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지안 왕이 2014년 12월 1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지휘 정명훈) 공연에서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첼리스트 지안 왕이 2014년 12월 1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지휘 정명훈) 공연에서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도이치그라모폰(DG)은 세상이 다 아는 세계 최고 클래식 음반사다. 튤립이 있는 ‘노란 딱지’(DG 로고)가 붙은 음반은 “믿고 들어도 된다”는 보증수표와 다름 없다. 그러니 모든 클래식 아티스트가 DG에서 음반을 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DG가 쉽게 문을 열어줄 리 없다. DG는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 등 세계 최정상급 연주자와만 전속 계약을 맺는다.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첼리스트 지안 왕 (55)도 그중 한 명이다. 동양인 첼리스트 중 최초로 ‘DG 멤버’가 된 그는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다. 네 살 때 첼로를 처음 잡은 그는 열 살 때 20세기 최고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인 아이작 스턴의 눈에 들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예일대 음대에서 ‘첼로의 거장’ 알도 파리소를 사사하며 음악적으로 성장했다. ‘음악 장인’만 할 수 있다는 세계 3대 콩쿠르 심사위원도 맡았다. 쇼팽 피아노 콩쿠르를 제외한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를 그의 손으로 뽑았다.

‘아시아 최고 첼리스트’로 꼽히는 왕이 다음달 16~1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을 찾아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호흡을 맞춘다. 왕은 1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단 한 명이라도 내 연주를 듣고 공감과 위로를 느낀다면 나에게 이보다 가치 있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평생 첼로를 끼고 살았지만, 왕은 아직도 음악이 너무 좋다고 했다. “우리 모두 일상에선 각자의 목적에 맞는 가면을 쓰고 삽니다. 음악은 이런 가면을 단번에 벗겨내면서 인간을 무장해제시킬 힘을 갖고 있어요. 인간의 가장 연약하고도 예민한 감정을 파고들기 때문이죠. 그래서 음악은 위대합니다.”

왕은 다른 사람과 음악을 공유하는 순간 긴밀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음악은 인간의 정서와 감정을 한곳에 담아냅니다. 그래서 음악을 들으면 외로움을 덜 느끼죠. 음악은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인간다운 감정을 찾도록 돕는 신비로운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왕에게 “훌륭한 연주자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묻자 예상과 다른 답을 내놨다. 공감 능력을 첫손에 꼽았다. 왕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능력과 그렇게 하려는 의지를 갖는 게 연주자에겐 가장 중요하다”며 “연주자는 자신을 슬프게 하거나 피곤하게 만드는 수많은 감정을 온전히 흡수한 뒤 음악으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연주자가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연주는 실패 아니면 거짓 연주”라고 덧붙였다.

왕은 한국을 사랑하는 연주자로도 유명하다. 국내 대표 음악제인 평창 대관령음악제의 단골 초대 손님이다. 2018년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듀오 공연을 했고, 올해 9월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정명훈과 함께 트리오 무대에 오른다. 그는 “전설적 예술인 정경화, 영적인 음악을 만들어내는 정명훈과 함께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며 “기회가 되면 한국의 젊은 동료들과 연주하고 싶다. 그들의 실력은 세계 최고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첼로를 뺀 그의 삶이 궁금했다. 그는 “너무나 평범해서 지루할 정도”라며 “팬들이 나의 일상생활을 알면 예술적인 면을 찾을 수 없어 실망할지 모른다”고 했다. “요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는 어린 딸을 위해 요리하고 같이 먹는 거예요.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왕은 내달 서울시향과의 공연에서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한다. 벨기에 국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지낸 휴 울프가 지휘봉을 잡는다. 그는 “서울시향의 탁월한 실력과 울프와의 좋은 호흡을 기억하고 있다”며 “엘가의 매력을 살린 음악을 들려주겠다”고 말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