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파트 입주 물량이 폭증한 대구에서 역(逆)전월세난이 심해지면서 전셋값 하락폭이 커지고 있다. 도심의 방 3개, 화장실 2개인 신축 아파트 전셋값이 서울 화곡동 원룸 수준으로 하락했지만 세입자를 구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대구 '입주 폭탄'…아파트 전셋값이 서울 원룸 수준
25일 부동산 중계업계에 따르면 대구에선 올해 총 3만4984가구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면서 전·월세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과거 가장 많은 입주 물량을 기록한 2008년(3만4688가구)을 넘어서는 역대 최대 물량이 쏟아지며 역전월세난은 갈수록 심각해질 전망이다.

대구 서구 평리동에서 오는 3월 입주할 예정인 1418가구 규모의 ‘서대구KTX영무예다음’ 전용면적 57㎡는 월세 시세가 보증금 2000만원에 월 50만원, 전세는 보증금 1억1000만원까지 급락했다. 도심 재개발 단지라 주변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방 3개짜리 아파트다. 평리푸르지오 등 주변의 비슷한 크기 아파트가 작년 11월 전세 2억3000만원에 임차된 것과 비교하면 반토막 수준이다. 인근 T공인 관계자는 “전·월세 가격이 더 이상 내리기도 어려운 수준까지 내려갔는데도 임차인을 구하기 어렵다”며 “경기가 나빠 세입자가 이사할 비용조차 없는지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드물다”고 전했다.

매매도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용 84㎡가 분양가보다 7000만원 떨어진 마이너스 프리미엄에 매물로 나와 있는 실정이다.

역전월세난은 대구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작년 9월 말 1만5650건이었던 대구 전·월세 매물은 이날까지 1만9033건이 쌓이며 21.6% 급증했다. 다음달 입주하는 중구 남산동의 재개발단지 ‘청라힐스자이’(총 947가구) 역시 전용 59㎡의 전셋값이 2억원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입주한 남산자이하늘채 등 주변 전세 실거래 시세는 2억8000만원 수준이다. 이 단지는 지하철 1호선 반고개역 역세권에 자리해 2020년 분양 당시 평균 청약경쟁률 141 대 1을 기록했다. 부적격 당첨자 물량 공급 때도 ‘프리미엄 1억원이 보장된다’며 수요자가 몰렸다. 그러나 지금은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1억원에 달한다.

하반기부터는 분양 당시 인기가 없었던 미분양 단지들도 잇따라 입주를 시작한다. 동구에서 오는 10월 입주 예정인 ‘용계역푸르지오아르베츠’(1313가구)는 2021년 분양 당시 1순위 청약 경쟁률이 0.62 대 1을 기록했고, 지금까지도 미분양 단지로 남아 있다. 외곽 택지개발지구에 자리잡고 있어 임차인을 구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