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새마을금고 앞에 놓인 두 갈래 길
최근 몇 년간 국내 인수합병(M&A) 시장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에서는 한 가지 격언이 있었다. “돈이 없으면 MG(새마을금고) 앞에 가서 줄을 서라.”

농담처럼 회자됐지만 사실이었다. 특히 코로나19 충격이 컸던 초기에 돈줄을 닫은 다른 투자자(LP)들과 달리 새마을금고는 후했다. 한 금융사 대표는 “수백억원 투자 요청을 거절했는데, 상대방이 다음날 ‘새마을금고중앙회(중앙회)에서 훨씬 큰돈을 받기로 했다’며 목에 힘을 주기에 놀랐다”고 돌아봤다.

“3000억원이 필요하면 4000억원을 주고, 5000억원이 필요하다고 하면 1조원까지도 (새마을금고에서) 받을 수 있다”고들 했다. 이름 없던 신생 사모펀드(PE)의 딜이나 리스크가 적지 않은 개발사업들이 새마을금고의 자금력을 등에 업고 척척 진행됐다. 팀장의 전결권이 수천억원에 달했고 신용대표쯤으로 올라가면 1조원 단위로 내줬다는 후문이다. “그 무렵엔 거의 국민연금(NPS)급의 큰손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새마을금고가 이렇게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닌 것은 빠르게 불어난 운용 자산 덕이었다. 새마을금고의 자산 규모는 2000년 36조원, 2010년에는 90조원 정도였다. 10년 전에야 100조원을 찍었는데 작년 말엔 284조원까지 증가했다.

새마을금고는 저금리와 규제 완화를 먹고 자랐다.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준다고 약속하면서 최고 3000만원(고령자는 5000만원, 출자금 1000만원 별도)까지 비과세 혜택을 줬으니 갈수록 돈이 몰렸다. 예수금이 급격히 불어나니 돈 굴릴 곳이 급해졌다. 개별금고에서 소상공인이나 소규모 건설 현장, 중소기업에 돈을 빌려주는 식으로는 고객에게 약속한 금리를 맞춰줄 수 없었다. 개별금고의 돈을 맡아서 대신 굴려주는 중앙회는 보다 큰 투자처를 찾기 시작했다.

마침 지난 문재인 정부는 각종 투자 규제를 완화해줬다. 관리형토지신탁이나 공동대출 형태로 개별금고가 부동산 PF에 투자할 길을 열어줬다. 중앙정부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알아서 잘 보라고 했고, 선거 때면 조합원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지자체장은 감독에 열을 올릴 이유가 없었다. 중앙회에는 180여 명에 달하는 검사인력이 있지만 중앙회 스스로 리스크 관리가 되지 않았으니 개별금고의 사정은 말할 것도 없었다. 새마을금고의 ‘겁 없는 투자’ 행보가 본격화된 배경이다.

[토요칼럼] 새마을금고 앞에 놓인 두 갈래 길
새마을금고는 기본적으로 계(契)에서 출발한 협동조합이다. 1960~1970년대 정부의 재건운동과 당시 농협에 대한 불만 등이 겹쳐 지역별 자조모임으로 시작된 것이 1980년대 새마을운동을 거쳐 현재의 새마을금고가 됐다. 고객 집의 숟가락 개수까지 헤아리는 관계형 금융에서 단연 강자였다. 그러나 지금의 자금 운용 행태는 상부상조를 위한 협동조합이 아니라 덩치를 잔뜩 키운 금융회사다.

정부와 국회에서는 ‘누가’ 새마을금고를 관리해야 하느냐를 놓고 토론이 한창이다. 행정안전부 산하에 있더라도 금융감독당국에서 일부 관리감독을 받는 방안 등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모양이다.

누가 관리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새마을금고가 어떻게 운영돼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방향은 두 가지다. 첫째는 지난 수년간 지나치게 비대해진 새마을금고의 규모를 천천히 줄여서 다시 지역·직장에 뿌리내린 협동조합의 원형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예수금과 출자금은 운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만 받으면 충분하다. 비과세 혜택은 걷어내는 것이 옳다.

두 번째는 개별금고의 규모를 오히려 더 키우는 길이다. 협동조합보다는 금융사로서의 정체성을 갖추기 위해서다. 금융기관이 적절한 리스크 관리 역량을 갖추고 포트폴리오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운용 규모가 필요하다.

평균 자산규모가 2000억원가량에 불과한 1294개 금고가 제각기 독립경영을 하는 상황에선 금융감독당국이 관리한다고 해도 들여다보는 것조차 쉽지 않다. 새마을금고의 통폐합을 적극 추진해 수백 개 수준까지는 줄여야 금융사다운 운영과 관리감독이 가능할 것이다. 비상근직인 중앙회장이 자금 운용에 관여하는 불합리는 끊어내고, 다른 금융사와 동등한 수준의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

협동조합형 금융기관인 새마을금고는 지금 두 가지 정체성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지금처럼 어엿한 금융사로 남고자 한다면 적잖은 변화를 감수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못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