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객실 내 광고 영상표시기의 설치 위치를 일방적으로 변경한 서울교통공사에 대해 광고회사가 제기한 100억원대 소송에서 대법원이 광고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영상표시기의 위치는 광고 매출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조건인 만큼 계약 당시 정해진 설치 위치를 함부로 바꿔선 안 된다는 취지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는 광고회사 A사가 공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사는 2009년 공사와 서울 지하철 2호선 전동차 객실과 역사 내 영상표시기를 이용한 광고 계약을 체결했다. A사가 영상표시기를 설치·관리하고 공사에 광고료 250억원을 납부하는 대신 16년간 영상표시기를 이용한 광고 사업권을 가져가는 조건이었다.

2호선 전동차 834량 중 356량(신형 전동차)에는 이미 영상표시기가 천장 중앙에 설치돼 있었다. 나머지 478량(구형 전동차)에는 A사가 영상표시기를 설치하기로 했다. 하지만 2014년 7월 도시철도법 시행령 개정으로 전동차 내 CCTV 설치가 의무화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광고 계약에 따르면 영상표시기를 전동차 천장 중앙에 설치해야 했으나, 공사가 시행령을 준수하기 위해 영상표시기 설치 위치를 측면으로 변경해 달라고 A사에 요구했기 때문이다. A사는 “측면 설치가 불가능하다”며 공사를 상대로 2019년 3월 102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 2심은 모두 공사의 손을 들어줬다. 하급심 재판부는 계약서상에 ‘시설물 종류·규모는 계약 체결 이후 전동차 증설·확장 등 여건 변동이 있을 경우 조정한다’고 명시된 점 등을 근거로 공사에 영상표시기를 중앙에 설치하도록 협조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영상표시기를 중앙에 설치할 경우 CCTV 화각에 제약이 발생할 수 있다”는 공사 측 주장도 정당하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영상표시기 위치는) 전동차 사업의 매출 이익과 직결되는 광고 사업의 운영 조건으로 이 사건 계약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라며 “공사는 쌍방이 계약 당시 합의한 광고 사업의 운영 조건을 계약 기간 유지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지적했다. 또 “영상표시기를 중앙에 설치할 때 CCTV 설치가 불가능하다거나 사각지대가 발생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