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제지 불공정 거래 의혹과 관련해 시세 조종을 주도한 것으로 의심되는 신모씨와 김모씨가 20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사진=뉴스1
영풍제지 불공정 거래 의혹과 관련해 시세 조종을 주도한 것으로 의심되는 신모씨와 김모씨가 20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사진=뉴스1
올해 들어 주가조작 사태가 잇따르자 공매도를 재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주가조작의 대상이 된 종목 대부분은 공매도가 금지된 종목이었다. 공매도가 폭넓게 허용됐다면 가격 발견기능이 작용해 시세 조종을 막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다만 일각에선 공매도를 전면 재개하기 전 제도 개선과 신뢰 회복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4월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 6월 '5개 종목 하한가 사태'에 연루된 종목은 13개였다. 최근 최근 키움증권에서만 5000억원에 가까운 미수금을 발생시킨 '영풍제지 하한가 사태'도 주가조작 사례로 의심받고 있다.

일각에선 주가 조작의 예방책으로 공매도 전면 재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공매도를 할 수 있었다면 주가조작 세력이 주가를 끌어올리는 데 브레이크가 걸렸을 것이라고 봐서다. 실제 올해 주가조작 의혹에 연루된 14개 종목 대부분은 공매도가 불가능했다. 금융위원회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증시가 급락한 2020년 3월 한시적으로 공매도 전면 금지 조처를 내렸다. 2021년 5월부터는 코스피200과 코스닥150 종목만 공매도를 허용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매도는 주가에 거품이 끼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며 "공매도가 있었다면 SG증권발 사태와 같은 주가 조작 사태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매도가 주가를 짓누르고 있다는 일각의 지적엔 "공매도는 과도하게 높아지는 주가를 억누르는 것"이라며 일축했다.

왕수봉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도 "공매도가 허용됐다면 주가가 터무니 없이 상승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SG증권발 사태 당시 공매도가 허용된 종목은 주가 하락폭이 덜했다"고 말했다.

김준석·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8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개인 투자자들이 공매도에 갖고 있는 부정적인 인식과 달리 공매도는 가격발견에 기여하고,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며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났음에도 일부 종목만 공매도가 가능하고, 규제 불확실성이 커진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공매도를 전면 재개하려면 먼저 '기울어진 운동장'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공매도는 사실상 외국인, 기관 투자자만 이용하는데, 개인 투자자도 이용할 수 있게 공평한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공매도가 적정 주가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도 "기관·외국인은 공매도 상환기간에 제한이 없어 무기한 공매도가 가능한데, 개인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관련 제도를 개편하고, 공매도를 전산화해 개인과 기관·외국인 투자자가 공정한 환경에서 투자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선 보고서에서 김준석·황세운 연구위원은 "개인 투자자들의 공매도 접근성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금융회사의 공매도 및 대차거래에 관한 내부통제시스템을 개선하고, 전산화 수준을 높여 무차입공매도 발생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공매도 제도 개선 촉구하는 개인 투자자들./사진=연합뉴스
공매도 제도 개선 촉구하는 개인 투자자들./사진=연합뉴스
관련 제도를 개선하란 개인 투자자들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지난 4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증권시장의 안정성 및 공정성 유지를 위한 공매도 제도 개선'에 관한 국민동의 청원이 5만명을 달성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공개일로부터 30일 안에 5만명 이상 동의를 얻으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되며, 심사에서 채택되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5만명이 모였다는 것은 그만큼 현행 공매도 제도에 불만을 가진 투자자가 많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개인이 기관·외국인 투자자와 동등한 조건에서 투자할 수 있도록 공매도 제도가 필히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도 현행 공매도 제도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지난 17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본시장은 시장 참여자 모두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데 (현행 공매도 제도는) 너무 크게 신뢰가 손상된 지점"이라며 "좀 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게 개인적인 소견"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공매도 전면 재개는 종합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기본적으로 경제금융 상황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변동성을 크게 확대할 수 있는 이슈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