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지연, 판사 엑소더스, 인사제도 해결 급선무
내년에만 대법관 6명 교체…대법원 보수화 전망
상고제도 개선, 법관 증원 '숙원' 해결 관심사
새 대법원장 후보 이균용, '위기의 사법부' 해결사 될까
새 대법원장 후보자로 이균용(61·사법연수원 16기)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22일 지명되면서 사법부 구성과 사법행정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대법원장은 헌법과 법원조직법에 따라 법관 3천여명과 법원 직원에 대한 임명권이 있고 10년마다 연임을 위한 재임용을 결정할 수 있다.

대법관 임명 제청권과 헌법재판관·국가인권위원 지명권도 행사한다.

각급 일선 법원에 적용되는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장도 임명한다.

현재 법원이 '위기 상황'이라는 진단이 안팎에서 나오는 터에 현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 사법부에 비판적이었던 이 후보자가 사법부의 새로운 수장이 되면 강도 높은 개혁에 나서리라는 전망이 많다.

◇ 재판 지연, '판사 엑소더스' 해결 급선무
법조계에서는 새 대법원장의 급선무는 재판 지연과 법관 이탈을 해결이라고 지적한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 농단'의 여파로 임기 6년간 법원행정처 역할을 축소하고 조직의 권한을 분산해 법원 내의 서열 문화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사법행정의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늘어나는 소송에 대처하지 못해 재판이 지연되고 유능한 법관들이 법원을 떠나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비판이 커졌다.

특히 '법관의 꽃'으로 불렸던 고등법원 부장판사 제도가 2018년 폐지되면서 법관사회의 사기와 의욕이 꺾이는 결과가 초래됐다.

이 때문에 '정통파 법관'으로 꼽히는 이 후보자가 대법원장이 되면 이런 인사제도를 손볼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기존 제도의 취지인 '법관의 관료화·서열화 방지'와 조화를 이룰 묘안을 도출할 수 있느냐가 관건으로 꼽힌다.

일선 판사들이 추천한 사람을 법원장 후보로 올리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도 개선 요구가 높다.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한 수직적 인사 구조를 해소해 법관의 독립성을 강화하자는 의도였으나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각 법원 수석부장판사가 대부분 법원장 후보로 오르는 등 대법원장의 인사권이 오히려 강해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법조일원화에 대응할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새 대법원장의 과제다.

법관 임용 자격이 강화돼 2025년부터 7년 이상, 2029년부터 10년 이상의 법조 경력을 갖춰야 한다.

당장 인력 수급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소송 진행의 효율화, 근무 환경 개선 등도 당면 과제로 꼽힌다.

◇ 내년 중 대법관 6명 교체…대법원 보수화 전망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이 후보자가 대법원장이 되면 사법부가 지금보다는 보수화할 가능성도 커졌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 이후 '서오남'(서울대 출신·50대·남성)으로 불린 단조로운 대법관 구성에 다양성을 추구했다.

야간대학 등 비(非)서울대 출신, 재야 변호사, 지방에서 오래 근무한 '향판' 등이 대법원에 입성했고 여성 대법관도 늘었다.

이렇게 구성된 대법원은 소수자 보호를 강조하는 등 사회 변화를 반영한 전향적 판결을 여럿 내놓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와 '코드'를 맞췄다는 지적과 함께 대법원이 엄밀한 법리보다는 가치와 철학에 초점을 과도하게 맞춰 판결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와 맞물려 주요 사건 선고를 두고 정치적 편향 논란이 여러 차례 불거지기도 했다.

대법원 구성은 내년부터 급격히 변화할 전망이다.

내년 1월 임기가 끝나는 안철상·민유숙 대법관을 시작으로 김선수·이동원·노정희 대법관이 8월, 김상환 대법관이 12월에 퇴임한다.

내년에만 전체 14명의 대법관 중 6명이 교체된다.

대법관 임명은 통상적으로 대법원장과 대통령이 협의해 정해지는 만큼 보수 우위로 대법원이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대법원이 지나치게 보수 일색이 되면 김 대법원장 재임 내내 대법원을 괴롭혔던 '정치 판결' 논란이 반대 방향에서 재현될 우려도 있다.

이에 법조계에서는 인선에 균형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새 대법원장 후보 이균용, '위기의 사법부' 해결사 될까
◇ 사법부 숙원 사업 6년간 제자리…차기 대법원장 몫
김 대법원장이 해결하지 못한 사법부의 오랜 과제도 고스란히 새로운 대법원장 몫이 됐다.

상고제도 개선은 대법원의 숙원이다.

매년 5만건 안팎의 상고에 대법관 1명이 한해 4천건가량의 사건을 맡는 현 제도에서는 신속한 심리나 중요 사건의 심층 연구·검토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추진된 상고법원 설치안은 사실상 '4심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무산됐다.

추진 과정에서 사법농단 의혹이 불거지며 논의 자체가 가로막히기도 했다.

김 대법원장은 2017년 취임 이래 상고심 제도 개선을 다시 추진했지만 실질적 변화는 없었다.

사실심(하급심)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1·2심에서 재판 당사자가 받아들일 만한 충실한 판결을 내놔야 상고심까지 올라오는 사건 수를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법관 증원이 필요하지만 판사 정원이 법률로 정해져 있어 국회 협조 없이는 어려운 상황이다.

김 대법원장이 추진했던 압수수색 영장 사전심문제 역시 재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대법원은 올해 2월 수사기관에 압수수색 영장을 내주기 전 판사가 사전에 대면 심문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으나 수사기관·학계 반발로 잠정 보류된 상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