 싶은 욕심에 얼굴에 뭐라도 하나 더 바를 수 있을지, 네일아트도 뭘 더 해야 할지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러 살도 2㎏ 정도 뺐어요.

의상이 타이트하거든요.

재연 때는 의상을 좀 더 넉넉하게 만들어주셨는데, 핏(모양새)이 타이트할 때보다 안 예쁘니까 도저히 못 입겠는 거예요.

옷 자체에 우희의 예쁜 선이 들어가 있는데, 그 디자인을 포기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이번에는 핏도 살리면서 팔을 들거나 움직일 때 안 불편할 정도로 옷을 고쳤어요.

"
'패왕별희' 소리꾼 김준수 "연습 때도 치마 입고 사뿐사뿐 걷죠"
우희는 '패왕별희'의 명장면인 '쌍검무'도 소화해야 한다.

양손에 긴 칼을 들고 추는 고난도 검무다.

이 춤의 백미는 허리를 뒤로 90도 가까이 젖히는 장면이다.

김준수는 '쌍검무'를 어떻게 준비하냐고 묻자 "너무 혹독해요"라며 웃었다.

그는 "허리 꺾는 신이 딱 절정이다.

우희가 항우의 이별을 암시하는 이별의 춤이라 잘 마무리돼야 관객들도 함께 슬픈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다"며 "그러다 보니 허리를 꺾을 때 검이 땅에 닿는 순간까지 꺾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초연 때는 춤추다 보면 숨이 턱까지 차서 노래를 부르는 게 힘들었다"며 "지금도 힘든 건 마찬가지지만, 그때의 호흡을 알고 있어서, 호흡을 분배할 줄 알게 되니 여유가 좀 생겼다"고 덧붙였다.

창극에는 없는 경극 특유의 손동작을 따라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판소리에도 소리의 가락이나 사설의 극적인 내용에 따라 감정을 표현하는 몸짓인 '발림'이 있지만, 경극의 손동작은 마임처럼 극의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어서 차이가 있다.

김준수는 "소리꾼의 발림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지만, 경극의 손동작은 정형화돼 있다"며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손동작으로 표현한다.

'대왕님, 근심을 달래보시는 게 어떠신지요' 이 대사도 '근심', '달래다', '어떤가' 하나하나 표현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창극 '패왕별희'가 경극의 양식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시각적인 부분은 경극의 요소를 살리되, 대사나 음악 등 청각적인 측면은 창극의 매력을 부각했다.

김준수는 "경극의 창법이나 발성은 쓰지 않고, 소리꾼에게 편한 목소리로 노래한다"며 "대신 우희는 여성 캐릭터이기 때문에 제 목소리에서 부드러움을 찾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보통 소리꾼은 단전에서 뽑아 올리는 힘찬 소리를 내잖아요.

슬프면 '아이고∼'라고 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우희는 전쟁을 겪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상황이니, 그 절절한 마음을 누르면서 노래하려고 해요.

절제된 소리를 경극 특유의 동작들과 함께 보시면 새로운 맛이 있으실 거예요.

"
'패왕별희' 소리꾼 김준수 "연습 때도 치마 입고 사뿐사뿐 걷죠"
김준수는 창극뿐 아니라 TV 예능, 뮤지컬 등에서도 활약하며 '국악계 아이돌'로 불리지만, 자신의 뿌리는 '소리'에 있다고 강조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김준수는 방학 때면 스승 박금희 명창을 따라 '산공부'를 다녔다고 했다.

박 명창의 또 다른 문하생 송가인도 함께 산공부를 다니던 멤버였다.

고등학생 때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돈을 벌겠다는 마음으로 소리를 안 하겠다며 방황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결국 내가 가야 할 길은 소리'라는 생각에 몇개월 만에 돌아왔다고 했다.

이후 2013년 국립창극단에 최연소 단원으로 입단했고, 2018년에는 3시간이 넘는 '수궁가' 완창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후에도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틈틈이 소리 공부를 해왔다.

"몇 달 전에 10년 만에 춘향가 공부를 끝냈어요.

국립국악원 유미리 선생님께 배운 6시간 분량이에요.

공부를 게을리해서 이제야 끝냈다고 혼날 줄 알았는데, 선생님께서 '끝까지 소리를 놓지 않아서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소리는 제 근본이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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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별희' 소리꾼 김준수 "연습 때도 치마 입고 사뿐사뿐 걷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