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직 근로자 생계에 타격…"해가 갈수록 비 많이 오는 듯"
한강 오리배 영업도 중단, 채소·과일 가격 급등에 손님 뜸해져
"비 그쳐야 먹고 살텐데"…긴 장마에 애타는 사람들
"한 달에 24∼25일은 일해야 하는데 비 때문에 이번 달은 20일도 채우기 힘들 것 같아요.

일을 해야, 돈을 벌어야 먹고 살지…."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 재건축 현장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 50대 김모씨는 하늘만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비가 오는 날은 일감이 없는 터라 긴 장마가 야속하기만 하다.

기상청에 따르면 장마가 시작된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18일까지 전국 장마철 강수일수는 17.6일로 1973년 이후 60년 중 같은 기간을 놓고 봤을 때 가장 많다.

서초구의 같은 공사 현장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 황진옥(63)씨는 "35년 전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땐 장마철만 지나면 괜찮았다"며 "지금은 여름 내내 비가 많이 오는 게 체감될 정도"라고 했다.

황씨는 "(여름엔) 비 오는 날보단 덥더라도 맑은 날이 기분 좋다"고 말했다.

황씨와 같은 건설 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는 강모(65)씨는 "7월 들어 7일만 근무하고 12일은 쉬었다.

일당쟁이인데 비가 오는 날은 돈을 벌고 싶어도 일을 하지 못한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비 그쳐야 먹고 살텐데"…긴 장마에 애타는 사람들
"작년에는 8월 한 달 가까이 영업을 못 했는데 올해는 7월부터 시작됐으니…."
18일 오후 광진구 뚝섬한강공원. 불어난 한강 물에 둥둥 떠 있는 유선장에서 오리배와 식당을 영업하는 사장 정효조(58)·홍서안(60)씨 부부는 계속되는 7월들어 열흘 가까이 오리배를 띄우지 못했다.

무동력선인 오리배는 팔당댐이 초당 1천500㎥ 이상 방류되면 한강 운행이 통제된다.

환경부의 한강홍수통제소 자료에 따르면 팔당댐은 이달 10일부터 열흘간 초당 1천500㎥가 넘는 물을 방류했다.

답답한 마음에 식당 밖으로 나온 홍씨는 방류되는 물에 유선장으로 흘러온 부유물을 가리켰다.

이어 "유선장이 흔들릴 정도로 위험해 며칠 동안 새벽에도 나와 쓰레기를 치우느라 몸살이 났다"고 말했다.

부부는 이곳에서 30년간 일했는데 갈수록 비 때문에 여름철 장사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정씨는 "몇 년 동안 경험해보니 장마가 이렇게 일찍 시작되면 빨리 끝나는 게 아니라 8∼9월까지도 내내 비가 많이 온다"고 걱정했다.

옆에 있던 아내 홍씨는 "5∼9월이 성수기인데 비 때문에 7∼8월 두 달이 날아간다"며 "직원들 월급도 줘야 하니 없는 돈도 끌어다가 유지한다"고 말했다.

"비 그쳐야 먹고 살텐데"…긴 장마에 애타는 사람들
19일 강남구 영동시장 채소가게에서 만난 송정순(75)씨는 "비가 오면 물건이 안 들어오는 것도 문제지만 장사도 안된다.

사람들도 가격만 물어보고 (비싸서) 그냥 간다"고 말했다.

사흘 전에 들여온 고추 한 박스가 썩을까 봐 싼값에 내놓아야 했다고 한다.

송씨는 "비 오기 전엔 1박스(4㎏)에 4만∼5만원에 들여오던 상추를 오늘은 8만원을 주고 받아왔다.

채솟값이 너무 비싸서 장사할 엄두가 안 난다"고 울상을 지었다.

송씨와 함께 일하는 심모(79)씨는 "밑지는 것을 알고 판다.

하늘이 그런 것을 어떡하냐"며 체념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지속적인 산지 우천으로 인한 작업량 감소로 이날 기준 적상추 상품 가격은 21일 기준 4㎏에 8만6천700원으로 한 달 전(1만8천740원)의 4.6배로 뛰었다.

영동시장에서 과일가게를 하는 박모(58)씨는 당도를 확인하기 위해 연신 수박을 두들기고 있었다.

박씨는 "비가 오면 과일도 물 먹은 게 많아져 당도가 떨어진다"며 "손님들이 당도가 높냐고 물어보는데 손님 마음에 드는 좋은 물건을 들이기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비 그쳐야 먹고 살텐데"…긴 장마에 애타는 사람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