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트럼프' 극우 밀레이 선두…기존 시스템 뒤엎고 지지층 결집
기성정치권, 밀레이 견제에 집중…압도적 1위 없어 11월결선서 결판
[아르헨대선 D-20] '물가폭등·빈곤층 40%' 위기 속 극우 깃발 꽂나
오는 22일(현지시간) 치러지는 아르헨티나 대선을 20일 앞두고 '돌풍의 핵'으로 떠오른 비주류 극우 정치인과 기성 정당 후보들 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물가 폭등과 빈곤층 급증이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 전체 판세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는 가운데 특정 후보가 압도적 우위를 점하지는 못하는 초접전 양상이어서, 최종 승자는 11월 19일 결선 투표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아르헨대선 D-20] '물가폭등·빈곤층 40%' 위기 속 극우 깃발 꽂나
◇ '아르헨티나 트럼프' 견고한 지지세
경제학자 출신으로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라고 부르는 초선 의원 밀레이(52) 후보는 지난달 14일 예비선거(PASO·파소)에서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키며 아르헨티나 국내·외를 깜짝 놀라게 했다.

연 물가상승률이 124%에 이르고 빈곤층이 40%에 육박할 정도로 국가 경제가 파탄 난 상황에서, 여당뿐만 아니라 기존 유력 야당 심판론까지 끓어오른 덕분이다.

그간 변변한 정치적 기반조차 없었던 밀레이 후보는 지난 수십 년간 권력 다툼을 하며 아르헨티나 현대 정치사를 지배한 '페론주의'(후안 도밍고 페론 전 대통령을 계승한 정치 이념·현 여당 계열)와 '마크리스모'(마우리시오 마크리 전 대통령을 계승한 정치 운동·현 거대 보수 야당 계열)를 모두 배격하는 독자노선을 택하고 있다.

기성 정치권을 '카스트'(계급사회)와 비유하는 밀레이 후보는 "현재의 국란은 여당뿐만 아니라 기존 거대 야당의 책임이기도 하다"면서 정치권 전체에 책임을 돌리며 정치권을 불신하는 이들을 주요 지지층으로 '포섭'했다.

밀레이 후보는 전날 대선 후보 토론에서 "우리나라가 정치적 카스트 때문에 쇠퇴하고 있다"며 "이 길을 계속 간다면 50년 안에, 세계에서 가장 큰 빈민가를 갖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르헨대선 D-20] '물가폭등·빈곤층 40%' 위기 속 극우 깃발 꽂나
그는 또 극단적 정책과 예측 불가능성으로 기존 패러다임을 근본부터 뒤흔들고 있다.

달러 공식 통화 채택과 중앙은행 폐쇄가 그 대표적 공약이다.

중앙은행을 '정직한 아르헨티나인들로부터 물건을 훔치는 메커니즘'이라고 규정하기도 한 그는 달러화에 대해선 "인플레이션을 종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하며 공약 실천 의지를 여러 차례 다졌다.

밀레이 후보는 그러면서 "내가 대통령에 당선돼 국가 개혁·정부지출 대폭 삭감·경제 시스템 단순화 등 정책을 실현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 국민은 15년 안에 스페인 또는 이탈리아, 20년 안에 독일 같은 생활 수준을 영위할 것"이라며 "35년을 제게 허락한다면 미국과 같은 반열에 올릴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때론 비속어 같은 거친 표현까지 써가며 자신의 집권 플랜을 소개하는 그에 대해 지지자들은 크게 환호하고 있다.

라나시온과 인포바에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밀레이 후보는 예비선거 이후 후보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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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우 구분 없이 '일단 밀레이 견제'
여당 후보와 거대 야당 연합 후보들은 밀레이 후보 '열풍'이 한순간의 신기루가 아니라는 현실을 '뒤늦게' 자각하는 분위기다.

애초 실현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았던 밀레이 후보의 각종 정책에 대해 각계 논의가 이어지고, 그의 지지율에도 크게 흔들림 없이 공고한 기세를 보이면서, 정치권 전반에 지각 변동이 일어날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 커지는 모양새다.

예비선거에서 2·3위권으로 뒤진 집권당의 세르히오 마사(51) 후보와 제1야권인 중도우파의 파트리시아 불리치(67) 후보는 최근 약속이나 한듯 밀레이 후보의 '교육 바우처 시스템을 통한 공교육 대체' 방안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앞서 밀레이 후보는 '의무 공립학교 제도 대신 공부하고 싶은 학생은 바우처를 들고 학교에 가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의 교육 공약을 내건 바 있다.

"지금도 학생들 학력 수준이 낮기 때문에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밀레이 후보와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서 있는 마사 후보는 전날 토론에서 "교육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권리"라며 "밀레이는 국가의 근간을 흔들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불리치 후보 역시 "바우처는 더 많은 불평등을 가져올 것"이라며 "기회가 균등한 공립학교를 버려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르헨대선 D-20] '물가폭등·빈곤층 40%' 위기 속 극우 깃발 꽂나
중앙은행 폐쇄와 달러화 역시 두 후보 모두 "현실성 없는 데다 빈곤층을 더 빈곤하게 만들 뿐"이라거나 "중소기업은 줄도산하고 국가 운명은 완전히 기울 것"이라며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을 호소하고 있다.

가톨릭 교황을 '악마'라고 지칭한 밀레이 후보의 언급 역시 지속적인 공격 대상 중 하나다.

특히 여당 마사 후보는 국민 70∼80%가 가톨릭 신자인 아르헨티나에서 교황(프란치스코)까지 배출한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며, 밀레이 후보를 집중 공격하며 흔들고 있다.

이에 대해 밀레이 후보는 "틀렸다면 사과한다고 해도 문제가 없다"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라나시온과 클라린 등 아르헨티나 일간지는 현재 지지율 흐름으론 결선 투표에서 당선인이 결정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아르헨티나 대선에서는 1차 투표에서 한 후보가 45% 이상 득표하거나, 혹은 40% 이상 득표하고 2위에 10%포인트 앞서면 바로 당선이 확정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11월에 1, 2위 후보가 다시 결선 투표를 치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