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들 N차 관람"…영화 '바비' 中서 대흥행 거뒀다
중국 선전에서 마케팅 전문가로 일하고 있는 스치 장(25)은 최근 여성 동료 7명과 할리우드 영화 ‘바비’를 보러 갔다. 그는 2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여자인 친구 모두에게 이 영화를 추천했다”며 “(영화를 보고 나면) 여성들에게도 힘이 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수도 베이징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 페이페이(가명‧24)는 “나는 모든 걸 잘해 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성장했다”며 “이 영화는 내가 스스로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게 했다”고 했다. 페이페이는 지난주에만 두 번, 밝은 분홍색 모자를 쓰고 N차 관람을 뛰었다.

그레타 거윅 감독의 영화 ‘바비’가 중국의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대흥행을 거두고 있다. 중국의 온라인 티켓 판매 플랫폼 마오옌에 따르면 중국 내 바비 상영 횟수는 개봉 첫날인 지난 21일 9673회에서 불과 6일 뒤인 27일 약 3만6000회로 급증했다. 바비는 개봉 이후 현재까지 중국에서만 1억3500만위안(약 241억원)의 수익을 거둬들였다. 올해 1월 약 4년 만에 중국 땅을 밟은 마블 영화 ‘블랙 팬서:와칸다 포에버’의 성적(1억600만위안)을 이미 뛰어넘었다.

중국의 영화 시장은 액션물이나 애국주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 지배하고 있다.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쓴 ‘장진호 전투’가 대표적이다.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검열도 엄격하다. 바비는 중국이 주장하는 ‘구단선’을 등장시켜 중국에서 상영 허가를 따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구단선은 중국이 남중국해에 U자 형태로 그은 9개 선으로, 베트남은 이에 반발해 바비의 상영을 금지했다.

지난해 중국에서 흥행한 상위 10개 영화 중 단 2개만이 할리우드 작품인 걸 고려하면 바비의 성공은 흔치 않다. 전문가들은 바비가 중국에서 그간 잠잠했던 페미니즘에 불을 붙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의 페미니즘 작가인 홍 핀처는 “중국 공산당에게 전통적인 성 역할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소”라며 “(바비의 인기는) 중국의 젊은 세대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가 얼마나 성차별적이고 여성 혐오적인지 옛날보다 더 잘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공산당 내 핵심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는 모두 남성이 꿰차고 있다. 2016년까지 38년간 이어진 ‘한 자녀 정책’으로 여자아이를 밴 경우 낙태하는 일이 잦았다.

바비가 전달하는 페미니즘적 메시지가 중국에서 용인될 만한 수준이어서 이처럼 소비를 ‘전시’하는 행위가 가능했다는 분석도 있다. 잉 주 홍콩침례대 영화학 교수는 “바비에 등장하는 페미니즘은 과격하지 않고 매우 적당한 수준”이라며 “성평등 운동을 탄압했던 중국 정부조차도 이 영화에서 문제 삼을 만한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바비는 중국 내 성소수자 사회에서도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자신을 게이(동성애자)라고 밝힌 극작가 댜오시안(29)은 “가부장제는 남녀 가리지 않고 모두를 억압하고 있다”며 “바비는 영화관 같은 공공장소에서 분홍색 셔츠를 입어도 된다는 ‘타당한’ 이유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