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 칼럼] 전당대회가 '分黨대회'로 치닫는 與대표 선출
정치는 시끄러워야 한다. 통합, 단일대오라는 말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무조건적’이라면 권위주의 정당과 다를 바 없다. 미국 정치학자 엘머 샤츠슈나이더가 “갈등은 민주주의의 엔진”이라고 한 것은 정치의 이런 속성을 가리킨다. 활발한 의견 개진과 충돌 속에서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여정이 정치다. 사방팔방 떠드는 것으로만 끝나버린다면 시장통 외침일 뿐이다. 조준 없이 중구난방 날아가는 총알이 고철에 불과한 것과 같다. 그런 점에서 다음달 8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국민의힘 갈등이 이어지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당의 최대 이벤트인 전대에서 ‘컨벤션 효과(정치 행사를 통해 지지율 상승)’를 누리기 위해서라도 맥없는 것보다 떠들썩한 게 득이 된다.

단, 조건이 있다. 싸움이 국민에게 소구력(訴求力)이 있어야 한다. 싸움이 치졸한데 누가 좋게 봐주겠나. 중요한 것은 갈등의 존재가 아니라 목적이다. 정치 갈등은 사적이 아닌 공적이익을 지향해야 그 의의가 있다. 정치학자 모리스 뒤베르제는 정치는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투쟁이자 공동이익을 보장하는 수단이라고 했다. 투쟁과 공동이익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국민의힘 대표 경선판은 투쟁만 보인다. ‘김연경·남진 인증샷’과 감별사(鑑別師) 논란, 양말 싸움 등 가십성이 판을 친다. 내가 왜 집권당 대표가 돼야 하는지는 안 보이고, 계파 간 사적 정치 이해만 뒤엉켜 있다. ‘부족 정치(tribal politics)’의 암울한 그늘이다.

나경원 전 의원과 안철수 의원 배제과정을 보면 여권 정치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싶다. 물론 대통령과 집권 여당 대표는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대선 주자가 여당 대표가 되면 자기 정치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대통령과 삐걱거릴 수 있다. 총선 공천권까지 끼어들면 더욱 그렇다. 과거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가 그랬다. 윤석열 대통령이 특정인에 대해 호불호를 갖는 것은 일리가 없지 않다. ‘안-윤 연대’ ‘윤핵관’ 등으로 대통령을 경선판에 끌어들인 안 의원의 실책도 있다. 그러나 친윤 주류들은 도가 지나치다. 특정인과 같이 일할 수 없다고 한다면 고도의 조정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게 정치 리더십인데 여권에선 실종되고 갈등을 확대 재생산할 뿐이다.

초선의원들의 행태도 실망스럽다. 저출산·고령화가 엄중한 시기에 중요한 자리를 석 달 만에 그만둔 나 전 의원은 비판받을 만하다. 그렇다고 초선들이 그를 주저앉히기 위해 집단적으로 연판장을 돌린 것은 당 주류 앞에서 바람도 불기 전에 납작 엎드린 꼴이다. 역대 국회에서 초선들은 크든 작든 쇄신 목소리를 내왔는데, 이래서야 국민의힘의 미래를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나.

정치는 현실이다. 전대가 흥행하려면 싫든 좋든 유력 후보들을 무대에 올려 잔치판을 벌여야 한다. 그런데 친윤 주류는 특정 후보만 밀면서 가지치기에 나섰다. 선거 승리를 위해선 중도 ‘스윙보터’를 잡아야 한다는 건 철칙이다. 시끌벅적해야 할 전대가 특정 계파의 나 홀로 잔치가 돼 버린다면 중도 확장성은 막힌다. 다양성은 사라지고, 남는 것이 이분법적 대결뿐이라면 내년 총선은 기약하기 어렵다.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는 말이 지금 정치판에서는 뒤바뀐 듯하다.

내년 총선은 윤석열 정권의 성패를 가른다. 대내외 경제 여건이 윤 정부를 옭아매고 있는 판에 여소야대 정국을 뚫지 못한다면 노동, 연금, 교육 개혁 등 핵심 과제들은 물건너갈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이 신년 인터뷰에서 한 “여당이 다수당이 되지 못하면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이란 말이 기우만은 아니다. 그런데도 총선 승리를 향한 여정의 첫발인 전대를 만인대 만인의 투쟁처럼 만들면서 시작부터 국민의힘은 난파선이 되고 있다. 선거에서 네거티브전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다만 그게 전부가 됐을 때 그 교훈은 참패한 2016년 총선 결과에 나와 있다.

영국 전대는 며칠간 당의 미래를 놓고 시끌벅적한 토론을 벌이면서 국민의 시선을 한껏 받는다. 국민의힘 대표 경선도 누굴 배제하느니 마느니, ‘윤심(尹心)’이 화두가 아니라 윤 정부 핵심 개혁 과제들을 어떻게 뒷받침하고, 거대 야당을 어떻게 상대할지를 놓고 벌이는 난상토론이 갈등을 압도할 때 국민의 박수를 받을 것이다. 누굴 밀고 안 밀고 같은 정략은 물밑에서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