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둘도 없는 친구에서 적으로 만난 남북 탁구…담담했던 결승전
탁구는 남과 북이 가장 깊은 우정을 나눠온 스포츠 종목이다.

한국과 북한은 70년 넘게 대치해오면서도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가끔은 하나가 돼 싸우며 커다란 감동을 전 세계에 전하곤 했다.

그 물꼬를 튼 종목이 바로 탁구다.

1991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이 최초의 단일팀을 구성해 출전했고 여자 단체전에서는 현정화, 홍차옥(이상 남측), 리분희, 유순복 등이 활약한 단일팀이 '만리장성' 중국을 꺾고 우승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탁구로 시작한 남과 북의 소통은 같은 해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단일팀,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등으로 이어졌다.

[아시안게임] 둘도 없는 친구에서 적으로 만난 남북 탁구…담담했던 결승전
남북 탁구는 2018년 스웨덴 할름스타드 단체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다시 극적으로 하나가 됐다.

한국과 북한은 8강전에서 맞붙을 예정이었는데, 경기를 앞두고 전격적으로 단일팀을 결성했다.

이어 그해 7월 대전에서 열린 코리아오픈에서도 남자 복식과 여자 복식, 혼합 복식조가 단일팀으로 구성됐다.

이후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더는 단일팀이 구성되지 못했다.

국제대회에서 모습을 감췄던 북한 탁구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통해 3년여만에 국제무대로 돌아왔다.

이번 대회 다른 종목에서는 북한이 한국 선수단을 쌀쌀맞게 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서 단일팀을 구성했던 여자 농구에서는 맞대결 뒤 북한 선수가 한국 선수들을 의도적으로 피했다는 얘기마저 들렸다.

그러나 어떤 종목보다 깊게 쌓았던 '옛정' 때문인지 북한 탁구 대표팀은 달랐다.

[아시안게임] 둘도 없는 친구에서 적으로 만난 남북 탁구…담담했던 결승전
예전처럼 편하게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으나, 경기장을 오가며 한국 탁구인들을 만날 때면 미소를 보내곤 했다.

북한 탁구 선수들은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한국 취재진을 향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표정은 늘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북한 대표팀 코치진은 북한 선수의 정확한 이름을 묻는 한국 취재진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하기도 했다.

북한과 한국의 로마자 표기법이 달라 국제대회에서 기자들은 북한 선수 이름을 확인하는 데에 애를 먹곤 한다.

2일 신유빈(대한항공)-전지희(미래에셋증권) 조와 차수영-박수경 조의 남북 대결을 앞두고는 탁구에서도 차가운 분위기가 흐르는 듯했다.

중국이 일찌감치 탈락한 상황이어서 한국과 북한 모두에 아시안게임 탁구 금메달을 따낼 절호의 기회였기에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승부였다.

아시안게임 탁구 결승전에서 남과 북이 맞대결한 것은 1990년 베이징 대회 남자 단체전 이후 33년 만이었다.

당시 한국이 북한을 꺾고 금메달을 따냈다.

결승행을 확정한 뒤 공동취재구역으로 들어선 차수영과 박수경은 한국전에 임하는 각오를 말해보라는 취재진의 말에 "1등 한 다음에 말하겠습니다"라고 서늘하게 말했다.

[아시안게임] 둘도 없는 친구에서 적으로 만난 남북 탁구…담담했던 결승전
하지만 막상 승부가 시작되자 남북 대표팀 간 냉랭한 분위기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신유빈, 전지희와 차수영 박수경은 경기 전 손을 마주치며 담담하게 인사했다.

관중석에서는 북한 선수들과 한국 선수들이 위아래로 붙어 앉아 경기를 지켜봤다.

양쪽 모두 서로를 배려하는 듯, 격한 응원은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시상식에서도 차수영, 박수경은 전지희와 신유빈의 우승을 축하해줬다.

시상대에서 다시 한번 손을 마주쳤다.

1위 단상으로 올라가 함께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다만, 표정은 굳어있었다.

33년 만에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펼쳐진 남북 탁구 대결은 그렇게 끝났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