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학력 측정 도구로 변질돼 이럴 바엔 학력고사 돌아가야"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자격고사로 시작된 것입니다. 학력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학력고사를 부활시키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박도순 고려대 명예교수(81·사진)는 1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의 수능은 학력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교수는 현 교육과정평가원의 전신인 국립교육평가원에서 근무했고 교육과정평가원 출범(1998년) 후엔 초대 원장을 지냈다. 1993학년도부터 도입된 수능 제도를 설계한 사람이다.

그는 “수능은 대학에서 공부할 능력을 갖췄는지만 알아보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처음엔 언어와 수리력만 측정하려 했다. 그는 “문법, 고전을 알아야 하는 국어 시험이나 미적분을 풀어야 하는 수학 시험과는 다른 것”이라며 “대학 강의를 알아듣기 위한 논리력과 사고력만 갖추면 풀 수 있는 문제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어, 수리를 기본으로 하는 시험 안이 발표되자 과학계, 사회과학계 등에서 연이어 과학과 사회도 시험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결국 정부의 ‘정무적 판단’으로 사회·과학이 추가됐다”고 했다. 여기에 원서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대학의 요구로 독해 능력을 측정하는 영어가 추가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수능의 모습이 갖춰졌다.

1993학년도에 도입을 결정했을 때만 해도 수능은 대학 입시의 한 파트에 불과했다. 당시 정부는 수능을 자격 기준으로 쓰고 대학 입시를 자율화해 각 학교에서 학생을 뽑게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었다. 대학들도 본고사를 계속 보겠다고 주장했다.

막상 수능이 시작되자 대학들은 본고사를 보지 않고 수능으로 학생을 뽑기 시작했다. 수능이 지금처럼 학력고사화된 것에 대학의 책임도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본고사 등 학교에서 시험을 준비해서 보려면 문제를 내고 채점하는 데 한 달 이상의 시간이 걸리고 돈도 많이 든다”며 “수능 하나만 보면 학교 입장에서는 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능이 대입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서 변별력을 키우기 위해 등장한 ‘킬러 문항’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박 교수는 “킬러 문항을 없애도 사교육이 줄어들긴 힘들다”고 답했다. 그는 “사교육의 근본 원인은 대학 서열화로 킬러 문항은 아주 부분적인 원인”이라며 “전두환 정부 때 금지했어도 사라지지 않은 것이 사교육”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킬러 문항을 방지하기 위해 1년에 세 번 치르는 모의평가를 줄이는 것을 제안했다. 그는 “문제를 배배 꼬는 것은 새로운 문제를 내야 하기 때문”이라며 “모의평가를 여러 차례 보는 것은 1년 내내 수능에 맞춰 공부하라는 유도 역할만 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단 하나의 입시제도는 “없다”고 봤다. “해방 이후 한국은 입시와 관련해 국가시험, 대학 자율, 고교등급제, 면접 평가 등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지만 어떤 것도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박 교수는 “교육제도를 바꾸기 전에 기본적인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교 교육에서 경쟁이 중요한가, 평등이 중요한가. 대학의 역할은 엘리트 양성인가, 보편교육 기관인가 등에 대한 합의가 선행돼야 입시제도의 문제가 완화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오랜 경험에서 나온 결론이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