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겸 울산시장과 지방시대 위원, 참석 인사들은 지난 9월 울산 롯데호텔에서 ‘새로 만드는 위대한 울산, 울산을 다시 울산답게’라는 지방시대 울산비전을 선포했다. /사진=울산시 제공
김두겸 울산시장과 지방시대 위원, 참석 인사들은 지난 9월 울산 롯데호텔에서 ‘새로 만드는 위대한 울산, 울산을 다시 울산답게’라는 지방시대 울산비전을 선포했다. /사진=울산시 제공
대한민국 산업도시 울산과 포항에 기업 투자가 물밀듯이 밀려들고 있다. 조선 철강 등 ‘중후장대업종’의 극심한 불황 여파로 한국판 ‘러스트벨트’로 내몰린 이들 지역에 기업들이 앞다퉈 투자하고 있다. 일자리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떠났던 근로자들도 다시 돌아오면서 해마다 큰 폭을 보이던 인구 감소 추세도 크게 둔화됐다.

○지방영업사원 1호 울산시장의 ‘기업가적 DNA’

기업을 다시 몰려들게 한 핵심 원동력은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저렴한 공장 부지도, 파격적인 보조금 지원도 아니었다.

지방 공무원들이 갑질하지 않고 하루라도 빨리 인허가를 내줘 기업 생산활동에 손실과 차질이 없도록 끝까지 약속을 지키겠다는 지방자치단체장의 기업가적 성공 DNA가 투자 기업을 감동시킨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울산시는 지난해 7월 김두겸 시장 취임 이후 ‘현대차 지원 전담팀’ ‘석유화학기업 지원팀’ ‘국내투자유치팀’ 등 5개 민간 일자리 창출 지원 전담조직을 만들어 기업 지원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현대자동차 전기차 신공장 건축 허가는 울산시의 적극적인 행정 지원으로 통상 기간보다 2년여 빠른 10개월 만에 신속 처리되는 성과로 이어졌다.

에쓰오일이 9조원을 투자해 울산에 건설하는 석유화학 복합시설 ‘샤힌 프로젝트’에는 소방 인허가 전담팀을 구성하는 파격적인 지원체제를 마련했다. 공사현장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남울주소방서에 사무실을 두고 남울주소방서 예방안전과장을 팀장으로 소방청, 울산소방본부, 울주군 등 9명으로 전담팀을 구성했다. 석유화학 시설은 소방 분야 인허가의 경우 관련 법령 및 규정이 복잡하고 거쳐야 하는 기관도 많아 승인까지 기간이 오래 걸린다. 업계 관계자는 “파격적 기업 지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시간과 돈을 많이 아끼고 있다”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울산시는 김 시장이 취임한 이후 1년4개월여 동안 무려 15조5000여억원 규모의 국내외 기업 투자를 유치하고, 6200여 개에 이르는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역대 최대 성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이는 전임 지방정부에서 2018년 7월부터 2022년 6월까지 4년간 이룬 실적 15조3000여억원을 능가하는 규모다.

울산시의 이 같은 친기업 정책은 울산 고용시장에도 뚜렷한 개선효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고용률(15~64세)이 64.7%로 전년 대비 1.8% 상승해 증감률에서 특별·광역시 중 2위, 청년고용률은 40.5%로 전년 대비 4% 상승해 증감률에서 특별·광역시 중 1위에 올랐다. ‘2023년 전국 지자체 일자리대상’에서 지역일자리 목표 공시제 부문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개발제한구역 완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국회 통과 등 ‘지방시대 아젠다’를 국정과제와 정부 정책에 적극 반영한 것도 김 시장이 기업하기 좋은 여건 달성을 위한 대표적 성과로 꼽힌다.

김 시장은 “투자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행정 지원을 정책적으로 확대해 ‘기업하기 좋은 도시, 투자하기 좋은 도시’ 울산의 이미지를 확고히 다져 나가겠다”고 말했다.

○철강도시 포항, 배터리 소재 승부수 통했다

포항시는 2015년 철강경기가 호황일 때만 해도 울산 못지않은 부자도시로 다른 도시의 부러움을 샀다. 이후 불어닥친 세계 철강경기 침체에 2017년 규모 5.8의 지진이 겹치면서 포항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난해 6월 말에는 인구 50만 명 선이 무너졌다.

이런 위기 속에 포항은 최근 ‘대한민국 배터리 특화단지’ 지정으로 새로운 대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철강산업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으로 2017년부터 배터리(2차전지) 소재산업 육성에 나선 지 6년여 만에 리튬과 니켈 등 핵심 소재 생산부터 전구체와 양극재, 음극재, 재활용(리사이클링)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최고의 배터리 소재 전주기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정명숙 포항시 배터리 첨단산업과장은 “양극재와 음극재, 전구체 등 배터리 핵심 소재를 원료부터 소재 생산까지 완벽하게 밸류체인을 완성한 도시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고 강조했다.

포항시에 따르면 올 들어 영일만과 블루밸리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2차전지 관련 소재 생산 공장 부지를 찾기 위해 포항시와 투자협약을 맺은 기업은 10곳, 193만500㎡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까지 에코프로 등 2차전지 소재 관련 기업이 포항에 투자한 산단 전체 면적 79만5300㎡보다 2.4배 큰 규모다. 신규 투자금액도 2027년까지 14조원에 이른다.

에코프로는 포항시와 블루밸리산단 내 공장 추가 증설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2028년까지 2조원을 들여 69만4000㎡에 제2포항캠퍼스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에코프로는 2017년 2조원가량을 투자해 영일만산단 33만㎡에 ‘에코프로 포항캠퍼스’를 조성했다. 에코프로는 이를 기반으로 원재료, 전구체, 양극재, 폐배터리 재활용으로 이어지는 양극재 밸류체인 수직 계열화를 이뤄 배터리 양극재 소재 분야 국내 1위, 세계시장 점유율 2위 업체로 성장했다.

포항시는 2차전지 선도기업들의 이 같은 투자 열기로 2030년에는 포항에서 양극재를 연간 100만t까지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전기자동차 1100만 대분 배터리 공급에 필요한 양이다.

포항시는 2차전지 배터리 특화단지 지정을 기반으로 △기회발전특구 △교육자유특구 △도심융합특구 △문화특구 등 ‘4대 특구’ 지정에 새로운 도전장을 냈다. 기회발전특구는 소득·법인·부동산 관련 지방세 감면, 3종 특례(규제 신속 확인·실증 특례·임시 허가), 공장 설립 인허가 원스톱 처리, 학교 설립 및 주택특별공급 등 세제·재정 지원, 규제 특례, 정주 여건 개선을 패키지로 지원하는 제도다.

포항시는 ‘K배터리 기회특구’ 조성을 선언하며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시는 에코프로와 포스코퓨처엠 등 2차전지 소재 기업과 중소기업이 참여하는 ‘2차전지 기업 협의회’를 구성해 2차전지 핵심 기술 확보부터 제품 생산까지 기업 간 상생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강덕 시장은 “포항시를 단순 일자리만 있는 도시가 아닌 혁신적 교육, 즐길거리, 삶의 질이 풍족한 기회특구 도시로 새로운 지방시대를 열어가겠다”고 말했다.

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