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의 트렌드 인사이트] 꺾이지 않는 '레트로 열풍'
어느 날 남편이 슬램덩크를 보고 와도 되겠냐고 물었다. 슬램덩크? 빨간 머리 강백호가 나오는 그 슬램덩크를 말하는 것인가. 나이로는 나도 슬램덩크 세대지만 어렸을 때부터 만화보다 드라마를 더 좋아했던 터라 농구 만화라는 것 외에 슬램덩크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없었다. 여하튼 199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만이 어렴풋이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의 만화를 어디서 보고 오겠다는 것인가. 그제야 비로소 알았다. 슬램덩크가 재개봉한다는 소식에 각종 커뮤니티가 들썩이고 있다는 것을.

슬램덩크 열풍이 심상치 않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슬램덩크)가 3주 연속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개봉 39일 만에 누적 관객 270만 명을 넘었는데, 일본 애니메이션 역대 흥행 2위의 기록이라고 한다. 슬램덩크의 흥행 열풍 이면에는 원작 만화를 즐겼던 30~40대가 있다. CGV 예매관객 분석에 따르면 전체 관람객의 65%가 3040세대다. 흥미로운 점은 개봉 초반 10%에 불과했던 20대 관객도 점점 늘어나 20%를 넘었다는 것이다.

극장가의 추억 소환은 슬램덩크에서 그치지 않는다. 개봉 25주년을 맞이해 ‘타이타닉’도 재개봉했고, 2023년 5월에는 둘리 탄생 40주년을 맞아 1996년작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을 4K 리마스터링해 재개봉할 예정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SNS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이에 앞서 2022년 여름 개봉한 추억의 콘텐츠 ‘탑건: 매버릭’은 무려 80일간 박스오피스 5위권에 들며 2022년 외화 최고 흥행을 기록했다.
[최지혜의 트렌드 인사이트] 꺾이지 않는 '레트로 열풍'

슬램덩크·포켓몬빵·7세대 그랜저 '인기'

사실 이런 복고 트렌드는 최근 시장 전반에서 불변의 성공법칙으로 통한다. 2022년의 대표적인 복고 아이템은 포켓몬빵이었다. 띠부띠부씰을 구하기 위해 편의점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파파이스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파파이스는 1994년 서울 압구정점을 시작으로 지점이 200여 개에 달했지만 2020년 말 매출 부진을 견디지 못하고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그 후로 2년 만인 2022년 12월 강남역에 1호점을 내며 복귀를 선언했는데, 오픈 당일 한파에도 불구하고 5000명이 넘는 방문객이 몰려 화제가 됐다.

자동차업계에서도 복고가 통한다. 현대자동차가 6세대 이후 6년 만에 출시한 ‘7세대 그랜저’는 사전계약 약 11만 대를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7세대 그랜저는 1990년대 누아르 영화 등에 자주 등장한 1세대 ‘각 그랜저’ 모델의 외관을 계승해 재해석했다. 전반적인 스타일뿐만 아니라 측면부에 삼각형 모양의 ‘쪽창(오페라글라스)’을 내 디테일을 살렸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2022년 9월 현대차가 ‘갤로퍼’를 상표 출원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출시 예정인 5세대 싼타페가 갤로퍼 디자인을 반영해 출시될 것이라는 기대가 이어지고 있다. 한 중고차 사이트 조사에 따르면, ‘전설의 명차 중 다시 부활했으면 하는 모델’ 설문조사에서 갤로퍼가 23%의 득표율로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현대적 재해석' 있어야 복고풍 성공

현상만 놓고 보면 복고가 성공의 ‘치트키’처럼 여겨지지만 복고를 입힌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추억 소환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재해석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슬램덩크는 강백호 대신 송태섭을 주인공으로 상실과 극복의 스토리를 담아내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도전 앞에서 자신의 실력에 대한 불안감을 쉽게 떨쳐내지 못하는 송태섭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탑건: 매버릭’은 대령이지만 여전히 현역 조종사로 활약하는 톰 크루즈의 캐릭터를 통해 건재함을 증명하고 싶은 중년 관객의 환호를 받았다. 현대차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옛 감성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현대적인 재해석이 있을 때 사람들은 열광한다. 이처럼 복고를 새롭게 재해석한 트렌드를 뉴트로(New+Retro)라고 부른다.

결국 최근 복고 열풍은 레트로라기보다 뉴트로에 가깝다. 뉴트로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불황기 소비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또한 새로움을 갈망하는 Z세대에게 호기심과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고, 기성세대에게는 옛 기억을 떠올리는 추억의 아이템이 된다는 점에서 타깃을 확장하기에 효과적이다. 마지막으로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는 시대에 매력적인 돌파구가 된다는 점에서 앞으로 복고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동시에 다양하게 변주됨으로써 그 열풍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최지혜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