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연계로 미·중에 갈등 완화 촉구해야 동아시아 안정·번영"
"기시다, 식민지 피해자에 명확한 형태로 사과해야 양국 협력 가능"
'지한파' 하토야마 전 日총리 "한일 공조로 미중 갈등 제어해야"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한국과 일본은 공조를 통해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제어해야 한다"고 13일 밝혔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이날 전주대학교에서 '아시아 평화와 동아시아 공동체 구축'이라는 주제로 강연하면서 "미·중 갈등의 격화는 동아시아의 불안정성을 조장할 것"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한미일이 중국에 맞서는 길과 한·일이 연계해 미국과 중국 양측에 갈등 완화를 촉구하는 길이 있다"며 "하지만 전자의 방법은 한국과 일본이 대미 공조의 수단이 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시다 정권은 전자의 길을 가려고 하고, 윤석열 정권은 미·일에 끌려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며 "미국의 독선적인 대중 전략에 비춰, 한·일이 이들의 군사적 대립에 휘말리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한일 양국은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며 "양국은 가능한 한 연계하고, 증폭된 영향력으로 미국과 중국에 (동아시아 평화를) 주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9년 12월을 끝으로 열리지 않은 한중일 정상회의를 조기에 개최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늘날의 세계는 결코 미국 진영과 중국 진영으로 나뉘어 있지도, 민주주의 국가와 권위주의 국가로 양분돼 있지도 않다"며 "복잡하고 다양한 현실 세계에서 한일은 유연하게 미들 파워(국제적 영향력을 가진 나라) 제휴를 추진, 세계의 안정과 번영을 추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한일의 역사 문제도 언급하면서 일본 자국의 책임이 더 크다고 했다.

그는 "양국 정부는 역사 문제의 본질적인 부분에서 새로운 타협에 이르러야 한다"며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쪽은 일본 정부이고, 식민지 지배를 한 일본은 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문제가) 해결됐다는 일본의 기본 공식은 변경돼야 한다"며 "기시다 총리는 명확한 형태로 피해자에게 사과를 표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한파' 하토야마 전 日총리 "한일 공조로 미중 갈등 제어해야"
그러면서 "일본 내에서는 역사 문제에서 강경 노선을 고수하면 한국은 꺾일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갖는 정치인들이 적지 않다"며 "이러면 장차 양국 간 역사 문제가 재연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우려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또 "한일 관계가 다시 악화하면 양국이 협력할 기회는 10년 단위로 미뤄질 수 있다"며 "역사 문제에서 제대로 된 화해를 이뤄내지 못하면 한일 협력은 표면적인 것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주대학교는 이날 한일 양국의 관계 회복과 동아시아 평화 구축을 위해 노력한 하토야마 전 총리에게 명예 행정학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2009년 9월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 소속으로 집권해 2010년 6월까지 9개월간 내각을 이끌었으며 일본에서 대표적인 친한·지한파로 통한다.

정계 은퇴 후인 2015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방문, 추모비 앞에서 무릎 꿇고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의 행위를 사죄했다.

2018년에는 경남 합천에서 원폭 피해자를 만나 사죄하는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의 반성이 필요하다는 뜻을 지속해서 밝히고 있다.

이달 초에는 도쿄에서 열린 국제포럼에 참석해 100주년을 맞은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해 "잘못에 대해서는 정확히 사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