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권혁빈 CVO…재산분할 쟁점은
결혼 전 상속증여 또는 자력 형성한 ‘특유재산’ 놓고 엇갈려
최태원 회장과 달리 권혁빈 배우자, 공동 창업해 자산 증식 기여
법조계 "권 부부 재산분할 비율 5대5 될 땐 최대 3조 위자료"
최태원 SK그룹 회장,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최고비전제시책임자(CVO) 등 기업인의 이혼소송이 잇따르면서 향후 재산분할을 둘러싼 법정 공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배우자들이 이혼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재산을 받을 수 있느냐가 재판의 핵심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기업인이 보유한 회사 주식이 분할 대상 재산에 포함되느냐’가 최대 쟁점이다. 주식이 기업인 재산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데다 분할 규모에 따라 회사 경영권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기업인마다 재산 형성 과정은 다르지만 일단 회사 주식이 ‘특유 재산’이 될 수 있느냐가 재산분할 과정에서 다툴 최대 쟁점으로 평가받는다. 특유 재산은 부부가 혼인 전부터 각자 가지고 있던 재산이나 혼인 중에 한쪽이 상속·증여로 취득한 재산으로, 이혼 소송에선 원칙적으로 재산분할 대상이 되지 않는다. 최 회장과 권 CVO 역시 특유 재산 분류를 둘러싸고 배우자와 치열한 법리 다툼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SK 주식 제외” 1심에서 선방한 최태원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간 이혼 소송은 당초 법조계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서울가정법원 가사합의2부(부장판사 김현정)는 지난해 12월 6일 최 회장-노 관장의 이혼을 인정하면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665억원, 위자료로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665억원은 지금까지 공개된 한국 기업인의 재산분할 금액(합의 제외) 중 최대다. 그럼에도 최 회장 측은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보유한 SK㈜ 주식이 분할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노 관장은 2019년 12월 최 회장을 상대로 이혼 맞소송을 내면서 위자료 3억원과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의 50%인 648만 주를 요구했다. 1심 선고일 기준 노 관장이 달라고 한 SK㈜ 주식의 가치는 약 1조3500억원에 달했다.
서울 종로구 SK본사 주변 모습.
서울 종로구 SK본사 주변 모습.
재판부는 판결 당시 “노 관장이 SK㈜ 주식 형성과 유지, 가치 상승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특유 재산’으로 판단하고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며 “최 회장이 보유한 일부 계열사 주식·부동산·퇴직금·예금과 노 관장의 재산만 분할 대상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SK㈜ 주식은 공동재산이 아닌 데다 예외적으로라도 재산 분할 대상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최 회장 측 목소리의 상당 부분을 재판부가 받아들인 셈이다. 최 회장 측은 “현재 보유한 SK㈜ 주식의 기원은 부친인 고(故) 최종현 전 회장에게서 증여·상속받은 SK 계열사 지분이기 때문에 재산분할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동안의 이혼소송 판례와 꽤 다른 판결이라는 평가다. 국내 법원에선 배우자가 가사노동만 했더라도 특유 재산 분할을 인정하는 경향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사실혼 관계를 끝낼 때조차 특유 재산을 분할 재산에 포함한 사례가 있었을 정도다.

부산가정법원은 2020년 11월 사실혼 해소에 따른 재산분할청구 소송에서 A씨가 B씨와 동거하기 전 취득한 부동산과 부동산 임대수익으로 형성된 예금 역시 재산분할 대상으로 인정했다. 당시 재판부는 “B씨는 A씨와 17년여간 사실혼 관계를 이어갔다는 점과 가사 외에 투병하던 A씨를 자녀들과 함께 간병하는 등 재산의 유지 및 감소 방지에 기여했다고 인정된다”며 “특유 재산이라도 배우자가 적극적으로 해당 재산의 가치 유지나 증식에 협력했다면 분할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노 관장 측도 이 같은 판례 등을 이유로 1심 판결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노 관장의 소송 대리인단은 “내조와 가사노동의 기여도를 넓게 인정하는 최근 판례와 재판 실무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지난해 말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대리인단은 “최 회장이 보유 중인 SK㈜ 주식은 최종현 전 회장이 상속·증여한 게 아니라 최 회장이 혼인 기간 중인 1994년 2억8000만원을 주고 매수했다”며 “그 후 최 회장이 경영 활동을 통해 해당 주식의 가치를 3조원 이상으로 키웠고 노 관장은 이 과정에서 내조를 통해 협력했다”고 주장했다.

법조계에선 항소심이 1심처럼 마무리될 경우 국내 이혼소송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선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 오너 일가의 경우 재산분할 과정에서 소송과 합의 중 뭐가 나은지를 두고 더 깊은 고민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사례처럼 끝까지 소송을 이어갔을 때 상대의 청구보다 훨씬 적은 재산을 분할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어서다. 이 사장은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과 이혼하는 과정에서 약 1조2500억원의 재산분할을 요구받았지만, 대법원까지 간 소송전 끝에 확정된 분할 재산 규모는 141억원에 그쳤다. 소송 진행 과정에서 이 사장 측이 제안한 합의 요구를 임 전 고문이 받아들였다면 분할 재산은 더 많았을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兆단위 재산분할’ 예고된 권혁빈 이혼

6조원대 자산가인 권혁빈 CVO의 상황은 최태원-노소영 부부와 다소 결이 다른 재판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배우자가 스마일게이트 창업 때부터 상당 기간 회사 경영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권 CVO는 결혼한 지 한 달째인 2002년 6월 스마일게이트(현 스마일게이트엔터테인먼트)를 부인인 이모씨와 공동으로 창업했다. 출범 당시 권 CVO가 70%, 이씨가 30%씩 지분을 나눠 가졌다.

이씨는 창업 초기 회사의 대표이사도 맡았지만 첫째 딸을 임신하면서 그해 11월 권 CVO에게 대표이사직을 넘겼다. 그 후엔 등기이사로 재직해오다가 2015년 12월 가사에 전념하기 위해 경영진에서 물러났다. 권 CVO는 이씨가 경영 일선에서 떠난 뒤 수차례에 걸친 유상증자와 유상감자 등을 통해 본인이 100% 지분을 확보한 스마일게이트홀딩스를 통해 스마일게이트엔터테인먼트와 스마일게이트RPG 등을 거느린 현재의 지배구조를 완성했다.
스마일게이트 본사 모습. 사진=연합뉴스
스마일게이트 본사 모습. 사진=연합뉴스
법조계에선 이런 이유로 권 CVO가 보유한 스마일게이트홀딩스 주식이 부부의 공동재산으로서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씨의 이혼 청구를 법원이 받아들이면 국내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재산분할 분쟁이 막을 올릴 전망이다. 이씨 측은 스마일게이트홀딩스 주식을 포함한 권 CVO의 재산 중 최소 3분의 1 이상은 받아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이씨 측이 “소송이 끝날 때까지 해당 재산을 권 CVO가 처분하지 못하게 해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지난해 말 인용했다. 업계에선 재산분할 비율이 5 대 5가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권 CVO는 지난달 미국 경제주간지 포브스가 발표한 올해 한국의 50대 자산가 순위에서 51억달러(약 6조8000억원)로 4위에 올랐다. 이 기준으로 따지면 이씨가 분할을 요구할 재산 규모는 2조~3조원대에 달할 전망이다. 한 대형로펌 가사상속 전문 변호사는 “이씨가 스마일게이트의 성장 과정에서 적잖은 역할을 했기 때문에 재산분할 대상에 이 회사 주식 역시 포함될 것”이라며 “권 CVO의 입장에선 이혼이 성사된다면 조 단위 재산분할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권 CVO와 이씨의 재산분할은 일단 이혼 자체의 성사 여부를 둘러싼 법정 다툼이 마무리된 뒤 시작될 전망이다. 부부 중 어느 한쪽의 책임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은 데다, 권 CVO가 이혼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이혼 청구소송의 결론이 나는 데도 적잖은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씨 측이 “혼인을 유지하기 어려울 만큼 관계가 파탄 났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권 CVO는 “명백한 사유가 없다”고 맞서는 상황이다.

국내 법원은 ‘배우자 중 어느 한쪽이 동거·부양·협조·정조 등 혼인에 따른 의무를 위반해 명백한 이혼 사유가 생겼을 때만 상대방이 이혼 청구를 할 수 있다’는 유책주의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부부 중 책임이 뚜렷한 쪽이 이혼을 요구하는 경우가 아닌 한 대체로 이혼이 성사되고 있음을 고려하면 권 CVO 부부의 이혼이 인정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