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인구 절반 넘는 청주시, 충북도와 잦은 신경전
"지역사회 우려 사는 고질적 문제…협치 체계 구축해야"

24명의 사상자를 낸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 직전 충북도청과 청주시청이 공동 대처한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청주 시내에서 도보로 5분 거리도 안 될 만큼 지척에 자리한 두 기관이지만 참사 발생 전 수많은 신고와 경고에 대해 공조는커녕 서로 뭉개기에 바빴다.

30일 국무조정실의 감찰 결과에 따르면 궁평2지하차도의 관리 주체인 충북도는 사고 당일인 15일 미호강에 홍수 경보가 발령되고, 수위가 계획홍수위에 도달했는데도 교통 통제 등 후속 조처에 나서지 않았다.

충북도는 심지어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이 미호강 범람 위험 신고를 세 차례나 전달했는데도 청주시와 어떤 논의도 하지 않았다.

청주시는 금강홍수통제소, 미호천교 공사 감리단장, 충북경찰청 등으로부터 10여 차례나 위험 신고를 받았으나 상급기관인 충북도에 전혀 전파하지 않았고, 자체적으로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참사 이후 청주시 공무원들은 "궁평2지하차도는 도청 관할"이라고 했다.

충북도·청주시 '해묵은 반목'이 오송 사고 부실대응 불렀나
흥덕구에 사는 시민 박 모씨는 "큰 물난리가 나고, 제방이 붕괴하는 정도의 사고가 나면 도청과 시청이 손발을 맞춰 역할을 분담하거나 도청이 시청에 지시해 필요한 조처를 하도록 하는 것이 일반상식 아니냐"며 "두 지자체가 합심해도 모자랄 판에 관할이나 따지고 있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재난·재해 상황 앞에서 충북도와 청주시의 '비공조'는 이번뿐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26일 청주에는 미원면 1.6㎝, 금천·복대동 0.5㎝의 적설량이 기록됐지만 도로가 얼어붙으면서 출근길 대란이 발생했다.

당시 행정안전부와 충북도는 '제설에 만전을 기하고 제설제도 사전 살포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으나 청주시는 이를 구청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제설제 사전 살포 대목을 빠뜨렸다.

염수분사장치도 일부 작동하지 않았다.

안전 감찰에 나선 충북도는 시청과 구청 관리자 5명에 대한 훈계 처분을 요구했다.

그러자 청주시 내부에서는 관할을 이유로 도청 주변 제설작업조차 청주시에 맡기는 충북도가 '지적질'만 한다며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일각에서는 충북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덩치가 커진 청주시가 상급기관인 충북도에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출하고, 도는 이런 시를 찍어누려고만 하는 해묵은 반목이 주민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말 기준 충북의 인구는 159만3천931명이다.

이중 청주시가 53.3%(85만168명)를 차지한다.

충북도·청주시 '해묵은 반목'이 오송 사고 부실대응 불렀나
인구 규모를 고려할 때 청주시장에 당선할 여력이면 충북지사 선거 도전을 꿈꿔 볼 만도 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런 청주시가 도 입장에선 눈엣가시처럼 보일 수 있다.

이를 방증하듯 충북지사와 청주시장이 직접 신경전을 벌이는 일도 적지 않았다.

2020년 말 청주시가 특례시 도전에 나서자 당시 이시종 충북지사는 대놓고 반대했다.

청주시가 특례시로 빠져나가면 충북도는 인구 74만명으로 광역단체 지위를 위협받게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난해 3월에는 충북도가 김영환 현 지사의 대표 공약인 출산육아수당 지급 계획을 발표하자, 도내 11개 시·군 가운데 청주시만 유일하게 동참을 거부했다.

출산수당 지급에 필요한 예산 분담률을 도 40%, 시·군 60%로 정한 게 문제였다.

출생아 수가 도내 전체의 60%를 웃도는 청주시는 재정 부담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했다.

충북도가 그동안 차등 지원하던 지방보조금 비율을 다른 시·군과 동일하게 해주겠다고 제안하고, 청주시가 이를 받아들여 사업 시행은 가능해졌지만 여기까지 오는데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

이두영 충북경제사회연구원장은 "충북도와 청주시의 고질적인 관계 문제는 지역사회의 큰 우려를 사고 있다"며 "이번 오송 참사를 계기로 모두 반성하고 광역·기초단체, 주민 간 협치체계를 구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청주시는 인구와 규모에 맞게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광역행정 마인드를 가져야 하며, 충북도는 광역단체로서 청주시의 권한과 역할을 존중하고 지원해야 한다.

그러면 서로 신뢰가 생기고 관계 개선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