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힘 다했는데 대중은 무관심"…'열정 만랩' 무명 작곡가의 하루
한때 국힙 최고 꿈꾸던 래퍼 죠수아
K팝 작곡가로 재도전 준비
고정수입 없지만 모델일로 부업

그래도 오늘 하루 괜찮았으면 OK


국내선 매년 수만곡가량이 발매된다. 재능이 있어도 극소수만이 주목받는 음원 시장이다.
홍수아(활동명 죠수아·28) 씨는 한때 국내 최고의 힙합 가수를 꿈꿨다. 다니던 예술대학에 2년 동안 휴학계를 내고 곡 작업에 몰두했다. 온갖 힙합 비트가 일상의 BGM(배경음악)처럼 흘러나오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해서 2017년무렵 세상에 내놓은 7곡짜리 믹스테이프.


사랑타령을 하는 흔한 힙합곡과는 달리 꿈을 주제로 한 가사가 많았다. 작업에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다. 대중의 반응은 높았던 기대치에 한참 못 미쳤다. 힘이 빠졌다. 일종의 번아웃도 왔다. 그 무렵부터 힙합이 질리기 시작했다.

홍 씨는 힙합을 아예 놓은 건 아니지만 "작곡에 더 많은 흥미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제는 세계적인 K-팝 작곡가를 꿈꾸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듣는 모두가 “차근차근 행복을 향해 나아갔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디지털 싱글 ‘Ocean’(2022) 앨범 사진 / 사진=본인 제공
디지털 싱글 ‘Ocean’(2022) 앨범 사진 / 사진=본인 제공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28살 홍수아입니다. 현재 K-팝 작곡가이자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활동명은 ‘죠수아(JhosooA)’이고요 '여호수아'의 영문 이름인 '조슈아'로 짓고 싶었는데, 동명이인(세븐틴 조슈아)이 있어서 '죠수아'로 짓게 되었습니다. 의미는 둘 다 같습니다.”

▶음악 활동에 관해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원래 주력하던 장르는 힙합이었습니다. 래퍼 빈지노의 음악 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현재는 R&B 장르 싱어송라이터이자 K-팝 음원을 만들고 있습니다.”

▶힙합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초등학교 6학년 때 3살 터울인 친오빠의 MP3에서 래퍼 MC스나이퍼의 '베터 댄 예스터데이(Better than Yesterday)'를 듣고 힙합에 매료됐어요. 웅장한데 말도 빠르니까 '세상에 이런 음악도 있구나' 감탄했던 기억이 나요.”

▶언제부터 음악을 정식으로 시작했나요?
“고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였습니다. 힙합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실용음악학원에서 석 달 동안 발성을 배웠습니다.”

▶음악을 좋아해도, 직업으로 삼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그런 용기는 어디서 나왔나요?
“같은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이 '내가 봤던 여자 중에 네가 랩을 제일 잘한다'고 자주 칭찬해줬었어요. 빈말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때는 “나 정말 재능이 있는 걸지도 몰라”라고 생각했어요. 음악 자체를 좋아했기도 하고요. 그래서 언더그라운드(주로 힙합 마니아층이 선호하는, 덜 대중적인 영역)에서 활동하는 래퍼를 꿈꾸며 입시를 준비하게 됐습니다.”

▶힙합을 하겠다고 하니까 가족들은 어떤 반응이었나요?
“부모님은 갑자기 웬 음악이냐며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랩이 너무 좋아서 집에서도 계속 부르고, 직접 적은 가사를 부모님께 보여드리기도 하면서 점차 부모님의 걱정을 격려와 칭찬으로 바꾸어가려고 노력했어요. 어느 날 부모님께서도 '이 정도의 열정이라면 네가 하고 싶은 건 해 봐야겠네'라며 제 편을 들어주셨어요. 급하게 입시 준비를 해서 예술대학교에 입학하게 됐죠.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부모님은 저의 음악 생활을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세요.”
믹스테이프 [BLESS](2017) 앨범 커버사진/ 사진=본인 제공
믹스테이프 [BLESS](2017) 앨범 커버사진/ 사진=본인 제공
▶2017년에 믹스테이프를 내셨어요. 작업 과정을 간략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Bless(축복)'란 제목의 7곡짜리 믹스테이프(정식 발매가 아닌 음원 플랫폼에 올리는 작업곡)를 냈습니다. 대학 다니던 도중에 휴학하고 2년간 몰두해서 만들었습니다. 보통 플로우를 짜놓고 가사를 입히는 방식으로 작업합니다.”

▶플로우를 짠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예를 들어 윤미래 노래 중에 ‘검은 행복’의 경우 도입부 '유난히 어렸던 유난히 검었었던 어릴 적 내 살색'이란 가사를 랩으로 내뱉을 때 높낮이가 있잖아요. 그 흐름을 플로우라고 해요.
음악 비트가 나올 때 머리에서 바로바로 나오는 플로우를 대충 흥얼거려보는 거예요. 까먹을 수 있으니까 녹음기를 켜고 다시 들어보면서 위에 가사를 붙이는 식으로 곡을 만들었습니다.”

▶믹스테이프가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 힙합 앨범이에요. 그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세상에 작품을 내놓고 보니 대중의 반응은 제 기대와 달랐어요. 오히려 지금 생각하면 높았던 기대치 때문에 제가 더 위축됐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만큼 힙합에 진심이었으니 실망도 컸던 거겠죠.

일종의 번아웃도 왔던 것 같아요. 작업기간 동안은 사람들을 거의 안 만나면서 믹스테이프를 제작했거든요. 재밌어서 시작한 힙합인데 일로 여기기 시작하니까 어느 순간 열정이 식었던 것 같아요. 평소에 좋은 비트를 디깅(인터넷 상에서 발굴)하기 위해 소위 말하는 국힙·외힙(국내힙합과 외국힙합의 줄임말)을 항상 챙겨 듣곤 했는데, 어느 샌가부터 제가 힙합을 안 듣고 자꾸 딴짓만 하는 거예요. "모든 걸 다 쏟아부었기 때문에 힙합이 질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보컬로 전향했고, 디지털 싱글 앨범 'Ocean'과 'Y'를 발매했습니다.”

▶K-팝 작곡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졸업 직전에 보통 취업 준비의 갈림길에 서 있잖아요. 학교 교수님께서 작곡 오디션이 있다고 한번 참가해보라고 제안해주셨어요. 멜로디 만드는 건 자신 있었으니까 도전했습니다. 바로 합격해서 음악 퍼블리셔(음악 출판사)에 들어갔습니다. 회사 소속 작가로 정식 계약을 맺고 활동했습니다.”

▶음악 한 곡의 탄생 과정이 궁금합니다.
“음악 종사자들 사이에선 비트 제작을 편곡이라고 표현합니다. 트랙이 완성되면 위에 멜로디와 리듬 등 ‘탑 라인(멜로디 라인)’을 추가합니다. 빅뱅의 '거짓말'의 경우에는 '암 쏘 쏘리 벗 알러뷰' 이 음률을 만드는 게 작곡이거든요.
저는 이런 탑 라인을 만드는 작곡가입니다. 힙합 노래 만들 때랑 비슷하게 멜로디를 임의로 불러놓고 가사를 입히는 식으로 작곡하고 있습니다.”

▶기획사들이 퍼블리셔에 곡 의뢰를 하는 구조인가요, 그 반대인가요?
“주로 곡 의뢰를 받은 다음 작업을 합니다. 걸그룹 아이브가 내년 상반기 컴백을 목표로 준비 중이라면, 소속사는 여러 음악 퍼블리셔에 곡을 의뢰해요. 소속사에서 전달해 온 참고할 만한 곡과 구체적인 컨셉 정보를 토대로 새로운 음악을 만듭니다.”
힙합 가수로 활동하던 홍수아 씨(활동명 죠수아)는 K팝 작곡가로 재도전해 여러 곡의 멜로디 라인을 제작하고 있다. / 사진=본인 제공
힙합 가수로 활동하던 홍수아 씨(활동명 죠수아)는 K팝 작곡가로 재도전해 여러 곡의 멜로디 라인을 제작하고 있다. / 사진=본인 제공
▶고정적인 수입이 있나요?
“작곡가는 아티스트나 소속사에 곡을 팔아야 돈을 벌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 중국이나 일본, 태국 등에는 곡을 팔았는데 국내 아티스트에게는 못 팔았어요. 이제 K-팝을 팔고 싶어서 기존 회사를 나와 새로운 회사들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다 보니 당연히 부담됩니다. 특히 부모님께 어엿한 딸의 모습을 보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다는 걸 자각할 때 무력감을 느끼곤 합니다.”

▶생계를 위해 다른 부업을 하시나요?
“다행히 전에 아르바이트하면서 모아둔 돈이 있습니다. 또 제가 키가 조금 크답니다. 모델 일을 부업으로 하고 있어요.”

▶음악가로서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날마다 지키는 루틴이 있나요?
“한 주에 공통으로 하는 게 있다면 독서와 기도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그리고 잠들기 전에 항상 시집, 소설, 에세이 등 각종 책을 읽습니다.
요즘에는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으로 유명한 류시화 시인의 글에 되게 꽂혀서 시집을 읽는 시간이 하루의 낙입니다.”

▶창작과정이 즐겁기도 하면서 고통스러울 때도 있을 텐데, 악상이 안 떠오를 때는 어떻게 하세요?
“비슷한 멜로디를 자주 떠올릴 때 괴로워요. 진부한 멜로디가 나올 때가 있는데, 그럴 땐 다른 아티스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환기해요. 빌보드 차트, 멜론 차트를 쭉 들어본다던가 아니면 소음이 아예 없는 곳에서 산책하기도 합니다.”
디지털 싱글 ‘글리터’(2018) 앨범 커버사진 / 사진=본인 제공
디지털 싱글 ‘글리터’(2018) 앨범 커버사진 / 사진=본인 제공
▶여러 장르를 넘나들면서 활동했는데, 모든 곡을 관통하는 주제가 있나요?
“꿈, 미래에 대한 가사를 많이 썼어요. 대다수의 대중음악은 '사랑'을 주로 다루지만 저는 꿈에 대해서 맘껏 얘기해보고 싶었어요. 디지털 음반으로 냈던 '글리터'라는 곡이 젊음과 꿈이라는 주제를 가장 잘 다뤘다고 생각합니다.”

초침은 후회를 몰라서 달라 제자리걸음 하는 나와는
밤에 꿈을 적는 시간이 더 늘면 그것들이 모여
나도 누군가의 꿈이 될까 난 꿈꾸는 듯한 꿈을 그려서
그 꿈 안에 살고 싶어 그래 잠들지 않는 꿈


죠수아(JhosooA)- 글리터(2018)中

▶음악을 처음 시작했을 때 꿨던 꿈과 현재의 꿈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학창시절 국내 여자 래퍼하면 윤미래 님 말고는 거의 없었어요. 여자 래퍼들 중에서 1위가 아니라 래퍼들 중에서 1위가 돼야겠다는 생각도 했었을 정도로 래퍼 하나가 딱 되고 보고 싶었었는데 지금은 그런 욕심을 많이 내려놨어요. 가수로서 음악 공연을 하기 보다는 남한테 음악을 주면서 큰 그림을 짜는 게 요새는 더 재밌어요.”

▶앞으로 음악을 통해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차근차근 행복을 향해 나아가자”라고 말하고 싶어요.
행복해지기 어려운 세상인 것 같아요. 친구들과 웃고 떠들다가도 혼자 있을 땐 문득 이렇게 반복적인 일상을 잘 살고 있는 건지에 대해 의문이 들 때가 있어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큰 시기인만큼 저를 포함한 요즘 청년들은 쉽게 무기력해지는 것 같아요.
오늘 하루 너무 우울한 일이 없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음악을 통해서도 그런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작곡가로서 세운 목표는 무엇인가요?
“언젠가 친구·가족·지인들이 “이 노래 되게 좋다”면서 크레딧(제작자 명단)을 찾아봤는데 제 이름이 떠 있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