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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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들의 거친 발언이 세계 곳곳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주재국과의 우호 증진을 위해 외교적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은유적 수사를 사용하는 게 일반적인 각국 대사가 공세적 외교를 지향하는 중국식 전랑(늑대전사) 외교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안드레이 보르소비치 쿨릭 주한 러시아 대사는 최근 윤석열 대통령 연설, 주한 러시아 대사 초치 등을 통해 한국이 북·러 군사 협력 논의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자 일일이 반박 대응을 내놓고 있다.

북·러 군사협력을 경고한 윤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에 대해 쿨릭 대사는 지난달 21일 대사관 페이스북을 통해 "미국 정부가 발의하고 미국과 한국 언론이 뒤쫓은 러·북 협력 폄훼 선전전에 가세한 것은 깊은 유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와의 견고한 호혜적 교류와 협력 경험을 가진 한국 지도부가 한국 정부의 추가적 반러 노선 추구로 러한(한러) 양자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에 기반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대사의 본래 업무는 주재국과의 우호를 증진하고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있음을 고려하면 윤 대통령을 향한 날선 발언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주한러시아대사관은 외교부가 쿨릭 대사를 초치한 것에 대한 논평에서 한반도 안보에 실질적 위협은 "한·미 양국이 벌이고 있는 맹렬하고 불균등한 군사 활동"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앞서 쿨릭 대사는 초치됐을 당시에 이런 취지의 언급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쿨릭 대사는 초치 당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주의 깊게 들었으며, 이를 본국 정부에 정확히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매체들을 제재하자 러시아 외교관들이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선전에 나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러시아가 중국 전랑외교 방식을 차용해 선전 및 허위 정보를 퍼트리고 있다"며 "세계 무대에서 러시아의 고립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런 방식이 표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편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는 중국 정부 요인들이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감춘 상황을 SNS를 통해 조롱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매뉴얼 대사는 지난달 8일 소셜미디어 엑스(옛 트위터) 계정에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내각 라인업이 애거사 크리스티(영국)의 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닮았다. 처음엔 친강 외교부장이 사라지더니 로켓군 사령관이 사라졌다. 이젠 리상푸 국방부장이 2주 동안 공개석상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또 “누가 이번 실업 레이스에서 승리할 것인가. 중국 청년인가, 시진핑의 내각인가”라고 했다. 중국 정부의 골칫거리인 청년 실업률 문제를 거론하며 고위직들의 잇단 잠적을 조롱한 것이다.

이에 미 백악관이 이매뉴얼 대사에게 자제를 요청했다는 미국 언론들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매뉴얼 대사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나에 대한 비판은 실제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라며 “중국이 하는 모든 것은 사기와 기만을 특성으로 한다. 세계적 지도자는 그래선 안 된다”며 시 주석을 다시 겨냥했다.

한 전직 대사는 "주재국 대사는 본국에 보고하고 지시받아 행동하기 때문에 단독 행동이 어렵다"면서도 "본국이 공세적인 외교기조를 택하면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베팅 발언'과 같이 오버하는 행동이 생긴다. 이러한 행태는 분명 본국에도 큰 피해를 주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