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속의 미생물을 3D로 표현했다. 123RF 제공
장속의 미생물을 3D로 표현했다. 123RF 제공
호주 마이크로바이옴(장내미생물)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인 아큐라바이오가 파산을 선언하면서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시장에도 비상이 걸렸다.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CDMO는 전 세계에서도 한 손에 꼽힐 정도로 숫자가 적었던데다 기술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던 아큐라바이오가 파산하면서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기업들의 선택지는 더 좁아졌다.

호주 증권투자위원회(ASIC)가 발표한 공고에 따르면 아큐라바이오는 지난 8월 파산을 신청했다. 글로벌 사모펀드 앰퍼샌드 캐피탈 파트너스가 인수해 사명을 '루이나 바이오'에서 변경하며 재도약을 모색한지 꼭 1년 만이다. 고바이오랩, 리비옴, CJ바이오사이언스 등이 아큐라바이오와 임상용 의약품 계약을 맺은 바 있다.

고바이오랩이 지난 7월 궤양성대장염 치료제로 개발 중이던 'KBLP001'에 대한 임상 중단을 발표한 데는 아큐라바이오의 파산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고바이오랩은 건선 치료제로 개발 중이던 KBLP001을 궤양성대장염으로 적응증 확대할 계획이었으나 이를 접게 됐다.

고바이오랩 관계자는 "궤양성대장염 환자 모집이 어려웠던 것이 주요했고 환자에 투여할 의약품 생산을 위탁했던 CDMO가 파산하는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해당 파이프라인 연구를 중단하게 됐다"고 말했다.

메디톡스에서 분사한 리비옴도 아큐라바이오 파산으로 CDMO를 바이오스로 옮겼다. 리비옴 관계자는 "원료의약품은 아큐라바이오, 완제의약품은 영국 키이파마에 위탁했었다"며 "바이오스와 원료의약품에 대한 계약을 새로 체결해 개발을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아큐라바이오의 스케일업 이슈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고 지적했다. 아큐라바이오는 GMP(우수제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 인증된 마이크로바이옴 CDMO 중 초기 기술력을 갖췄다고 평가받았지만 생산 규모가 임상 1상 정도로 제한돼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임상을 지속하려면 스케일업이 필요했고 실제 설비 확충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들었는데 투자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서 고객사들이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건기식에만 초점' 치료제용 CDMO 없어 조기 라이센싱도 염두

마이크로바이옴 CDMO 선택지가 줄어들면 연구개발(R&D) 계획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마이크로바이옴 CDMO가 많지 않은 데다 소규모 시설들은 검증이 안 돼 있어 공정 개발 정도로만 위탁 가능한 상황"이라며 "GMP 인증을 받고 커머셜 단계까지 생산할 수 있는 곳이 없어 조기 라이센싱을 염두에 두기도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를 생산할 기술력을 갖춘 기업은 많지 않다. 지난해 2월 마이크로바이옴 CDMO 기업 아란타바이오를 인수한 스웨덴 레시팜, 스위스 박테라, 프랑스 바이오스, 미국 리스트랩, 호주 아큐라바이오 등이 전부다.

국내의 경우 마이크로바이옴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은 여럿 있지만 대부분 치료제가 아닌 건기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부분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개발 기업은 국내 적당한 CDMO가 없어 몇 안되는 해외기업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의약품을 생산하던 CDMO는 건기식으로 확장할 수 있지만 건기식에서 의약품으로 확장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특히 마이크로바이옴 같은 '살아있는' 치료제는 자체 기술력과 노하우를 가진 CDMO가 절실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A+B=C'가 성립하는 합성신약과 다르게 마이크로바이옴과 세포치료제는 배양 공정을 개발하는게 중요하다"며 "대량생산에 랩스케일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지 여부가 상업화 성공 여부를 가를 정도"라고 말했다.

올해 4월 한국바이오협회에서 발간한 '마이크로바이옴 CDMO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시장은 2021년 4180만달러(약 564억5000만원)에서 2028년 6억3590만달러(약 8587억8000만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2030년까지 연간 47.54%씩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전 세계적으로 약 200개 기업이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고 이중 임상 2/3상 단계를 진행 중인 기업도 15개나 된다. 향후 몇 년간 마이크로바이옴 제품 상용화를 위한 제조 능력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현실은 몇 안되는 기업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시장은 글로벌 수준에 견줘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며 "선택권을 넓히는 차원에서도 국내 CDMO 등 안정적인 생산 시설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해결책 모색 나선 기업들…자체구축 vs. 인수

국내 기업들은 직접 GMP 시설을 구축하거나 해외 CDMO를 인수하는 식으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종근당바이오는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의약품 GMP 시설을 구축했다. 지난해 11월 첫 마이크로바이옴 코스닥 상장 기업인 비피도와 마이크로바이옴 CDMO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2024년에는 마이크로바이옴 CDMO로 해외 진출해 연매출 700억원 이상을 내겠다는 계획이다.

지놈앤컴퍼니는 2021년 미국의 마이크로바이옴 CDMO 기업인 리스트랩의 지분 60%를 인수했다. 당시 배지수 지놈앤컴퍼니 대표는 "마이크로바이옴 시장은 향후 폭발적인 성장이 예측된다"며 "빠르게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마이크로바이옴 신약 개발 성공을 좌우하기에 CDMO 확보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놈앤컴퍼니 관계자는 "리스트랩은 현재 임상 1상이 가능한 수준의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생산력을 갖추고 있다"며 "자회사인 리스트 바이오테라퓨틱스를 설립해 향후 임상을 지속하기 위한 케파 증설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

**이 기사는 2023년 10월 10일 9시 44분 <한경 바이오인사이트> 온라인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