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밍푸 장례식에 약 1천명 비 맞으며 조문…현 최고위층도 화환보내"
'텐안먼 시위' 중재 시도했던 中 원로 장례식에 조문 인파
1989년 중국 톈안먼 민주화시위 당시 당국과 학생 시위대 간 중재에 나섰던 옌밍푸(閻明復·91) 전 중앙통일전선부(통전부) 부장의 장례식에 1천명에 가까운 조문 인파가 몰려들었다고 홍콩 명보가 14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전날 베이징 바바오산 장례식장에서 거행된 옌밍푸의 장례식에는 각계각층 약 1천명이 모여들어 빗속에 긴 조문 대기줄이 늘어섰다.

공산당 서열 5위인 차이치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천이친 국무위원 등 현 최고위직을 비롯해 후진타오·주룽지·원자바오·리커창 등 많은 퇴임 지도자가 근조 화환을 보냈다.

덩샤오핑의 장남 덩푸팡이 보낸 화환도 보였다.

명보는 "차이치 상무위원의 화환 앞에 보안 요원이 가려놓은 또 다른 화환이 놓여 있었다"며 "누리꾼들은 화환 배치 순서상 차이치보다 더 높은 지도자가 보냈을 것이라고 추측하며 (서열 1∼4위인) 시진핑 국가주석, 리창 국무원 총리, 자오러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의, 왕후닝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중 한명일 가능성을 제기했다"고 전했다.

지난 5일 중국 민정부는 옌밍푸의 장례를 알리며 고인이 "중국 공산당의 뛰어난 당원, 충직한 공산주의 투사이자 전 민정부 부부장'이라고 소개했다.

중국이 톈안먼 민주화 시위를 '정치 풍파'로 규정하고 그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옌밍푸의 장례식이 이처럼 예우받은 것이 주목된다.

옌밍푸는 지난 3일 베이징에서 병환으로 숨졌다.

톈안먼 시위 당시 통전부 부장이었던 그는 당을 대표해 1989년 5월14일 톈안먼 광장에서 시위 중이던 학생 지도자들을 통전부로 불러 대화에 나서면서 주목받았다.

대화가 결실을 보지 못하자 이틀 후 자오쯔양 공산당 총서기는 옌밍푸에게 톈안먼 광장으로 직접 나가 시위대 설득 작업을 이어가라고 지시했다.

옌밍푸는 톈안먼 광장에서 자신도 농성에 가담할 의향이 있다고 말하며 학생들을 안심시키려 했고, 심지어 학생들의 단식 중단을 이끌고자 그들에게 자신을 인질로 잡아두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고, 강경파들은 그가 당론을 따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후 그해 6월 4일 당국이 시위를 무력 진압한 후 그는 무력 진압에 반대한 자오 전 총서기의 축출과 함께 모든 공직과 당직에서 해임됐다.

1991년 민정부 부부장으로 복귀하면서 부분적인 복권이 이뤄졌고 2007년 중국의 대(對) 대만 협상기구인 해협양안관계협회(해협회) 회장에 임명됐다.

한편, 옌밍푸의 장례에 많은 조문객이 몰렸지만 톈안먼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던 저명 언론인 가오위는 장례식 참석이 경찰에 의해 저지됐다고 명보는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