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리퍼블릭은행 주가 폭락으로 미국 내 은행 위기 공포가 재점화하는 가운데 다른 금융회사들도 미국의 급격한 금리 상승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은행과 비슷한 기능을 하지만 엄격한 규제를 받지 않는 이른바 ‘그림자 금융’도 마찬가지로 많은 부채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총부채 2009년 후 90% 급증

美 은행 위기는 '빙산의 일각'…그림자 금융도 위험하다
2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은행 위기는 부채 문제에서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며 “빠르게 몸집을 키운 그림자금융이 은행과 마찬가지로 높은 금리로 인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은행 붕괴로 촉발한 이번 은행 위기는 진정될 기미를 보이다가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의 1분기 ‘뱅크런’(대량 예금 인출)이 심각했다는 사실이 최근 실적 발표를 통해 알려지면서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퍼스트리퍼블릭은 전날 주가가 50% 빠진 데 이어 이날도 30% 가까이 급락했다.

문제는 미실현 평가손실 채권이 금리 인상을 못 견뎌 파산한 SVB처럼 비슷한 리스크가 도처에 있다는 점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에 따르면 2009년 이후 정부, 기업, 가계가 갚아야 할 총부채는 90% 증가한 68조달러(약 9경원)에 달한다. 이 부채가 모두 금리 인상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Fed는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잡기 위해 지난해 3월부터 아홉 차례나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1980년 이후 가장 빠른 속도다. 금리가 오르면 기존 대출과 채권의 가치는 하락한다. 기업들은 대차대조표에 이를 표시할 의무는 없지만, 현실적으로는 그 손실을 누군가는 감수해야 한다고 WSJ는 지적했다.

은행에만 초점 맞춰선 안 돼

은행은 현재 가장 눈에 띄는 부채 보유자다. 하지만 연금 및 뮤추얼 펀드, 사모펀드, 생명보험사, 사업 개발 회사, 헤지펀드 등 기타 비은행, 즉 그림자 금융이라고 불리는 곳도 마찬가지로 많은 부채를 보유하고 있다.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경제보좌관 겸 조사국장은 “문제는 시스템 어딘가에서 나타날 것”이라며 “은행이든 비은행이든 같은 위험에 직면해 있으므로 모든 초점을 은행에만 맞추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실제 미국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은 그림자 금융이 해외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이달 초 발행된 보고서에서 언급했다. 대표적 사례로는 지난해 10월 한국의 ‘레고랜드 사태’를 꺼냈다. 당시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선 강원중도개발공사의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 부도 처리되면서 국고채는 물론이고 회사채·단기어음(CP)까지 채권시장 전체가 급속 냉각되는 등 금융시장에 큰 혼란을 초래했다.

지난해 9월 영국 정부가 감세안을 발표한 뒤 국채 금리가 급등해 레버리지 투자를 해왔던 연기금에 손실을 본 사례도 나왔다.

그림자 금융의 규모는 작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IMF에 따르면 자산운용사가 펀드를 활용해 대출하는 형식 등의 ‘직접 대출’은 2008년 초 이후 여섯 배인 1조5000억달러로 증가했다. 고수익 채권과 레버리지 대출 시장까지 더하면 그 가치는 4조4000억달러로 불어난다. 은행의 상업 및 산업 대출 규모인 2조7000억달러를 훨씬 웃돈다.

자산운용사들은 자금 조달을 위해 지급하는 비용이 자산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을 뛰어넘게 되면 더 많은 대출을 제공할 여력이 없어진다. 대출을 못 받는 누군가에게는 궁극적인 생존의 문제가 될 수 있다고 WSJ는 지적했다.

2007년부터 시작된 글로벌 금융 위기는 대표적 그림자 금융 상품인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에서 시작됐다. 주택 가격이 급락하면서 모기지를 담보로 발행한 주택저당증권(MBS) 손실이 커진 게 위기의 도화선이 됐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