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와 나'로 감독 변신…수학여행 하루 앞둔 두 여고생 사랑 그려
"내가 본 박혜수는 사랑 많은 사람…서로 믿었고 후회 안 해"
조현철 "왜 세월호 끄집어내냐고?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왜 굳이 지금 세월호를 끄집어내냐는 사람도 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저로서는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입니다.

"
오는 25일 개봉하는 '너와 나'를 연출한 배우 겸 감독 조현철은 작품 소재에 관해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조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인 이 영화는 수학여행을 앞둔 여고생 세미(박혜수 분)와 하은(김시은)의 사랑 이야기다.

영화에 직접 언급되지는 않지만, 안산 단원고 학생 248명을 포함해 총 300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발생 하루 전을 배경으로 한다.

12일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조 감독은 "제가 찾아 나섰다기보다는 세월호 참사라는 이야기가 저를 잡아끌었다"며 이를 영화에 담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어떤 사건을 겪으면서 이 이야기에 이끌렸어요.

이전에는 이런 죽음을 제 이야기라고 느끼지 않았는데, 그 경험을 계기로 뭔가 좀 달라졌던 것 같아요.

나의 죽음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서 일어난 죽음과 그에 맺힌 고통, 사랑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지요.

"
조 감독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년 뒤인 2016년부터 시나리오를 쓰며 영화를 준비했다.

완성하기까지 지난 7년 동안 사람들이 이 사건을 점차 잊어가는 모습도 지켜봤다.

"생생했던 것들이 납작해지는 느낌이랄까요.

인물들과 이름들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아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뭔가의 부름을 받고 끌려가는 것처럼 작업했어요.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일어날 수 있었죠. '너와 나'는 완성될 수밖에 없던 영화라고 생각해요.

"
조현철 "왜 세월호 끄집어내냐고?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영화는 참사 자체보다는 희생자들이 살아 숨 쉬는 이야기를 한바탕 꿈처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조 감독은 "사회적 재난을 스펙터클하게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며 "은유적이고 시적인 방식을 계속 찾으면서 (사건을) 전면으로 드러내지 않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2017년 광화문에서 유가족들 집회가 있었어요.

생존자 학생이 나와서 자기 친구가 꿈에라도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죠. 그때 인상이 제 머릿속에 깊게 박혀서 이 영화가 꿈처럼 느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아이들이 살아 돌아온 듯한 그런 느낌이요.

"
특히 세미와 하은의 사랑은 꿈과 환상,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게 표현됐다.

그 덕에 관객들은 이들이 예정된 비극을 향해가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이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어딘가에서 두 사람이 지금도 사랑하고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만드는 것이다.

"제가 죽음에 대한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을 때 저를 꺼내준 것들은 일상에서 모르고 지나쳤던 사소한 사랑의 감정이더라고요.

요즘 한국 콘텐츠가 부흥하고 있지만 들여다보면 모두가 화내고 싸우고 있잖아요.

'너와 나'는 모든 걸 다 떠나서 사랑의 가치를 되새김질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어요.

"
조 감독은 여고생 간 사랑을 다룬 이유에 대해 "남녀가 나오는 멜로영화를 볼 때 '왜 남자와 여자가 주인공이지?'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듯이 저에게는 자연스러운 보통의 사랑이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30대 남성 창작자가 이들의 세계를 감히 표현해도 될지 두려움이 있긴 했다"며 "그래서 더 열심히 취재하고 관찰했다"고 설명했다.

세미와 하은을 각각 연기한 박혜수와 김시은의 공도 컸다고 조 감독은 강조했다.

두 배우는 예민하면서도 서툴고, 풋풋하지만 절절한 사랑을 하는 여고생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했다.

조 감독은 촬영 때 둘의 연기를 보며 "한치의 걱정도 없었다.

모든 순간이 놀라웠다"고 떠올렸다.

조현철 "왜 세월호 끄집어내냐고?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그러나 일각에서는 학교폭력 의혹에 휩싸였던 박혜수가 세미 역을 맡은 데에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학폭 의혹이 불거지기 약 1년 전인 2020년 5월 캐스팅돼 영화를 준비 중이었다.

조 감독은 "제가 곁에서 본 혜수 씨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며 그를 계속 안고 간 이유를 설명했다.

"(보도를 보고) 많이 흔들린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후 혜수 씨를 만나 얘기하면서 진정성을 느꼈습니다.

제가 봐온 박혜수라는 사람은 단순히 청순하고 귀여운 여배우가 아니고 용기와 강단이 있고 사랑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서로를 믿었고, 전혀 (결정을) 후회하지 않아요.

"
하은 역의 김시은은 약 2천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오디션을 통해 배역을 따냈다.

그는 지난해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로 각종 영화제에서 신인여우상을 휩쓴 촉망받는 신예다.

조 감독 역시 그를 두고 "놀랍도록 동물적이고 천재적"이라면서 "영화계에서 10년에 한 번 나오는 보물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조현철 "왜 세월호 끄집어내냐고?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