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언제나 높은 곳을 좋아하거나 동경한다. 가장 높은 곳에 오르려 하고,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하려 하며, 가장 높은 자리에 앉고 싶어한다. 가장 높은 지위를 동경하고, 가장 높은 건물을 자랑하며,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길 원한다.

높이 올라간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내려다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뭔가를 내려다본다는 것은 자신이 더 높은 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에게 ‘높이’란 어쩌면 권력을 의미하는 지도 모른다.

높이에 대한 동경은 음악세계에서도 다르지 않다. 특히 성악가들에게 가장 높은 음을 낸다는 것은 때로는 그들에게 최고의 자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물론 높은 음을 낼 수 있다는 능력만으로 모든 것이 최고로 평가되는 일은 없지만, 고음을 매끄럽게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는 것은 성악가들에게는 언제나 도달하고픈 강렬한 열망이다. 특히 남성과 여성의 성부 중에서 가장 높은 소리를 내는 테너와 소프라노에게 ‘고음’이란 언제나 특별한 의미가 있다.
41세에 떠난 세상서 가장 높은 음 내는 소프라노, 마도 로뱅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테너였던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별명은 “하이C의 제왕”이었다. 특별한 재능을 타고나지 않고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소리, 즉 ‘하이C’를 멋지게 낼 수 있는 가수였기 때문이다. 하이C는 일반인들이라면 평생 한번도 내기 힘든 높은 도(3옥타브 도)를 말한다.

파바로티에게 이 별명이 붙은 것은, 1972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하이C음이 연달아 9번이나 등장하는, 도니제티의 <연대의 딸>중 ‘아, 친구들이여 오늘은 기쁜 날 (Ah! Mes Amis, quel jour de fete!)’이라는 아리아를 너무도 멋지게 부른 후의 일이었다. 20세기 최고의 테너 중 한 명으로 불렸던 파바로티는 이렇게 높은 고음으로 그의 출발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테너보다 더 높은 소리를 내는 소프라노에게도 역시 고음의 도전과제는 있다. 그 곡은 바로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 <마술피리> 중에 등장하는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에 불타오르고’라는 아리아다. 극 중 등장인물인 ‘밤의 여왕’이 부르는 대표적인 아리아여서, 제목 대신 ‘밤의 여왕의 아리아’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역시 아찔한 고음에다 엄청난 기교가 필요한 노래여서, 이 곡을 제대로 부르기만 해도 단박에 최고 성악가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특별한 아리아다.

너무도 맑고 투명한 음성 때문에 복수심에 앞서 아름다움이 먼저 느껴지는 단점을 지닌 루치아 포프 (Lucia Popp), 보이저 2호의 황금 레코드 속에 담겨 지구의 노래를 외계에 소개하는 영광을 차지한 에다 모저(Edda Moser), 당대 최고의 콜로라투라로 추앙받았던 에디타 그루베로바 (Edita Gruberova), 게오르그 솔티도 극찬한 ‘신이 내린 목소리’ 조수미 (Sumi Jo), 그리고, 목소리뿐만 아니라 완벽한 ‘밤의 여왕’의 모습을 연기한 프랑스의 자랑 나탈리 드세이 (Natalie Dessay)와 독일의 디아나 담라우 (Diana Damrau), 이 모든 소프라노들이 바로 ‘밤의 여왕’으로 최고 소프라노의 반열에 오른 가수들이다. 이 아리아를 부를 수 있는 소프라노는 극히 제한되어 있어서, 소프라노 가수라 하더라도 모두가 이 아리아를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은 이 모든 고음 가수들을 제쳐 두고, 이들 이전에 가장 높은 목소리로 세상을 평정한 한 소프라노를 만나보려고 한다. 그녀의 이름은 마도 로뱅(Mado Robin)이다. 어쩌면 생소한 이름일지도 모른다. 웬만한 성악가들을 다 꿰고 있는 성악 애호가들에게도 그녀는 낯선 이름일 테니까.
©EMI Clas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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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 로뱅(1918~1960)은 우리보다 이전 시대를 살다 간 가수이다. 하지만 프랑스를 비롯해 세계 2차 대전 이후 세대들에게는 TV나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에 맞먹는 유명한 스타 소프라노였다. 그녀는 13살 때 성악에 입문한 뒤 파리국립음악원에서 본격적으로 성악을 공부했다. 열아홉살 무렵 파리 오페라극장이 주최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놀라운 신예로 떠올랐지만, 전쟁의 포화 속에서 오페라 무대에 쉽게 설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1942년 파리의 ‘살 가보 극장’에서 리사이틀로 데뷔했는데, 그녀의 진가를 알아본 음반사 ‘파테 마르코니’는 그녀의 첫 레코딩을 녹음했다. 27살 무렵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에서 주인공 ‘질다’로 파리 오페라에 데뷔한 그녀는, 이후 이미 언급한 <마술피리>는 물론이고, 들리브의 <라크메>,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등 고음이 등장하는 오페라에 도맡아 출연하였고, 1955년 모나코의 국왕과 그레이스 켈리의 결혼식에 초대될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다.
©Warner Clas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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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높은 소프라노 목소리 (The highest soprano voice in the world)”라는 표현은 마도 로뱅의 음반 라이너 노트에서 그녀를 설명하고 있는 첫 문장이다. 혹자는 그녀가 가장 높은 음을 내는 소프라노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고도 하는데, 굳이 그 내용을 확인할 필요도 없이, 그냥 한번 그녀의 고음을 들어만 봐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밖에 없게 된다. 또한 그녀의 음반 해설지에 따르면, 그녀의 목소리는 이전 그 누구도 다다르지 못했던 ‘Top-Top C (4옥타브 도)’에 이르렀다고도 한다.

지금 들어보면, 그녀의 목소리는 요즘 가수들과는 무척 다르게 들린다. 온몸을 악기처럼 공명 시켜서 크고 멀리까지 다다르게 만드는 클래식 발성법은, 간혹 부담스러운 소리를 내는 경우가 있는데, 마도 로뱅의 목소리는 그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어찌 들으면 왜소하고 가냘프게 들리지만, 그 소리는 곱고 자연스러우면서도 대단히 강렬하다. 요즘 일반적인 성악 발성법에 익숙한 청자라면 그녀의 목소리는 어쩌면 낯설게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름다운 노래는 창법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아름답다면 어떤 창법이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가장 높은 목소리가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가장 높은 목소리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주는 가수가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안타깝지만 누군가는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결코 마도 로뱅이 내는 초고음에는 절대 다다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노래를 듣는 지금, 그녀가 다른 길을 가지 않고 성악가의 길을 택한 것과, 마흔 한 살이라는 짧은 삶을 사는 동안에도 멋진 레코딩을 남겨놓았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말이 살찌고 하늘이 높아진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에, 새롭게 발견한 ‘마도 로뱅’의 노래를 들으면서, 더위에 지쳐 있던 우리의 마음도 하늘 저 멀리 높이 날려보자.


Benedict: La gitane et l'oiseau


Alberto Pestalozza: Ciribiribin


Fermo Dante Marchetti: Fascination


Delibes: <Lucia di Lammermoor> ‘Spargi D'Amaro Pian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