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지출과 국채이자 지급 등 법정 의무지출이 내년 국세 수입의 95%에 달한다는 국책연구원의 경고가 나왔다. 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복지 지출과 국가채무의 가파른 증가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정부의 경기 대응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세수는 주는데 복지·이자 늘어

조세연 "내년 국세 95%가 복지·이자 지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27일 ‘2024년 예산안 및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 평가’ 보고서에서 내년 국세수입은 367조4000억원, 의무지출은 348조2000억원으로 국세 대비 의무지출 비중이 94.8%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올해(85%)보다 9.8%포인트 높은 수치다. 이 비중이 90%를 넘은 건 정부가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재정지출을 의무지출과 재량지출로 구분하기 시작한 2012년 이후 처음이다. 정부가 걷은 세금 거의 전부를 의무지출에 써야 한다는 의미다.

국세 수입 중 의무지출 비중은 2018년만 해도 73.0%였다. 하지만 2019년부터 올해까지 80%대로 높아졌고 내년엔 처음으로 90%를 돌파한다. 이어 기획재정부가 중기재정계획을 발표한 2027년까지도 90%대를 유지한다.

이는 경기 침체 등으로 국세 수입이 크게 늘지 않은 가운데 복지 지출과 국채 이자 지급은 꾸준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2019년 기초연금 기준연금액이 월 25만원에서 30만원으로 높아지고 ‘문재인 케어’로 건강보험 보장 범위가 확대되면서 복지 지출이 크게 증가했다. 윤석열 정부도 ‘약자복지’를 명목으로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을 대폭 늘리고 있다.

빈곤층 등 취약계층을 두텁게 보호하겠다는 시도라는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문제는 한 번 늘어난 복지는 줄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기재부는 2024년 예산안을 짜면서 건전재정 기조를 내세워 내년 총지출 증가율을 올해 대비 2.8%로 묶었다.

하지만 내년 복지(보건·고용 포함) 예산은 242조9000억원으로 올해보다 7.5% 늘어난다.

여기엔 줄이기 어려운 복지가 상당 부분 포함돼 있다.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게 의무지급하는 기초연금 예산을 올해 18조5000억원에서 내년 20조2000억원으로 늘렸다. 올해 32만3180원인 기초연금 지급액을 내년 33만4000원으로 인상한 결과다. 빈곤층 대상 기초생활보장제도 역시 생계급여 수급 대상을 넓히고, 급여액도 역대 최대 수준인 13.2% 높이면서 관련 예산을 1조6000억원 늘렸다.

재량지출 중에서도 국방비와 인건비처럼 사실상 삭감이 불가능한 ‘경직성 재량지출’을 제외하면 실제 재정 여력은 더 떨어진다.

정부 관계자는 “세수는 줄어드는데 복지 지출은 안 늘릴 수 없고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도 심화하면서 정부 부담이 점점 늘고 있다”며 “딜레마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가채무 내년엔 1200조원 육박

국가채무가 늘어나는 점도 의무지출을 줄이기 어려운 요인으로 꼽힌다. 국가채무는 올해 말이면 1100조원을 돌파한다. 이어 내년 말에는 1196조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건전재정을 표방하고 있지만 국가채무는 오히려 90조원 넘게 급증하는 것이다. 그 결과 국채 이자 부담도 커진다. 올해 국채 이자는 24조8000억원이지만 내년 국채 이자는 28조4000억원으로 늘어난다.

조세연은 재정수지 측면에서 보면 정부의 내년 예산안을 건전재정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질적인 나라살림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내년에 92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3.9%에 달한다는 점에서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3.6%)보다 높은 수치이자 정부가 법제화를 추진하는 재정준칙에서 제시한 상한(3%)보다 높다.

보고서를 작성한 오종현 조세연 연구위원은 “정부가 재량지출을 통해 허리띠를 졸라매도 의무지출 때문에 재정을 건전하게 관리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선 의무지출에 대한 혁신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