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운용수익률 1% 높이면…고갈시점 5년 늦어진다
국민연금의 운용수익률을 1%포인트 높이면 2055년으로 예고된 기금고갈 시점을 5년 늦출 수 있다는 공식 전망이 나왔다. 보험료율을 2%포인트 높이는 것과 같은 효과다. 국민연금이 70년 뒤 최소한 그해 지급할 보험료만큼은 준비된 기금으로 남으려면 현재 9%인 보험료율을 당장 2년 뒤부터 두배 높여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예측이지만 정치권에선 15%를 ‘마지노선’으로 보고 있다. 이에 정부는 당초 계획보다 이른 내달 중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수익률을 구조적으로 높일 ‘특단의 대책’을 내놓는단 계획이다. 보험료율 인상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2~3%포인트의 ‘틈’을 수익률도 메꾼다는 구상이다.

○수익률 1% 높이면 보험료율 2% 높이는 효과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추계위)는 30일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대상기간 2023~2093년)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1월 인구 및 거시경제변수 중위값을 가정한 시산 결과를 발표한 지 2개월만이다. 현행 ‘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40%, 65세부터 연금수급’조건을 유지할 경우 국민연금기금이 2040년 1755조원으로 정점에 이른 뒤 이듬해 적자로 전환해 2055년 완전 고갈된다는 것이 시산의 핵심 내용이다. 최종 결과엔 인구 및 경제변수 가정을 변화시킨 7개 시나리오별 분석 결과와 운용수익률 변화에 따라 고갈 시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을 더했다.

분석 결과 기금운용수익률이 고갈 시점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70년간 예상되는 평균 수익률인 4.5%보다 0.5%포인트 높아지면 수지적자 시점은 2043년, 고갈 시점은 2057년으로 2년씩 늦춰진다. 1%포인트가 높아져 연평균 5.5%의 수익률을 낸다고 가정하면 고갈 시점은 2060년으로 기본 가정보다 5년 늦춰진다. 보험료율을 2%포인트 높이는 것과 같은 효과다.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빠른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5년 전 4차 재정추계 결과와 비교하면 기금 수지가 적자 전환하는 시점은 1년, 기금 고갈 시점은 2년 빨라졌다. 4차 재정추계 당시 1.27명이었던 출산율의 올해 기본 전망치는 0.73명이다. 2050년 이후 가정치도 4차 계산 때 1.38명에서 5차 때는 1.21명으로 떨어졌다. 여기에 향후 70년간 실질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4차 때 1.1%에서 5차 때는 0.7%로 낮아졌다. 이처럼 상당한 인구·경제 변수 악화로 당겨진 2년의 시점을 0.5%포인트 운용수익률 개선으로 다시 늦출 수 있는 셈이다.

기본 전망치를 기준으로 보면 출산율은 기금 적자 전환, 고갈 시점 자체엔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 경제성장률, 금리 등 경제 변수는 그대로 두고 출산율, 평균 수명 등 인구 변수를 기본(중위) 시나리오 비해 악화된 저위 시나리오(2023년 0.68명으로 하락한 뒤 2050년 이후 1.02명 수준까지만 반등)를 반영하더라도 적자전환, 소진 시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소진 시점의 적자 규모는 47조원에서 132조원으로 3배 가량 늘어난다.

올해 출산율이 0.62명까지 떨어지고 장기적으로도 0.98명으로 1명대를 회복하지 못한다는 ‘초저출산’ 시나리오에서도 적자, 소진 시점은 그대로다. 반대로 출산율이 당장 올해 0.88명으로 반등해 2050년 이후 1.4명까지 회복된다는 긍정적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기금고갈 시점은 2056년으로 1년 늦춰진다. 이스란 보건복지부 연금정책국장은 “현재의 출생아가 국민연금 가입자가 되려면 최소 20~30년의 시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출산율 차이가 고갈 시점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대신 고갈 이후 연금 재정에 엄청난 여파를 끼친다”고 설명했다.

출산율 회복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미래세대가 부담해야 할 부담은 급격히 불어난다. 기금이 고갈되는 2055년 이후 국민연금이 그 시점의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로 연금 지급을 충당하는 부과방식으로 전환했을 때 납부해야할 보험료율인 부과방식 비용률은 기본 시나리오에선 2060년 29.8%이지만 저위 시나리오에선 32.6%로 높아진다. 2060년 기준 노인부양비(18~64세 인구 대비 65세 인구 수)가 94.2명에서 99.9명으로 늘어나는 등 연금을 낼 사람은 줄고 받을 사람은 증가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지속가능하려면 최소 보험료율 2배 올려야

연금개혁의 기초가 될 재정추계 최종 결과가 나오면서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 작업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이날 보건복지부는 올해 10월 국회에 제출할 연금개혁 정부안 수립을 위해 작년 말부터 운영 중인 기금운용발전위원회(기발위)와 별개로 민간 투자 전문가들도 구성된 일종의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기금투자수익률 제고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당정협의 등을 거쳐 이르면 4월 중 국민연금의 투자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는 지난 6일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8.22%의 역대 최저 수익률을 기록한 국민연금을 두고 “국민 부담을 낮출 수 있는 기금운용수익률 제고도 매우 중요한 개혁 과제 중 하나"라며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통상 정부는 기발위를 중심으로 연금개혁 정부안에 들어갈 기금운용 분야 개선 방안을 마련해 공청회가 열리는 8월에야 공개한다. 이를 4개월 가량 앞당기는 셈이다.

정부가 기금운용 개혁에 무게를 싣는 이유엔 국민연금 제도 자체를 바꾸는 것에 비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실행에 옮기기 용이하다는 측면도 있다. 재정추계 기본 가정에 따르면 70년 뒤인 2093년 국민연금의 적립금 규모를 그 해 지급액을 충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선 2025년부터 보험료율을 현재(9%)의 두 배인 17.9%로 높여야 한다. 개혁 시점이 10년 늦춰지면 필요한 보험료율은 20.7%까지 높아진다.

하지만 보험료율을 이번 정부 임기 내에 18%까지 높이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식적으로 특정안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국회가 연금개혁 관련 여야 합의를 위해 마련한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에선 보험료율을 15% 또는 12%로 높이는 선택지를 두고 논의가 이뤄졌다. 이마저도 2025년부터 보험료율을 0.6%~1%포인트씩 점진적으로 높이는 것으로 즉시 올리는 재정추계 내 가정과는 차이가 있다. 연금개혁의 종착역인 국민연금법 개정을 좌우하는 국회가 설정한 마지노선인 15%를 넘어서는 안을 정부가 내놓긴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보험료율을 2%포인트 높이는 효과를 낼 수 있는 운용수익률 1%포인트를 높이는 기금운용 개혁이 보험료율 인상 등 제도개혁과 함께 이뤄진다면 연금 재정을 획기적으로 안정화시킬 수 있다. 전병목 재정추계전문위원회 위원장은 “국민연금 재정 안정화를 위한 재정 개혁과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인구 정책, 기금운용수익률 제고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