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환자 스스로 삶 종결할 수 있어야" 주장에 "호스피스완료의료부터 먼저 확대해야"
[김길원의 헬스노트] 의사조력자살, 당신의 생각은…'자기결정권 vs 생명경시'
한국의 인구 고령화는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 중이다.

이미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14%를 넘어서 고령화 사회가 됐고, 2025년에는 그 비율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고령화 사회는 단순히 노인 인구가 증가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고령자가 늘어나는 만큼 임종 전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 연간 사망자 수는 37만2천939명으로 전년보다 17.4%(5만5천259명) 증가했다.

이대로라면 2030년에는 연간 40만명 이상이 사망할 것으로 추산된다.

따라서 임종 간호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주요 사회문제 중 하나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다행히 2016년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불필요한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가 마련된 상황이다.

하지만, 이 법률은 의사 2인이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사용, 혈액투석 등의 연명의료 중단을 환자가 임종 과정에 있다고 판단한 경우에만 허용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실질적인 '웰다잉'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이 때문에 광의의 웰다잉으로 주목받고 있는 게 바로 '의사조력자살'(조력존엄사)이다.

의사조력자살은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 영양공급 등 생명 유지에 필요한 치료를 중단함으로써 자연적인 죽음에 앞서 생명을 마치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말 그대로 죽음에 이르는 데 있어 의사의 조력을 받는 셈이다.

흔히 '존엄사'로 불리는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이 의도적 생명 단축이 아니라 기계적 호흡 등을 시도하지 않음으로써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게 하는 것과 구별된다.

지금까지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는 우리나라 국민의 80%가량이 의자조력자살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의대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는 "회복 가능성이 없고 해결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가 담당 의사의 조력을 받아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하는 조력 존엄사는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 행복 추구를 위한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는 헌법적인 요구이며 휴머니즘의 구현"이라며 "말기 환자의 웰다잉 선택권을 넓히는 차원에서라도 의사 조력자살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를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찮다.

종교계와 의료계 일부에서는 의사조력자살이 말기 환자의 남은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훼손하고,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죽음을 강요하는 '사회적 타살'의 위험이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지난해 대한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지에 발표된 논문을 보면, 학회가 국민 1천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존엄한 죽음을 위해 정부와 국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로 '의사조력자살 합법화'(13.6%)보다 의료비 절감 등 경제적 지원(26.7%), 간병부담 경감을 위한 지원체계 마련(28.6%), 호스피스 완화 및 돌봄 서비스 확대(25.4%) 등을 꼽은 응답이 더 많았다.

국민들은 의사조력자살을 합법화하기에 앞서 기존 호스피스완화의료 확대 등의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는 게 학회의 분석이다.

그런데도 학회는 현행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한 인식률이 27.1%로 낮고, 시설 및 인적 기반 확충을 위한 적극적인 홍보와 재정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의사조력자살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계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학회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면서 "국민의 존엄한 죽음과 고품질의 임종간호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충분한 지지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