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퇴임 앞두고 연합뉴스 인터뷰…"감염병병원 건립 더뎌 걱정"
"백신은 단기대책, 집단면역 전략 폐기하고 실내 공기질 개선 힘써야"
정년퇴임 오명돈 교수 "다음 팬데믹 대비 제도정비 소식 없어"
국내 감염병 분야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오명돈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15일 "코로나19 이후 다음 감염병 유행에 대비할 법과 제도, 거버넌스 정비에 아직 소식이 없다"며 또다른 팬데믹이 오기 전에 중앙감염병병원이 건립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달 말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직 정년 퇴임을 앞둔 오 교수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백신과 치료제는 감염병 관리의 단기 대책에 불과하며, '집단 면역' 전략은 폐기해야 한다"는 견해와 함께 이같이 밝혔다.

오 교수는 2020년 코로나19 유행이 벌어진 초기부터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지난해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코로나19 비상 대응 특별위원회에 참여하는 등 국가 감염병 주요 정책에 조언하는 역할을 해왔다.

오 교수는 "코로나19 유행 초기에는 소위 '집단 면역'으로 코로나19를 완전히 퇴치하자고 했으나, 백신을 여러 차례 맞은 사람들도 감염되고, 백신 접종률이 90%를 넘어도 유행을 종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따라서 어린이로부터 노인에 이르는 모든 국민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집단 면역 전략은 폐기해야 한다"며 "대신 고령층과 면역 저하자를 보호하고 조기 치료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교수는 조만간 이뤄질 코로나19 감염병 등급 하향에 대해서는 "노년층 치명률이 아직 높고 최근 환자가 증가하지만, 우리 의료 시스템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며 "정부가 예정대로 감염병 등급을 하향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우리나라 감염병 대응에 있어 아쉽거나 미흡하다고 보는 부분을 묻는 질문에 법·제도 정비 미비를 꼽았다.

그는 "감염병 대응에는 방역과 의료 대응 2개 축이 필요하다"며 "방역은 정부 행정망과 공무원이 주역으로, 정부가 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으면 제대로 작동하지만, 법·제도를 마련하지 않은 채 임기응변으로 대응하고 공무원 개인의 역량·희생에 의존하고 있어서 오래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감염병 의료 대응은 특별한 시스템이 따로 있지 않고 기존 환자 진료 시스템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응급환자 뺑뺑이 등 현재 우리 의료시스템이 가진 문제가 그대로 감염병 대응에서 나타난다"며 "기존에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 코로나19를 겪으며 여실히 드러났다"고 했다.

특히 오 교수는 '감염병 대응 고도화' 작업의 중심이 중앙감염병병원 건립이라고 강조했다.

정년퇴임 오명돈 교수 "다음 팬데믹 대비 제도정비 소식 없어"
오 교수는 "정부가 5월 코로나19 팬데믹 종식을 선언하며 팬데믹 주기가 6년으로 짧아졌다고 했다"며 "이는 다음 팬데믹이 2026년 온다는 예상이나, 다음 팬데믹에 대비할 법·제도·거버넌스 정비는 아직 소식이 없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고 이건희 회장의 유족이 2021년 4월에 감염병 전문 병원 건립에 기부금 7천억원을 전달한 지 벌써 2년이 넘었다"며 "그러나 중앙감염병병원 건립 사업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어 다음 팬데믹이 오기 전에 개원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오 교수는 또한 "백신과 치료제는 감염병 관리의 단기 대책에 불과하다"며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은 병원체가 퍼지는 환경을 관리하는 일로, 다음 팬데믹에 대비하자면 정부는 지금부터 실내 공기 질 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1958년생인 오 교수는 1983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1994년 의학박사를 받았다.

의대 재학 시절까지 포함하면 40여년을 서울대에 몸담았다.

오 교수는 "40년간 정든 캠퍼스를 떠나 서운한 마음이 드는 한편 서울대 교수로서 교육, 연구, 진료, 봉사 등 막중한 책무를 내려놓게 돼 홀가분하기도 하다"는 소회를 밝혔다.

정년퇴임 오명돈 교수 "다음 팬데믹 대비 제도정비 소식 없어"
그는 2014년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가 유행할 당시 의료 지원 파견을 갔던 일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

당시 오 교수는 파견 간 한국 의료진 중 누군가 에볼라에 노출된다면 귀국시켜 국립의료원에서 치료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국립의료원이 환자를 받을 준비가 되지 못하고 에볼라 환자가 국내에 들어오면 국민이 불안해한다'는 반론이 나와 주장이 관철되지 못했다고 한다.

실제로 팀원 한명이 주사침에 찔리는 사고가 발생했고, 당사자는 독일의 한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받았다.

오 교수는 "우리 정부가 파견한 의료인이 공무 수행 중 손상으로 치료받을 상황인데 우리나라로 데려올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며 "만일 이런 상황이 다시 벌어지면 이제 우리나라로 데려와 치료할 수 있을 만큼 여건이 좋아졌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오 교수는 서울대병원에는 '돈벌이가 안 되는' 분야의 환자를 돌보는 전국적 중추 역할을 적극적으로 할 것을 당부했다.

그는 "응급의료, 어린이, 분만 등 최근 환자들이 제대로 진료받지 못해 사회 문제가 된 분야는 모두 진료 수익을 남길 수 없는 분야"라며 "서울대병원이 이런 분야 환자를 돌보는 중추 역할을 하고, 전국적인 진료 체계를 갖추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정부는 서울대병원이 이런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예산과 제도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