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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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이번 현대차 대법원 판결문에 대해 2차례의 설명자료와 입장문을 내는 등 유례를 찾기 힘든 대응에 나섰다. 같은 쟁점의 노동조합법 개정안(노란봉투법)이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는 가운데 이번 판결이 나오면서, 법원의 부담이 상당해졌다는 증거다.

경영계에서는 대법원 판결 직후 "기업이 가해 조합원의 개별 책임을 입증해야 할 판"이라면서 이번 대법원판결을 연일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대법 "기업에 새로운 책임 지우지 않아" 강변

대법원은 2차 설명 자료를 통해 경영계의 주장을 강하게 반박했다.

대법원은 “기업에 새로운 입증책임을 지우는 것과 무관하다”며 “이번 판결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봉쇄한다거나 조합원 개인별 손해를 (기업이) 입증해야 한다는 주장은 판결을 정확하게 이해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공박했다.

법원의 설명대로라면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권 자체에는 제한이 없다. 다만 법원이 심리 마무리 단계에서 △조합원의 노조 내부에서의 지위 △손해 발생에 기여한 정도 등을 따져 개별 조합원의 책임 비율을 결정하겠다는 의미다. 대법원은 “책임 비율 결정은 법원이 제반 사정을 감안해 형평에 맞게 재량으로 정하겠다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대법원은 이를 '책임 제한 비율 개별화 법리'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일부 대법 판결에서 인정된 바 있다지만, 다소 생소한 법리라는 지적도 있다.

성대규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이 '책임 제한 비율 개별화'의 근거로 인용한 대법 판례는 불법쟁의행위에 단순 참가한 일반 조합원에 대한 책임 경감 판결"이라며 "적극적으로 쟁의행위에 참가한 조합원들이 피고인인 이번 사건과는 결이 다소 다르다"고 지적했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폭력을 휘두르거나 라인을 무단 점거할 때는 대오를 함께 했는데 각자 책임이 달라질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단 자체가 되레 쟁의행위의 본질을 이해 못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노란봉투법도 '법원'에 책임비율 정할 의무 부여

하지만 대법원의 설명대로라고 해도, 이번 대법 판결은 결과적으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 제3조와 내용이 일치한다.

노조법 개정안은 3조에서 "법원은 … 노동조합의 활동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각 손해의 배상의무자 별로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노란봉투법 역시 기업이 아닌 '법원'이 불법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별로 귀책 사유와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즉, 민주당도 이 정도 규정이면 기업의 손배 청구권을 충분히 제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의미다. 민주당 환경노동위원회 관계자는 "이번 대법원판결은 국회 계류 중인 노조법 개정안의 입법취지와 동일하다"며 "3조의 규범 대상을 사용자가 아닌 '법원'으로 한 것도 '부진정연대책임' 원칙과의 충돌이 발생하지 않기 위한 의도"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설명 자료대로라면, 대법원판결 뿐만 아니라 노조법 개정안도 부진정연대책임과 충돌되는 부분은 없다"며 "사실상 법원이 스스로 직접 조합원 간 개별 책임 비율을 정하는 부담만 지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판결은 결과적으로 노조법 개정안과 상당 부분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대법원판결이 기업에 '추가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란 주장은 수긍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불법파업 손배소송 심리, 큰 변화 맞이할 듯

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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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논리적으로는 대법원의 해명이 맞다 해도, 실무적으로는 기업의 불법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큰 변화를 맞이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법원은 2차 설명자료에서 "법원 심리에 변화가 있더라도 기업에 입증책임이 가중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법원 심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화를 에둘러 인정하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조합이나 가담자별로 책임 제한 비율이 다른지 여부를 추가로 심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자료에서 과실 비율을 결정하는 심리 과정에 대해 “기업과 노조원 양측이 책임 비율 결정에 필요한 자료를 제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심리 과정에서 법원의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는 법원이 해야 할 입증 책임을 사실상 기업에 전가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개별 조합원의 책임 비율을 입증할만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문제다. 지금까지는 '가해자가 공동불법행위에 가담했다'는 정도만 입증되면 끝날 문제였지만, 앞으로는 누가 어느 정도 가담했는지 과실 비율을 두고 노사 간 치열한 다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 대형로펌 노동 전문 변호사는 "법원이 재량으로 판단한다지만, 결국 손해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필요하다"며 "사실심인 하급심 법원에서도 조합원들의 가담 비율을 개별적으로 판단하는 부담도 커질 것이고 이런 부담은 사실상 원고인 기업이 떠안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결국 개별 근로자의 과실 비율을 정하기 어려울 경우 법원이 직권으로 정할 수밖에 없다"며 "최악의 경우엔 과실 비율이 입증되지 않으면 청구를 기각하는 사례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이번 대법원판결은 불법파업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을 크게 위축시킬 것이란 분석이다.

곽용희/민경진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